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꾀꼬리·소쩍새

동결정액 활용해 인공수정 연구

다친 동물 구조해 치료·수술도

안전 위해 긴장감 늦출 수 없어 

 

경의범 수의사가 담비 폐사체를 살펴보고 있다.
경의범 수의사가 담비 폐사체를 살펴보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멸종위기종 2급 담비의 폐사체였다. 올해 84번째 구조된 동물이다. 수의사가 죽은 담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흰 천으로 사체를 감쌌다. 야생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25일 오전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야생동물의료센터(센터장=정동혁)를 찾아갔다.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멸종위기종의 복원과 질병·건강연구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또 국립공원 일대 야생동물의 구조, 치료, 재활도 병행한다.

  센터는 복원사업을 위한 실험실, 방사선실을 갖추고 있었다. 야생동물 치료를 위한 수술실과 입원실, 재활과 야생 적응을 돕는 계류장도 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사무실 한켠 업무표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수리부엉이 비행 훈련부터 붉은귀거북 안락사까지정동혁 센터장이 출근길에 구조한 담비 폐사체도 기록돼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바쁘게 흘러가는 야생동물의 쉼터, 야생동물의료센터의 하루를 담았다.

의료센터 연구원들이 NM-106의 하반신에서 정액을 채취하고 있다.

 

반달곰 복원은 정액채취부터

  이들이 2004년부터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의 복원이다. 당시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이 5마리 남아있었다. 그대로 둘 경우, 멸종될 위험이 있어 복원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인공수정을 통해 반달가슴곰의 복원을 진행 중이다.

  이전까지는 인공수정에 신선정액만 활용했다. 작년부터는 동결정액에 대한 연구를 착수했다. 추출한 정액을 그때 쓰고 마는 게 아니라, 동결시켜 필요할 때 쓰는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 측면에서 정자를 즉시 소비해 버리면 해당 유전자를 미래에 활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동결 생식세포 은행을 구축하는 것이다. 정자뿐만 아니라 향후 난자 배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양정진 팀장은 아직 동결 프로세싱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며 어떻게 해동해야 동결 전 원정액 상태의 기능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는지 등 여러 조건을 비교하고 실험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날도 곰의 정액을 추출하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곰 우리로 향하는 길에 KM-75를 만났다. “동물을 보호하는 곳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것이 냉정하게 보이겠지만, 다 이유가 있어요.” 경의범 수의사가 말했다. 원래는 지리산 봉우리나 계곡 명칭을 따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니 곰이랑 친해졌다.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곰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져 번호를 붙여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생지가 한국이면 번호에 K가 붙고, 러시아, 북한, 중국 출생은 각각 R, N, C가 붙는다. 수컷은 M, 암컷은 F. 이 둘을 조합한 후 뒤에 숫자를 붙인다. KM-75는 한국에서 태어난 수컷 곰 75번 개체다. 숫자가 출생 순서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경의범 수의사는 간단하게 75(칠오)라고 부른다고는 했지만, 번호가 애칭인 듯 “‘칠오하면 온다고 말했다.

  우리에는 세 마리의 곰이 있었다. 암컷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수컷을 배치했다. 수컷들이 암컷의 냄새를 맡고 성적 흥분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늘의 연구대상은 NM-106. 북한에서 넘어온 친구다. 마취총을 들이밀자 NM-106은 흥분했다. “마취총을 많이 맞아봐서 총만 보면 흥분해요.” 마취총의 표적인 엉덩이를 가리려고 NM-106은 우리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마취를 여러 번 하면 내성과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부작용으로는 구토, 정형행동 등이 있다. 경의범 수의사는 마취약 때문만이 아니라 계속 갇혀있다 보니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며 안타까워했다.

  마취된 곰은 혀를 내놓고 있었다. 청진기로 사전 검사를 하고, 수액 링거를 꽂는다. 마취를 하면 신진대사가 느려진다. 장기를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수액을 꽂는다. 그다음 관장을 한다. 대장에 초음파 기계를 넣어 전립선 위치를 잡는다. 이후 요도 카테터를 이용해 전립선에 있는 정액을 추출한다. 전기자극으로 사출하지 않고 카테터로 뽑는 이유는 사출보다 양은 적지만, 농축된 형태로 정액이 나와 많은 수의 정자를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정액 채취를 위해 곰의 하반신에는 네댓 명의 사람이 달라붙었다. 정액의 산도를 검사하는 사람부터 내시경 화면을 들어주는 사람까지, 연구원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채취한 정액은 바로 실험실로 옮겨진다. 원정액 상태로는 현미경에 정자가 가득 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100배 희석해 검사한다. 원정액은 온도를 25로 맞춰놓는다. 체온 37를 유지하면 당장은 정자 움직임이 좋게 나오지만, 해동 후에 정자가 힘을 잃는다. 정자는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세포가 아니기에 자체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수명이 끝난다. 따라서 동결 전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지 않도록 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있다. 정액은 시차를 두고 3단계에 걸쳐 동결된다. 영하 194인 액체질소에 바로 넣어버리면 세포가 깨져서다. 섬세한 과정을 오차 없이 거쳐야 정액 동결을 마무리할 수 있다.

  8월 말은 번식기 끝물이라, 정자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곰 번식기는 5~8월이지만 정점은 7월 초다. 8월 말이면 거의 끄트머리인 셈이다. 하지만 수치에 상관없이 의료센터는모든 정액을 보존한다. 동결정액의 인공수정에 대한 자료 자체가 없어서다. 기초 데이터를 만드는 중이다. “지금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정하고, 이에 대해 프로세싱하는 거죠.”

 

새끼 꾀꼬리의 날개 수술장면.

아픈 동물 수술·치료·재활도

  복원종의 비번식기에는 복원종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야생동물치료기관으로 지정받아 평소에는 야생동물을 구조한다. 문제는 번식기로 바쁠 때도 구조가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순간,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면 치료를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임승효 수의사는 고라니 같은 경우는 어미가 풀숲에 새끼를 숨겨놓는데, 사람들이 미아인 줄 알고 센터로 데려온다그건 구조가 아니라 납치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전날 구조된 새끼 꾀꼬리의 수술이 진행됐다. 깃털도 다 나지 않은 노란 생명체는 한쪽 날개가 부러져 제대로 날지 못했다. 수술실은 일반병원의 수술실처럼 위생적이고 냉기가 돌았다. 수의사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틀어놓고 수술을 진행했다. 잔잔한 노래 아래, 수의사 세 명은 자신의 주먹만 한 작은 생명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새끼 꾀꼬리는 몸집이 너무 작아 고정핀 또한 작은 것이 필요했다. 부서진 뼈를 바로 맞추고 세균이 날개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붕대로 봉합했다. 꾀꼬리는 중간에 마취가 깬 듯 수술한 반대쪽 날개를 파닥거렸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했다.

  수술실에 이어 입원실. 입원실은 아직 스스로 먹이를 먹지 못하거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개체들이 있는 곳이다. 입원실의 단골손님은 새다. 새끼 새들은 대부분 어미가 먹이를 직접 먹여주는 습성 때문에 스스로 먹이활동을 못 한다.

 

천연기념물 324-6호인 소쩍새
천연기념물 324-6호인 소쩍새

 

  한쪽 벽에 자리한 인큐베이터에는 새끼 박쥐가 있었다. 날개가 골절돼 부목까지 대가며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24-6호인 소쩍새 두 마리도 보호 중이었다. 최준혁 연구원은 처음 들어왔을 땐 혼자서 먹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알아서 밀웜을 판에 내려놓으면 찍어 먹는 단계까지 왔다며 뿌듯해했다. 야행성인 소쩍새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과 귀를 동그랗게 뜨고 둔하게 움직였다.

 

최준혁 연구원이 멧비둘기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최준혁 연구원이 멧비둘기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최 연구원은 분주하게 멧비둘기에게 줄이유식을 준비했다. 내용물은 주로 곡물이다. 이 멧비둘기는 계곡에 떠내려가려던 걸 동네 주민이 신고해 구조해온 것이다. 아직 새끼라 솜털도 다 안 빠졌다. 케이지 안 조류 램프가 멧비둘기를 비췄다. 실내에서도 햇빛을 받게 해 깃털과 골격 생장에 유리하게하는 것이다. 날개를 흔들고 윙 소리를 내며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자, 연구원은 호스가 연결된 주사기를 이용해 멧비둘기 부리 속으로 이유식을 주입했다.

  동물의 재활과 방사는 계류장에서 이뤄진다.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개체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계류장에는 너구리, 파랑새, 독수리, 곰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경의범 수의사는 계류장에 암컷 곰이 있는데, 번식기라 매우 공격적이라며 케이지 안에 있어도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고 말했다. 최준혁 연구원은 발목에 난 큰 상처를 보여줬다.

  계류장에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계류장에 있는 동물들의 먹이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맹금류에게 닭가슴살이나 메추리, 꾀꼬리에겐 밀웜을 급식한다. 야생에서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1주에 한 번은 금식시킨다. 최 연구원은 야생에서 매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금식이 동물 생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농가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인 고라니, 까치도 구조를 빼놓지는 않는다. 다만, 생태계를 심각하게 교란하는 미국가재나 붉은귀거북 등 생태교란외래종은 안락사한다. 임승효 수의사는 유해조수는 농림부에서 따지는 개념이고, 환경 측면에서는 그들도 똑같은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똑같이 구조하고, 치료한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에서는 까치가 전선에 둥지를 지으면 다 헌다. 그러다 까치가 떨어져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가 가서 살린다며 웃었다.

  분주한 그들의 손끝, 발끝에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쳤다. 어미가 양육하는것에 뒤처지지 않으려 모든 연구원이 돌아가며 정성스레 새끼를 돌본다. 말은 통하지않아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

  동물들을 야생으로 많이 돌려보내지 못할 때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발견돼 구조될 정도면 도망갈 힘도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거라 살리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많이 힘이 들죠.”

  잠깐 우울해도 그들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야생동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는 중이다. “내일 오기로 했던 하늘다람쥐가 오늘 오기로 변경돼서요. 급하게 가봐야 합니다.”

 

남민서·최낙준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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