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 한성대 교수 이민·다문화트랙
오정은 한성대 교수
이민·다문화트랙

  193971일 발효된 국적법의 충돌에 관한 약간의 문제에 관한 헤이그협약(Convention on Certain Questions Relating to the Conflict of Nationality Laws)’은 제1장 제1조 전문에 누가 자국의 국민이 될 것인지는 개별 국가가 국내법에 따라 결정한다(It is for each State to determine under its own law who are its nationals)”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자격과 범위를 결정짓는 국적부여 원칙과 절차를 주권국가의 기본적 권한으로 간주한 것이다. 지금도 국적부여는 주권국가 고유의 권한이다. 국적부여가 국민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자국 영내에서 출생한 자에 대한 국적부여 여부도 개별 국가가 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출생국가의 국민이 될 수도 있고, 외국인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정국적법 이래로 국적부여에 혈통주의(jus sanguinis) 원칙을 유지해 왔다. 국적법 제2조 제1항의 3에 부모가 모두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나 국적이 없는 경우에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 동법 제2조 제2항에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기아(棄兒)를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삽입하여 부분적으로 출생지주의(jus soli)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인도주의 실천을 위해 마련해 둔 장치이다. 출생한 국가와 상관없이 부모의 국적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당연시되어 온 국적부여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국적법의 혈통주의를 완화하자는 주장이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의 자녀도 국내에서 출생하고 국내에서 성장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자는 주장이다.

  혈통주의 완화는 수년전부터 이민자 인권 문제 토론의 장에서 언급되곤 했다. 불법체류자가 국내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들이 추방을 우려하여 자녀의 출생신고를 미루면서 미등록 아동이 양산되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부상한 혈통주의 완화 주장에는 다른 이유가 추가되었다. 저출산고령화시대 생산인구 확보 대책 중 하나로 국적부여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수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소수의 관계자들이 제기하던 국적법의 출생지주의 도입 문제는 지난 8월말 정부차원의 인구정책 TF’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졌다. 이후 해당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발전하였다. 온라인상에서는 출생지주의에 따라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자녀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국내출생을 이유로 국적을 부여하면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원정출산지가 될 것이라거나, 한민족 혈통이 곧 사라질 것이 라며 반대하는 입장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또 다른 이들은 이미 한국은 다문화 사회이고, 국내에 장기체류 외국인이 많으며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이주배경 자녀가 많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국적법에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로 찬성하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 두 개의 입장이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은 어느새 다인종·다민족 사회가 되었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타개할 과감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기에 지금 국적법의 혈통주의 완화 검토는 시의적절하다. 한국보다 앞서 유사 문제를 경험한 서유럽 국가들이 혈통주의를 완화하여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의 국내출생 자녀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이중출생지주의를 운영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출생지주의 도입의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국민정서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인종, 민족과 국민이 유사어처럼 인식되고, 인종적, 민족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한국인으로 불리는 것을 어색해 하는 경향이 있다. 국적법 변경은 국민의 수를 넘어 특성까지 바꾸는 사안이고 국민정서의 큰 흐름은 소극적이다. 신중하고 종합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