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요일, 일 때문에 A와 점심에 밥을 먹었다. 일요일 오전 A로부터 전화가 왔다. “화요일에 나랑 밥 먹은 사람이 코로나 확진이래. 그래서 나도 조금 전에 코로나 검사 받고 왔는데, 내가 확진되면 너도 검사 받아야 할 것 같아서 급히 연락한 거야.”

  처음엔 말로만 듣던 코로나가 드디어 내 코앞까지 온 것 같아 황당하면서도 신기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식은땀이 났다. 내가 확진자가 되면 어떡하지? 밥 먹은 게 소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코로나에 걸릴까봐 그런 게 아니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만난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확진자라면 그들에게 옮겼을 수 있다. 결혼을 앞둔 친구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고 거기엔 임신부도 나왔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도 있다. 회사 당직도 2번이나 들어갔다. 내가 확진되면, 나는 어마어마한 죄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일요일 오후 10시가 조금 넘어 A로부터 음성!”이라는 카톡 메시지가 왔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이 몰려왔다.

  그 다음부터는 분노였다. 하루 종일의 불안과 초조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닌 것도 아니고, 문 닫은 식당을 강제로 열고 밥을 먹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죄인이 될 뻔 했던 나는 코로나 확진자를 죄인 취급하는 상황에 화가 치밀었다.

  여기저기서 우리나라 방역 성과를 떠들어댄다. 대통령과 그가 속한 정치집단, 그리고 그 집단에 줄을 댄 언론이다. 그들은 그러면서 확진자를 경솔한 자 취급한다. 죄인과 다를 바 없다.

  지난 개천절, 마침 출근날이라 시내에 나간 나는 시청역부터 광화문역까지 가는 동안 5번이나 경찰 검문을 받았다. 어딜 가냐고, 왜 가냐고, 출근한다고 하니 사원증을 보여달라 요구했다. 이런 상황이 실제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난 4일 대통령 비서실장이 광화문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살인자라 하는걸 보며 뒤늦게 이해했다. 나는 살인미수 혐의로 검문을 받았던 것이구나.

  모두가 코로나 특수 상황을 이야기한다. 외국에 비해 나은 우리 상황이 정부의 노력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우리의 기본권인 자유는 무사한가. 모든 것이 용납되는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의 방역 그물망이 선택적으로, 정치적으로,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로 살포되고 있지 않은가 더욱 의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수 십 년 전에도 다르지만 비슷한 논리로 자유가 억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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