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밴드사운드 접목

눈과 귀 사로잡고 열풍 만들어

재밌되 뻔한 음악 안 하겠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11에 범 300마리 정도는 내려온 것 같다는 1020의 열렬한 주접을 받는 밴드가 있다. 판소리 수궁가의 주요 대목을 밴드 사운드로 재해석한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 이날치는 조선 후기 명창의 이름이다. 본래 줄광대로, 줄 위에서 날치처럼 잘 논다고 해서 이날치라 이름 붙여졌다. ‘날치라는 이름이 주는 생경하면서 생동감 있는 이미지가 마음을 끌어 밴드 이름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과연 날쌔다. 2019년 데뷔 이후 현대카드 콘서트, 네이버 온스테이지 등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단기간에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해외 반응도 뜨겁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협업한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 6개 영상의 조회 수를 합치면 1억 뷰가 넘는다. 통통 튀는 이날치의 사운드에 익살스런 춤사위가 어우러졌다. 세계에 한국의 소리를 알렸다는 찬사가 이어지는 중이다.

  그간 판소리는 국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대중의 외면을 받아왔다. 현대 언어와의 거리감, 전통에 매몰된 경직성에 관객을 잃었다. 조선 후기 대중문화 최전방에 있었음에도 급변한 음악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명맥만 유지하던 판소리를, 단숨에 음원차트 최상층으로 안착시킨 게 이날치다. 비결은 단순했다. 우리가 즐거운 음악을 한다.

왼쪽부터 이철희(드럼)·이나래(보컬)·장영규(베이스)·안이호(보컬)·신유진(보컬)·정중엽(베이스)·권송희(보컬) 씨다.

 

  - 판소리의 주 향유층이 아니었던 1020세대 반응이 뜨거운데

  “확실히 관객층이 확장됐다는 생각은 든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청년들의 리뷰를 보고 다양한 관객층이 있다는 걸 느꼈다. 기쁘고 감사하다.”

 

  - 팝과 국악을 결합한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이날치의 결성 과정이 궁금하다

  “2018년에 광주아시아문화전당과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가가 수궁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음악극 <드라곤 킹>을 제작했다. 그때 음악감독으로 장영규, 소리꾼으로 지금의 이날치 보컬들이 합심해 음악을 만들었다. 공연 이후, 당시 음악을 댄스곡으로 편곡해 클럽에서 공연이나 한번 해볼까 했다. 드럼에 이철희, 베이스에 정중엽까지 가세해 지금 이날치의 형태를 갖췄다.”

 

  20191, 홍대 클럽 채널1696’에서의 공연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없이 공연했다. 클럽 분위기에서 창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클럽의 허름한 분위기가 하다 느꼈다. 관객들이 맥주 한 잔씩 하면서 우리 음악에 몸을 맡기는데,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공연에서도 첫 곡이 범 내려온다였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장은 좀 했던 것 같다.”

  힙한 분위기에 유례없는 조선의 리듬이 더해졌다. 이날치의 노래를 처음 접한 관객들 중 공연 관계자도 여럿 있었다. 그 흐름이 이어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거쳐 6월엔 정규 앨범도 발표했다. CD말고 LP.

 

  - 정규 1집을 바이닐(LP)로 발매한 이유는

  “음악을 즐기는 매체나 구조 자체가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CD도 과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음악의 결과 좀 더 맞닿아있는 매체를 선택하고 싶었다. 뭔가 소장 가치도 있고.

  그런 맥락에서 LP를 선택했고 고음질 음원 다운로드 코드도 넣었다. 전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한 것 역시 그런 판단의 연장선상이다. 일단 바이닐을 받아보면 느낌이 온다. , 내가 뭔가 대단한 걸 손에 넣었구나!”

이날치의 1집 수궁가의 LP 표지

  LP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고음질, 대용량의 CD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열과 외부충격에 취약하고, 잡음도 심하다는 단점에서다. 하지만, 어느새 통통 튀는 잡음마저도 아날로그 감성이라며 대중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된 LP. 판소리의 곡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전통 판소리는 시장성을 잃었다는 인식이 크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상성을 잃었다. 현대 언어와의 거리감으로 인해 즉각적인 전달이 어렵다고 아쉬워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문제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판소리가 가까이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닌, 늘 같은 모습을 한 채 저 멀리서 존재하는 낯선 것이 돼버린 것 같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단절된 전통을 회복하고자 만든 보존 시스템이 그 목적성을 헤매면서, 판소리가 급변한 음악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중음악 최전방에 존재했던 판소리가 가장 후방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나이 많은 소리꾼, 한복,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 기이한 훈련방식과 같은 판소리의 이미지가 대중매체를 통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고정되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판소리에서 관객이 사라진다는 건 그걸 지키고 향유하는 소수의 이들에게 더욱 고난이었다. 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예대까지 일련의 전승 코스를 밟아온 청년 소리꾼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청년 소리꾼들도 입시 전쟁을 이겨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일선에 뛰어드는 한국 청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살 걱정을 가장 먼저 하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꿈에 대한 고민으로 치열하다. 국악단에 들어가거나 팀을 결성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도 하는데, 창작을 시작할 때 대체로 정부기금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날치의 보컬들도 같은 고민으로 뭉친 청년 소리꾼의 집합. 새로운 시도를 고민했다. 시도에 있어 첫 번째 고민은 전통이었다. 얼마나 지키고, 변형하는가. 입시와 콩쿠르에서 강조하는 기술적인 완성도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엄격함, 전통이 갖는 신성성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 무게를 덜고 자유로움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 전통 판소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 판소리 형식에서 벗어나 네 명의 보컬이 기존 장단의 빠르기를 바꾸고 서사 중심이던 장단을 반복 구절을 만들거나 짧은 곡으로 편곡했다. 의상도 전통 코스튬에서 벗어났으며 각 보컬 민낯 그 자체를 내보이며 자유롭게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사실 이날치의 소리는 전통 수궁가를 그대로 가져와 해체하고 편곡한 곡이기 때문에 창법이나 사설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리꾼이 네 명이라 한 사람이 부를 곡을 나눠 부르거나 합창을 한다. 솔로 파트에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고, 합창할 때는 조화를 이뤄야 하는 점도 다르다.”

 

  소리꾼의 창을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리드미컬한 힙합처럼 들리게 하는 건 드럼과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밴드 사운드의 몫이 크다. 전통 판소리에서 고수가 소리꾼과 한 호흡으로 극을 이끌었다면, 이날치의 드럼과 베이스는 서로 번갈아 균형을 맞추며 최소한의 멜로디로 중독성 있는 리듬을 만든다.

  거기에 장군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춤사위까지 더해지면 내적 댄스가 폭발한다. 어느 하나 빠진 게 없다. 세상에 이런 게 존재했나 감탄케 한다. “처음에 장영규 선생님께서 앰비규어스와 협업하자고 제안하셨다. 각자 연습 후 무대에서 만났을 때, 독특한 의상과 춤사위에 우리도 관객으로 구경하는 듯했다. 음악과 춤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작품이 된 것 같아 두 팀 서로 고마움을 가지고 활동에 임하고 있다.”

 

  - 소리, 장단, 춤사위까지 전혀 다른 판소리가 됐다. 국악계에서는 이날치 신드롬을 어떻게 바라보나

  “처음 이날치 활동을 시작할 때, 전통 판소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다른 국악 전공자들이 이 활동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아마 부정적으로 평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우리의 활동을 응원하고 잘 되길 바라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판소리 전공자가 밴드를 만들어서 팝 씬에 뛰어든 것도 드문 일이고,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전통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저절로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기 드문이날치의 노래를 어떤 장르로 규정해야 하는지 일각에선 열띤 토론 중이다. ‘조선 팝’, ‘조선 펑크등 연일 신조어를 창조해내고 있다. 이날치는 얼터너티브 팝밴드를 표방한다. “판소리를 전공한 보컬이 4, 수궁가를 바탕으로 활동하다 보니 국악 밴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크로스오버 국악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날치 음악은 다르다. 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을 주고, 더 넓은 시장으로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르의 한계를 거부한 팝 음악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 구스타프 클림트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날치도 시대의 판소리를 한다면, 어떤 판소리로 정의하고 싶은가

  “가치의 반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그것을 목적의식이라 한다면 그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 순간 우리 음악 자체가 특정 시대와 가치에 갇히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비롯한 대다수의 고전이 그렇지만, 어떤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은 특정 가치와 시대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인간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것일 텐데, 우리는 그것까지 알 수 없다. 그저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겁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조합한다. 그 다음은 우리를 즐겨주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어떤 음악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우리가 즐거운 음악을 하고 싶다. 그래야 그 음악에 진정성이 생기고, 보고 듣는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할 거라 생각한다. 늘 재미있고 자연스럽되 뻔한 음악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글 | 이선우·이성혜 기자 press@

사진제공 | 이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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