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학습해 음악 완성도 높여

음악 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

취향별 맞춤형 작곡이 목표

 

  3분짜리 음악을 2초 만에 만드는 작곡가가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2016, 국내 최초로 그를 세상에 내놓은 작곡가의 아버지 안창욱(GIST AI대학원) 교수를 모셨다. “악보를 쓰는 데는 2초가 걸리고, 사람들한테 들려줄 노래를 만드는 데는 10초가 걸립니다.”

  피아노곡부터 EDM, 힙합 등의 대중가요까지 장르 무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작곡 중이다. 모차르트도 울고 갈 천재 작곡가의 탄생, 무엇을 보고 배웠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작곡가의 길을 걷고있는 걸까.

  “지금까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음악이론, 작곡이론이 있죠. 그것들을 AI가 인식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화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사람이 만든 이론을 AI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죠. 이 기술이 이봄(EvoM)이 음악을 작곡하는 데 있어 기본 뼈대를 이룹니다.

  그 다음 이봄이 음표들을 '무작위'로 배치해 곡에 살을 붙여요. 그리고 음악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곡이 얼마나 유효한지 판단하도록 하죠. 인간이 만든 이론과 AI 기술, 두 가지가 밀접하게 결합된 결과 곡이 만들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안창욱 교수는 "AI 작곡가의 활성화는 음악시장의 확대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보통 AI에는 딥러닝기술을 활용하지 않나요

  “맞아요. 실제로 외국에선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룩셈부르크의 아이바(Aiva)와 미국의 앰퍼뮤직(Amper Music)AI가 만든 음악을 상업화하고 있어요. 이들은 자본력이 좋아서 꽤 퀄리티가 좋은 사운드를 뽑아냅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봤을 때는 완성도가 떨어져요. 멜로디가 단순하단 뜻이죠.

  일반 사람들도 노래를 많이 들으면 작곡할 수 있잖아요. 음악이론을 전혀 몰라도 예전에 들었던 음악 기반으로 흥얼흥얼대면서요. 이게 딥러닝을 이용한 작곡 기술과 같습니다. 많은 음악들을 데이터로 세뇌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해외 AI 작곡가들은 음악이론을 몰라요. 클래식 이론을 모르고 곡을 쓰기에 멜로디는 클래식처럼 들릴지 몰라도 곡의 체계성이나 세련됨이 떨어지죠. 이봄은 음악이론을 전문적으로 배웠습니다.”

 

  비인간적인 작곡능력은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학습한 음악이론에 기초, ‘진화연산을 통해 인간이 작곡한 음악에 근접한 수준의 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연산을 돌리고 있다. “이봄(Evom)의 이름이 저희 기술의 핵심인 진화연산(Evolutionary Computing)’에서 따온 거예요. 지금 이봄이 만든 곡의 완성도는 인간이 만든 곡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봄과 인간이 만든 곡을 각각 놓았을 때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예요.”

  전문 분야는 감성적인 피아노곡이다. 재즈, 힙합에 비해 수학적인 표현이 쉬운 클래식은 체계화 정도가 높아서 비교적 작곡이 용이하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에선 특히 클래식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클래식은 저작권이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기계학습을 위해선 데이터에 사용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또한 음악도 AI가 알아들을 수 있는 디지털화된 폼, 미디(MIDI)로 바꿔줘야 하는데 클래식은 이미 많은 수가 디지털화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AI 작곡가에게 투입하면 됩니다. 비용과 시간의 측면으로 봤을 때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클래식을 많이 활용하는 거죠.” 천재 작곡가 이봄이 갓 뽑아낸 곡은 이렇게 들린다.

 

  이봄이 가장 자신 있다는 뉴에이지 계열의 피아노곡, 분명 감성적인 노래라고 했는데, 직접 들어보니 악기 소리긴 하지만 소리가 늘어지고 미세한 잡음도 섞여 나온다. “사실, 이봄이 혼자서 만든 노래로는 한계가 있어요. 이봄이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미디 형태로 음악을 바로 출력하거나 실제 악기들의 소리를 녹음해 라이브러리화 된 가상 악기 소리를 내보내요. 미디보다는 가상악기의 소리 퀄리티가 높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직접 녹음을 하지 않은 거라 기교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유튜브 채널 'MUSIA'에는 이봄이 작곡한 곡들이 업로드된다.

 

  - 손가락 12개로 연주해야 하는 노래도 작곡한다는데

  “AI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의 신체능력을 고려하지 않아요. 가끔 손가락이 10개인데 11, 12개가 있어야 연주가 가능한 노래를 작곡하기도 해요. 그래서 AI가 곡을 뽑을 때는 전문 작곡가가 한번 필터링을 합니다. 신체능력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은 수정을 해서 연주자 분에게 드려요. 음역대가 너무 자유롭게 퍼져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부분도 수정을 하죠.

  이런 AI 행동에 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AI는 나름대로 자신의 곡을 쓰잖아요. 자유롭게 자신의 곡을 쓰고, 만약에 사람이 그걸 활용한다고 하면 일자리 창출이 되는 거죠. AI 작곡가가 만들어내는 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그 곡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인력도 같이 늘어나잖아요. AI가 작곡한 음악을 사람이 부르기 전에 먼저 필터링할 수 있도록, 그렇게 AI와 인간의 협업이 이뤄지는 거죠. AI 작곡가의 등장은 오히려 뮤지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수의 인기 작곡가가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만들어내는 음악이 중심이 되는 현재의 음악 시장. 안 교수는 AI 작곡가가 배고픈 작곡가들과 함께 많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편곡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해 결과적으로 음악시장의 다양화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다. “AI 작곡가가 사람을 대체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AI가 완벽하게 모든 걸 만들어줄 수 없잖아요. 좋은 곡들을 생각 없이 많이 만들어주면, 그걸 뮤지션들이 가져가 굉장한 작품 활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기회가 열린다고 하는 거예요.”

 

  - AI 작곡가들이 만들어내는 곡은 표절 시비가 붙지 않나요

  “딥러닝을 기반으로 하는 AI 작곡가의 경우, 기존의 곡을 학습해 작곡을 하기 때문에 표절의 우려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이봄의 기술을 토대로 볼 때 이론적으로 표절은 없습니다. 이봄은 빅데이터가 아닌, 지식과 랜덤성에 기초하기에 표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로 기존 곡과 멜로디가 유사한 곡을 만들 수는 있겠죠.”

 

  방어는 쉽다. 기술을 오픈해 기존의 데이터를 전혀 쓰고 있지 않다는 것만 밝히면 된다. “아직까지 AI 작곡가의 표절에 관한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실제로 AI 작곡가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까지 도달한 지금, 이와 관련된 법 정비나 학계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AI 작곡가는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까요

  “사람들은 AI 작곡가가 만든 음악이 명상’, ‘힐링에 잘 어울린다고 해요. 성격대로 조용하고 생각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잘 만드나 봐요. 사실, 후크송 같이 머리에 딱 박히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멜로디를 이봄이 쓰기는 기술적으로 어려워요. 음악이론에 기반해 무작위로 음을 가져다 붙이면서 작곡을 하는 탓에 종종 잘 안 쓰이는 구조의 곡을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언젠간 이런 음악도 ‘AI 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향유되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람이 듣기에 거북하다는 평이 많지만, 현대 음악도 옛날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음악으로 평가되잖아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을 발하죠. AI의 음악도 미래에는 하나의 온전한 장르로, 더 나아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트로트 열풍이 한창인 요즘, 이봄은 트로트 작곡을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이봄의 아버지, 안창욱 교수는 이봄을 만인의 작곡가로 키우는 게 꿈이다. 개개인의 음악 선호도를 스스로 파악하고 그 규칙을 학습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곡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요즘 음악 스트리밍 어플도 사람들이 자주 듣는 음악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취향에 맞는 음악들을 추천해 주잖아요. 언젠간 사람마다 자주 듣는 음악들의 규칙이나 속성을 스스로 뽑아내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알아서 만드는 방향으로 이봄을 발전시키고 싶어요. 그러면 모든 사람이 나만의 작곡가를 하나씩 갖게 되겠죠.(웃음)”

 

이승은 기자likeme@

사진제공안창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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