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스터즈 터클의 <>에 나오는 이 문장으로 책 <9번의 일>은 시작된다. 하지만, 이 문장이 무색하게도 책 속 주인공의 삶은 직업과 노동에 끌려가다시피 한다. 경제적 이유들이 수십 년간 근무하던 직장에 대한 애착감과 묘하게 결부되어 주인공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며, 단순히 위에서 시키니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그에게 자신이 행한 노동으로 문제를 겪게 될 지역 주민들의 안부는 안중에도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다만 ‘9으로 불릴 뿐이다. 본래 그는 통신 회사의 수리, 설치, 보수를 담당하였으나 해당 직무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그는 영업 부서로 옮겨지게 되고, 자신의 본래 직무가 아닌 영업에 소질이 없던 그는 점점 더 도시 외곽 지역으로 발령받게 된다. 변두리의 한 소읍에서 그가 받은 번호는 78구역 19. 그곳에서 그의 이름은 없었고, ‘9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3’, ‘7등의 숫자로만 불릴 뿐이었다.

  이 작품은 먹고사니즘이라는 생계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결박되어 살아가야 하는 그의 영혼이 노동에 의해 조금씩 순수함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회사가 들이대는 자본의 논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려는 마음, 지역 주민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갉아먹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실직이 발생하는 사회,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또 살아갈 사회는 ‘9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며 어떤 직업들은 그 필요성을 잃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올라타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수많은 ‘9들이 양산될 것이다.

노동은 필수적인 행위인가?”, “생이 위협되는 상황에서 ‘9들이 자리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9들을 위해 어떤 사회를 꾸려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은 누구나, 언제든지 ‘9이 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꼭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다만, ‘9들 역시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의 논리가 생()을 비집고 들어오더라도, 놓칠 수 없는 도덕적 한계는 어디인가?” 자본의 논리로 인해 도덕적 신념을 저버렸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9의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소민(미디어20)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