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궁금한 친구가 있었다. 뭐든 쉽게 하는데 다 잘 풀리는 사람. 친구가 딱 그랬다. 수업과 자습 시간에 맨날 조는데 성적은 잘 나오고, 대회 준비할 때도 수다 떠는 시간이 태반인데 최우수상 수상. 와중에 연애까지. 질투가 나기보다 부러웠다. 쉽게 살면서 좋은 결과를 내다니. 그때부터 그 친구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야간 자습실에 친구가 들어가기 전까지 옆에서 공부하고, 같은 팀으로 대회를 나가보기도 했다. 결국 얻은 건 친구 따라 나간 새벽자습으로 생긴 다크서클뿐.

  대학에서도 그 친구는 학점부터 학생회, 동아리, 대외활동까지 다 잘 챙기고 있었다. 지난 여름, 우연하게 함께 밥을 먹었다. 이때다 싶어 비결을 물었다. “인생 몇 회차니?” 처음엔 막 웃었다. 부끄럽다고도 했다. 비결을 말하려는 친구의 입이 달싹였다. 숨을 죽였다.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될 대로 되라.” 자기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끝내기보다, ‘될 대로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임한단다. 물론 그 순간에는 열정적으로 집중하지만, 너무 집착하면 부담만 될 뿐이라고. 이 일에 실패하더라도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지고, 결과도 좋게 나온다고 말해줬다.

  그 날도 나는 친구와의 점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었다. 취재가 잘 안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원에게 답이 왔나 계속 메일을 들락날락하고, 인터뷰 녹음한 건 언제 풀지 시간을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계산하고. 어찌할 수 없는 일에 가슴 졸이고, 다가오지 않은 일에 온 마음을 썼다. 미래를 위한 과정이고 준비라는 식으로 쌓아둔 걱정이 오히려 나를 가로막았다.

  여전히 걱정을 하긴 한다. 하지만, 걱정에도 여유가 생겼다. ‘난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니 이젠 생각 말고 쉬자라는 여지가 나에게도 생겼다. 조금이나마 다른 일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어차피 어려운 일, 마음이라도 쉽게 덤벼보자는 배짱도 생겼다. 학점에, 스펙에 챙길 게 너무 많은 요즘이다. 가끔 일상이 없다고 느껴져 지칠 때, 이 말을 떠올린다. 너무 애쓰지 말자될 대로 된다.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승은 기자 lik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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