그동안 국내 기업은 근무시간은 서서히 유연화하면서도, 근무장소의 유연화에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상황을 바꿔 놓았다. LG그룹, 롯데그룹, 넥슨, 넷마블 등 다양한 기업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올 2~3월에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김동원(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기업들이 재택근무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을 만들어 줬다이번 기회가 재택근무가 더 확산되는 기폭제로 작용 할 것 같다고 평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 기업은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김동원 교수는 전 직원이 출근했을 때보다 전력, 연료비 등이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라며 재택근무가 완전히 뿌리내리면 기업은 더 이상 사무실 같은 물리적 공간 확보에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LG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 박모 씨는 출근을 하지 않으니 회사 내에서 경험하는 업무 외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좋다출퇴근 같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도 하지 않아 집에서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가 노동 방식의 뉴노멀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재택근무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짚어봤다.

망 분리 규제 완화해야

  먼저 망 분리 규제 완화다. 한국 금융기업들은 업무용 PC의 인터넷을 차단하는 망 분리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망 분리 규제는 2009, 2011, 2013년 금융기관이 디도스와 같은 사이버 공격을 여러 차례 겪자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다루는 금융 부문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이용자 수가 일일 평균 100만 명 이상이거나 전년도 매출액이 100억 원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회사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해야 한다. 인터넷이 차단된 사내 업무용 PC를 통해서만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회사 밖에서 업무용 PC에 원격으로 접속할 수 없다.

  코로나192월 말 금융 당국은 망 분리 규제를 적용 받는 기관이나 기업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했다. 직원들이 가상사설망(VPN) 인증을 받은 뒤 암호화 통신으로 회사 밖에서 내부망에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원의 단말기에 실제 데이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만 원격으로 공유하기에 정보 유출 우려가 적다.

  이석윤(서울대 수리과학부) 객원교수는 모든 데이터를 업무용 PC에 담고 인터넷을 끊어버리는 것보다, 데이터를 중요도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눈 뒤 보안등급이 낮은 데이터부터 인터넷에 서서히 연결해 가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강제로 망 분리를 시키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외국은 금융기관이 망 연결을 자율적으로 선택해 운영하되, 만약 금지 조항을 어길 경우 큰 책임을 묻는 방식을 운용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핀테크 업체 등 여러 분야에서 망 분리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현재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언택트 산업도 함께 발전해야

  재택근무 환경이 안정화되기 위해선 화상 회의와 같은 원격 업무 시스템을 제공하는 언택트 산업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코로나시대 언택트 산업 전략 토론회에 참석한 미래에셋대우 이학무 애널리스트는 원격 근무가 확산되며 팀즈, 줌과 같은 화상 커뮤니케이션 툴 사용량이 급증했다화상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해 VR과 같은 기술을 개발해가며 비대면 소통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앱 다운로드 수는 19만 명에서 334.3만 명으로 약 4배 증가했다.

  언택트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금지 사항만 규정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오갔다. 한국경제연구원 추광호 경제정책실장은 현 포지티브 규제 방식(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규제 방식) 하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도 법령에 의해 허가를 받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지연된다언택트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시대 이후, 재택근무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박지순(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고, 그때마다 우린 언택트한 소통 방식을 찾게 될 것이라며 언택트 문화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윤경 연구원은 코로나19는 언택트 산업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정부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 언택트 시대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먼저 검토하는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택트에 맞게 노동 상식도 변해야

  재택근무 환경 속에서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동원 교수는 비대면 재택근무 환경에선 기업이 그때그때 필요한 업무를 해줄 프리랜서, 비정규직을 많이 찾게 될 것이라며 이젠 감염병 이슈까지 더해져 기업은 자연스럽게 무인화 및 비정규직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언택트 노동환경 속에서 늘어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 등)와 프리랜서들은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박지순 교수는 우리나라는 어떤 일을 하느냐보단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에 따라 노동자 성격을 구분한다언택트 시대에 프리랜서형 노동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이들은 기업에 의해 출퇴근이나 근태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이어 지금 당장 언택트 문화로 생겨난 노동자까지 아우르는 보호법 제정이 어렵다면, 언택트 산업에서의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로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체계엔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일시적으로 일감을 찾지 못할 때 생계보조금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 구축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거다.

  비대면 업무를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안 갖춰진 중소기업 입장에선 재택근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SK그룹은 SKT의 가상 PC 기술을 활용해 사내 공용PC 연결, 원격회의, 대규모 채팅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소기업은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동시에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광현(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나 신생 스타트업 등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재택근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접촉이 일상에서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제도로 재택근무를 관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언택트라는 시대 흐름은 사회에 여러 과제를 남기고 있다.

 

| 김민주 기자 itzme@

일러스트 | 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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