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빈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갈 곳 없는 이들에게 각자 집에서 안전을 기하라는 말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던 지난 1, 그들은 여전히 역전 한 켠에서 박스를 덮고 살아가고 있다.

  ‘오다리와 소주 한 병. 1116일 오후 530분 서울역 근처 통일로에 있던 중년의 사내에게 슬며시 들이밀었다. 주인을 닮아 때가 누렇게 묻은 마스크. 사내는 귀찮은 듯 몸을 뒤척이다 소주병을 보고 눈을 빛냈다. “인터뷰하면 나도 이거(소주)줄 테요?” 사내보단 젊어 보이는, 옆에 있던 꾀죄죄한 노숙인도 끼어들며 즉석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집과 가족을 놓친 이들에게 이름은 죄명에 가까웠다. 자기소개에서 이름은 빠지고, 나이를 먼저 말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거리생활 경력.

  서울역 ‘2개월 차’(·33)가 말했다. “원래 충무로 쪽에서 지내다가 서울역으로 온 지는 2개월 정도 됐습니다. 꽤 오래 살았었는데, 신고가 들어왔대요. 나 좀 치워달라고’. 경찰이 와서 쉼터 소개해주고 그랬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역으로 왔습니다. 충무로보단 여기가 훨씬 살기 편해요. 근처 센터에서 끼니도 챙길 수 있고, 가끔 줄 잘 서면 빵이나 음료수도 줍니다.”

  서울역 ‘1년 차’(·52)도 거들었다. “아무래도 서울역 근처에서 서울시가 하는 자활지원 활동이 몰려요. 사회단체 봉사활동도 많죠. 서울시에서 가장 많을 거예요. 여기는 그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도 사람들이 신고를 안 하거든요. 서울시도 여기에 노숙자가 많은 걸 아니까 지원을 집중하는 거고요.

인파가 몰리는 서울역, 광장 한 구석에는 박스를 늘어놓고 생활하는 노숙인이 있다.
인파가 몰리는 서울역, 광장 한 구석에는 박스를 늘어놓고 생활하는 노숙인이 있다.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나는 내 나름대로

  ‘2개월 차10년 전만 해도 경기도 광주 쪽에서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때는 벌이도 있었지만, 사고를 당한 이후 세상이 뒤집혔다. 다리와 허리를 크게 다친 그를 받아주는 현장은 없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다치면 그걸로 끝이에요. 소속이 명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끝까지 책임을 져주지도 않아요. 퇴원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변변치 않은 놈인데요, .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고 길에 나앉으니 생각보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곳들이 많더라고요.”

  모든 걸 내려놨다 했지만, 노숙인으로 처음 사람들의 시선을 대면해보니 비참했다. “사람을 벌레 보듯 하면서 티 나게 피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분들한테 피해준 것도 없는데, 비참해지고 그랬어요. 근데 이제는 그냥 저도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괜히 신경쓰다보면 싸움 나요. 술 먹고 가끔 시비 거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싸움 붙으면 무조건 없는 우리가 손해에요.”

  “뭘 그런 걸 신경 써.” ‘1년 차는 시선들 끝에서 철칙을 세웠다.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사는 거고, 저는 저 나름대로 사는 거죠.” 같은 거리에 기거하는 노숙인들 간의 암묵적인 룰에도 철칙이 녹아있다. 절대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것.

  하지만, 법도 없는 이 거리에서 도난은 빈번하다. 특히 덮고 자는 박스 도난이 잦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있다 보니까 남의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안 건드리는 게 룰이지만 가끔 훔친 걸 들켰을 때 시비가 붙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절반 이상은 알코올 중독일 걸요. 술 취해서 일 한번 크게 내는 거죠. 그래도 경찰서가 코앞에 있으니 큰 사건은 안 일어나는 것 같아요.” ‘2개월 차가 말했다.

  아직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지고 있는 ‘1개월 차’(·44)는 행여 누가 물건을 훔칠까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제가 잘 때 물건을 탐내는 경우가 많아요. 경찰들이 좀 나서서 해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이 행패를 부릴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저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 괴롭습니다.”

노숙인들이 영등포역 희망지원센터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숙인들이 영등포역 희망지원센터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 이후 지원 감소 확연... “그래도 저는 돌아갈 겁니다

영등포 보현종합지원센터 무료 급식소에서 노숙인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줄을 서 있다.
영등포 보현종합지원센터 무료 급식소에서 노숙인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줄을 서 있다.

 

코로나19로 지원 감소 

의료복지도 무력화돼

제대로 살고 싶지만 

일어설 의지가 없습니다

코로나로 도움의 손길 줄어

  ‘노숙자의 천국이라고 말해도 부족함 없는 서울역이지만,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지원이 많이 줄었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이 지난 3월 자체조사를 진행한 결과, 서울 지역 노숙인과 극빈자를 대상으로 한 급식 지원단체 33곳 중 13곳이 지원을 중단했다. 지원을 중단한 기관은 모두 교회와 비영리단체로 구성된 민간기관이다.

  민간기관의 지원이 감소하자, 그 부담은 모두 공공기관에 쏠렸다. 8곳의 공공기관은 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예산이 정해져있어 추가 부담을 감당할 길이 없다. 노숙인 보호시설 겸 급식 제공 기관인 안나의 집은 코로나 이후 100인분 이상의 급식을 더 준비하고 있다. ‘안나의 집김민희 사회복지사는 평소에는 500에서 550명 정도 분량만 준비하면 됐었지만, 지금은 600에서 650명 분량을 준비해야 한다정부지원 40%와 자부담 60%로 운영되는 민간기관인데, 정부 지원금이 늘지 않아 자부담이 상당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노숙인들도 코로나 이후의 지원 감소를 체감한다. ‘1년 차는 미용봉사단체의 발걸음이 뜸해져 여태 머리를 못 자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밥줄이 끊겼어요. 무료급식소가 많이 닫아서 예전에 비해 끼니를 챙기기 힘들어요. 사회단체의 발길이 준 것도 느껴요. 저 머리도 못 잘라서 되게 길잖아요.”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는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봉사단체에서 와서 마스크는 나눠줬어요. 얼마 전에는 단체로 코로나 검사도 시켜주더라고요. 저도 그때 음성이 나왔습니다. 근데 코로나 때문에 예전보다는 지원이 줄어들었다고 해요.”

  코로나가 와도 크게 개의치 않는 이들이지만, 이들이 모르는 노숙인의 말로는 더욱 잔인하다. 노숙인들을 위한 병상이 사라졌다. 저혈압, 당뇨, 결핵, 외상 등에 질병에 취약한 이들이지만 노숙인을 담당하던 시립 병원에서 코로나 격리 병동과 병상을 의무적으로 마련하게 되면서 병상 부족 현상이 생겼다. 영등포 보현종합지원센터 박강수 팀장은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경우 보건소들이 어느 정도씩 협조를 해주어서 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곳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무기력, 나에겐 희망이 없다

  “쉼터? 들어가면 따뜻하고 좋아요. 근데 언제까지나 쉼터에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쉼터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생겨요. 괜히 죄의식 들고 열등감 들도록 만드는 상황들이 있어요. 그러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살다가 나오죠.” ‘2개월 차는 이번 겨울이 길거리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다. 무섭기는 하지만, 쉼터에 들어갈까 생각도 들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서울시에는 총 3개의 공립 노숙인 보호시설이 있다. 그중 두 개가 서울역 인근에 있다. 따뜻한 보금자리와 자활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며칠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센터 안에선 술을 못 먹는다. 단체 생활도 필수다. 김민희 사회복지사는 아무래도 공간 규모상 단체생활을 하기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1년 차에게도 잠깐의 센터 경험이 있다. 퇴소 사유는 역시 이다. “들어가면 체계적으로 생활해야 하고 술도 못 먹게 해요. 물론 거기 계신 전문가들이 다 저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만, 적응이 안돼서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쉼터나 센터에 들어가도 얼마 못가 나오고 또 힘들어지면 다시 들어가고, 반복하는 거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은 대부분 저랑 비슷한 마음일거예요.”

  무기력.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는 목표도 있지만 제대로 살 의지는 없다. “솔직히 사람답게 살고 싶죠. 근데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점점 의욕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일단 몸이 불편해지니까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잘 안 서요. 몸이 불편하면 센터에 밥 얻어먹으러 가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희망이 없어요. 일단은 이렇게 술에 의존하면서 살고 싶어요. 밥 먹을 때 밥 먹고, 지원받는 물품 놓치지 않는 게 지금 제 목표입니다.”

  ‘2개월 차는 절연한 부모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지 못한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는 죽어도 싫어요. 엄마라는 인간은 집 나가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예요. 참다못해 스무살 때 집을 나와서 혼자 살았는데 저도 이 꼴이네요. 매일 부모님을 원망해요. 가끔 가족이 지나가면 그냥 부러워요. 그런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거예요.”

  그래도 길거리 때가 가장 적게 묻은 ‘1개월 차는 생각을 달리한다. “저는 저 사람들과 다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아내도, 딸도 있었어요. 평범한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의 제안으로 도박에 빠져 점점 큰 액수에 손을 대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죽일 놈입니다. 도박을 들키면서 아내와 사이가 멀어졌고, 일이 안 풀리면 아내에게 손을 대기도 했어요. 결국 이혼했습니다. 딸은 엄마를 따라갔고요.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다시 돈 벌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돌아갈 겁니다. 저는 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신용하 기자 dragon@

사진양태은 기자 aurore@

인포그래픽│임승하 기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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