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들이는 생활SOC 사업

입지선정에 경제성 고려해야

유지 위해선 주민참여가 중요

  “디자인비까지 들여서 전망대를 지었다고 들었는데 별거 없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안 가요.” 용인시 상현동 주민 우윤정(·48) 씨가 설명하는 문화시설 아르피아타워.

  20126월 용인시는 198억 원을 들여 하수종말처리장 위에 스포츠센터, 아트홀, 전망대 등이 포함된 타워를 만들었다. 굴뚝과 문화시설을 복합한다는 발상으로 착공 초기 시민의 기대를 모았지만, 관람객이 뜸하면서 전시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의 경우 예산낭비 지적은 더욱 크게 제기된다. 경북 영주시에 사는 김형규(·36) 씨는 시에서 콩박물관과 인삼박물관을 운영 중인데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홍보 차원의 형식적 사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2022년까지 국비 30조원을 들여 추진하는 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 복합화사업’(생활SOC 사업)을 두고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생활SOC 사업은 공공도서관, 체육문화센터 등의 여가 시설을 비롯해 어린이와 취약계층 돌봄 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도로, 철도 등 종래 SOC의 목표가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면 보육, 복지, 문화 시설 등 생활SOC는 실질적인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자체의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성급한 정책 추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단점 공존하는 복합화

  917일 정부는 2021년 생활SOC 복합화 사업 149개를 선정했다. 각 지자체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업을 신청하면 국무조정실이 최종적으로 선정해 사업비 중 일부를 국비로 보조하는 방식이다. ‘생활SOC 복합화는 공공도서관, 국민체육센터, 생활문화센터, 국공립어린이집, 주거지주차장 등 13종 시설 중 2개 이상을 하나의 부지에 건립하는 것을 말한다.

  시설 복합화는 지자체의 부지확보에 도움을 주고 이용주민의 만족을 높이는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진영효 두리공간연구소장은 각각의 시설이 별도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없고, 이용주민은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다생활 인프라 보급률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 실정으로 볼 때 복합화는 효율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복합화 시설을 낙후 지역에 건립하면 지역격차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시설 종류별로 사업을 관리하는 중앙부처가 다르다는 점이다. 사업에 관여하는 부처가 많아지면 집행의 신속성은 떨어진다. 사업 추진기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내실 있는 계획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지자체에서 공공도서관, 국공립어린이집, 주거지주차장으로 구성된 복합화 사업을 추진하면 각각의 관계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와 예산을 책정하는 기획재정부, 사업을 실현하는 지자체까지 사업에 관여하게 된다.

  김상봉(공정대 정부행정학부) 교수는 조직의 수가 많을수록 부처 이기주의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부처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설 통폐합을 통해 복합화를 달성하면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인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주민이 있을 때, 어린이집이 멀리 떨어진 공공도서관과 합쳐진다면 해당 주민은 불편을 겪게 된다. 주민 수요를 고려한 입지선정이 중요한 이유다.

  김상봉 교수는 집적화는 누군가의 접근성을 높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접근성을 낮추는 양면성이 있다단순히 한 읍면동에 하나의 복합화 시설을 짓는 등 보여주기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들의 수요와 동선을 충분히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평구에 위치한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주민 참여가 중심이 된 생활SOC 사업의 대표적 사례다.
은평구에 위치한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주민 참여가 중심이 된 생활SOC 사업의 대표적 사례다.

 

입지선정부터 신중해야

  공공시설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꼼꼼한 입지선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시설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동시에 재정 상황에 맞는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전국 737개의 공공시설 중 수익이 나는 시설은 84개로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비율은 5% 수준으로 떨어진다.

  현재 생활SOC의 입지선정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은 인원수와 접근성을 고려한 국가최저기준이다. 이 기준은 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서비스 수준을 국가 차원에서 설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국공립어린이집 공급을 검토할 때 특정 지점이 복지부의 국공립어린이집 공급기준(500인당 1개소)에 미달하면 서비스부족지역으로 분류된다. 국토부의 기초생활 인프라 국가최저기준(도보5)에 미달하면 서비스 사각지역이 된다. 국무조정실은 기준 미달 정도를 바탕으로 서비스 우선 공급 지역을 검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기준에는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따른다. 종래의 기준은 쇠퇴 정도가 심한 지역을 사업대상지로 선정하는데, 이런 곳은 시설이 건립돼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구형수 부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시설을 건립하면 인구를 유발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생활SOC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수요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구형수 부연구위원은 지역을 근린으로 세분화해 수요를 파악하고 차별화된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요를 파악하는 데는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활용된다. 가령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 그 지역의 인구가 감소한다고 파악해 시설 투자를 줄이는 것이다. 정책의 목표는 시설 자체가 아니라 시설 서비스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설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 부연구위원은 수요가 없는 지역은 과감하게 시설을 없애고 주민의 접근성 향상을 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주민의 수요를 파악하는 방식도 있다. 지자체에서 사업을 계획한 뒤 공청회를 열거나 설문조사해 주민의 의사를 묻는 식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전성만 연구위원은 주민이 자발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조직해 건립과 운영에 참여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쉽지 않다고령화된 지역의 경우 공무원이 설문을 돌리고 불평이 없냐고 묻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지역공동체 참여가 관건

  생활SOC 복합화사업에 선정된 지자체는 사업비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받지만, 일반적으로 운영과정에선 보조금이 없다. 이후 운영에는 지자체 차원의 사업비 운용이 요구된다. 전성만 연구위원은 지자체장은 선거를 위해 대규모 시설을 유치하고, 중앙부처에서도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신규 사업을 계획한다운영에 어려움이 생겨도 계속해서 필요 이상의 공급이 발생할 유인이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생활SOC 복합화사업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선 주민의 활발한 참여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진영효 소장은 주민들이 시설의 기능을 결정하고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궁극적으로 주민자치방식으로 시설이 운영된다면 주민은 애착을 가지고 시설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참여의 활성화를 위해서 사회복지급여의 지역 내 활용에 대한 논의도 있다 .전성만 연구위원은 사회복지 급여를 생활SOC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로 지급하는 방안 등으로 수익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생활SOC 인지도를 높이고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주민 주도의 상향식 정책 추진은 주민 간 수평적 협력이 기초가 된다. 주민들의 관계 형성을 위해선 정책이 장기적인 계획 아래에서 진행돼야 한다. 이병민(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주민들의 관계에 의해 파급효과가 생기는 정책은 정부의 단기 정책으로 투입 효과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최소 10년을 두고 비전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SOC 사업이 애초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정책적 고려와 세심한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남민서·최낙준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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