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왜 거기서 나와?” 하루 평균 2시간씩 총 4, 13건을 배달했다. 건 당 3500원에서 4000원씩 4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버는 동안 많은 지인과 마주쳤다. 민트색으로 무장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음 참는 지인들을 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먼저 인사를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며 기업들은 적자를 거듭했지만, 배달업만은 매출이 폭증했다.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은 월간 주문 수가 3000만 건에 육박하며 2년 전보다 두 배 가량 주문이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배달 라이더 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배달의 민족 측은 수요를 맞추고자 본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하루 한 시간도 가능한 배달 아르바이트인 배민커넥트제도를 도입했다.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신청 지역 내에서 앱을 이용해 원할 때 업무를 배당받고, 개인 자동차, 킥보드, 자전거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일주일 단위로 정산이 이뤄지고, 전업인 배민라이더스와 달리 부업을 표방하기에 주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든 시대. 각자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배달 라이더를 자처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기자도 나흘 동안 배민커넥터가 돼봤다.

알바는 연일 낙방... 커넥터는 바로

  배민커넥터가 되기로 마음먹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지원 절차는 이상하리만큼 단순했다. 알바도 면접을 보는 세상에서 단순히 개인정보 몇 가지를 입력하고 신분증과 통장사본을 안내받은 메일 주소로 보냈더니 가입이 완료됐다. 교통수단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문자안내에 따라 배민 라이더스앱을 설치한 후, 배민 스토어를 통해 38750원에 헬멧과 가방을 구매했다. 앱 사용법과 고객 대응 방법 등에 대한 온라인 교육이 끝나자 배민커넥터로서의 자격이 주어졌다.

  그전까지 알바는 낙방의 연속이었다. 덜컥 배민커넥터가 되니 손쉬운 성취에 머쓱한 기분도 들었다. 3일 뒤, 헬멧과 가방이 도착했다. 헬멧을 착용하고 가방을 두르자 민트색에 정복당한 내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해서 용돈 좀 벌어봐야겠다는 열정이 차올랐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은 상상도 못한 채.

기자가 다음 배달 건을 위해 신규 배차를 확인하고 있다.
기자가 다음 배달 건을 위해 신규 배차를 확인하고 있다.

 

오르막길은 라이더의 천적

  927일 오후 1, 점심시간에 맞춰 첫 배달 업무를 시작했다. 배차 방식에는 ‘AI 배차일반배차방식이 있다. 직접 동선을 짜서 배차를 요청해야 하는 일반배차보다는 AI 배차를 추천한다는 교육 영상의 말을 믿고 AI 배차를 선택했다. 이윽고 성신여대역 주변에 있는 서도바지락칼국수의 배달 건이 추천 배차됐고, 이를 수락했다. 성신여대 역 주변에 있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받은 후, 개운사길 골목에 있는 배달지에 도착해야 하는 동선이었다. 안암역 근처에 있던 나에게 8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거리는 약 1.8, 자전거로 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나선 첫 배달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안암역에서 보문역 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있었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페달을 밟았지만, 오르막길의 끝을 정복할 수는 없었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며 겨우 오르막을 올랐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겹치니 벌써 6분여가 지난 상황.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땀방울을 날리며 질주했다. 자칫 위험할 수 있었지만, 초조하게 가는 시간 앞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분을 초과한 채 식당에 도착했고, 음식을 받았다. 음식 픽업 자체가 늦었기에 배달지까지 돌아가는 시간은 약6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AI 배차를 통해 한 건의 배달이 다시 수락돼있는 것을 발견했다. AI 배차 방식은 추천 시 거절을 누르지 않으면 자동으로 그 배달 건이 배차되는 방식임을 그때 알았다. 심지어 방향은 완전히 반대 방향.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왕초보 커넥터는 침착함을 잃어갔다. 우선, 왔던 언덕길을 돌아와 배달지로 향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첫 번째 배달을 마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락됐던 두 번째 배달 건은 식당 도착이 이미 지연된 상황이었다. 식당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배달이 힘들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와서 그러시면 어떡해요. 진작에 말씀해 주셨어야죠. 알겠습니다.” 호된 신고식이었다. 다음 배달부터는 ‘AI 배차오르막길두 개는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오르막길은 배달 커넥터들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후로도 보문역 방향 언덕길, 본교 법학관 후문 쪽 언덕길, 회기역 방면 언덕길 등 다양한 오르막길을 마주했다.

  한 달여간 배민커넥터로 일해온 최지호(·24) 씨는 자전거를 이용하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최근 전동 킥보드로 교통수단을 바꿨다. “오래 일할수록 아찔한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자전거는 타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그때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사고 위험이 급증해요.”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큰 사고가 날 경우도 부지기수다. 시간 엄수를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미처 자동차나 사람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들의 사고는 최근 4년간 2000여 건에 육박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전거, 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커넥터들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올해 들어 모두 산재보험 가입이 필수가 됐다.

기자가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인터폰을 누르고 있다.
기자가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인터폰을 누르고 있다.

 

따뜻이 맞이해 주는 사람들

  지난달 27일에 3, 29일에 4, 이번 달 5일에 2, 7일에 4건 총 13건의 배달을 다녔다. 북쪽으로는 성신여대 역, 서쪽으로는 보문역 너머, 동쪽으로는 월곡역과 회기역, 남쪽으로는 제기동역 너머까지가 주요 배달범위였다. 첫 배달의 교훈을 통해 일반 배차로 배차 방식을 바꾸고 스스로 시간을 조정해 가며 배달 지연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배달했다. 능숙한 라이더들은 동선에 맞춰 2, 3건을 한 번에 해결하기도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한 번에 한 건의 배달만을 처리했다. 제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으로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마주했던 식당 사장님들의 친절은 없던 힘도 불어넣어 주었다.

  안암오거리 교차로 아는집밥의 사장님은 커넥터가 학생임을 알아보시고는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혼자 힘으로 돈 버느라 고생이 많아요. 식혜라도 한 모금 잡수고가.” 개운사길 샐러데이의 사장님은 조금 늦게 도착한 커넥터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시며 힘을 북돋아 주셨다. “고대생이에요? 정말 고생이 많아요. 조심히 가세요!”

  사장이라고 여유가 있어서 배달 대행업체를 쓰는 것은 아니다. 안암역 주변에서 핸섬베이글을 운영하는 A씨는 배달 수수료를 상당 부분 감당하지만, 고객 분들이 많이 배달을 찾으니까 배달업체를 쓴다고 말했다. 오고 가는 손님이 줄어들다 보니 찾아오는 커넥터들이 반갑다고 말하며 웃으시는 분도 계셨다.

  절반 정도의 고객들은 문 앞에 음식만 놓고 가달라 부탁했지만, 집 앞에 찾아오는커넥터를 친절히 맞이해 주는 고객도 있다. “배달의 민족입니다.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라는 커넥터의 말에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라는 말로 화답하는 이들이다.

  나흘간 업무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번 돈은 44000원 남짓, 시급으로 따지면 5500원 정도다. 최저시급 8590원보다는 낮은 액수지만, 내 맘대로 일할 수 있어 좋았다.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가끔 어둠 속에서 길도 헤맸다. 일이 끝나면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해졌다. 하지만, 민트색 헬멧을 눌러쓰고 바람을 가르는 순간 속박 없는 자유가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기도 했다.

  플랫폼 노동. 일자리를 쉽게 구하기 힘든 세상에서, 접속하고 몸을 움직이면 돈을 버는 기회가 열렸다. 원하는 만큼, 달리고 싶은 만큼만. 자유에 안전의 무게가 걸려있지는않다. 포스트 코로나, 변화하는 직업의 세계 속 당신의 선택지다.

신용하 기자 dragon@

사진박상곤 기자 octagon@

QR코드를 통해 기자의 배민커넥터 체험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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