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재생 전
청년주택이 만들어지기 전, 삼양동 빈집은 넝쿨들에 뒤덮여 방치됐다.
빈집 재생 후
빈집을 매입해 만든 삼양동 청년주택. 낙후된 건물들이 즐비한 지역에 활기를 준다.

 

산발적 진행은 부작용 낳아

원주민과 입주자 화합 기대

지속 위해선 동참 유도해야

 

  “마을 위쪽은 거의 다 비어 있는 것 같더라고.” 노원구 백사마을에 위치한 5평 남짓해 보이는 낡은 집에서, 마을에 빈집이 얼마나 있냐는 질문에 한 주민이 이렇게 답했다. 본지 기자가 백사마을을 30분 정도 둘러보는 동안 마주한 주민은 단 3명.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돼 방치된 백사마을은 들어서기만 해도 서늘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떨어져 있는 대문과 깨진 창문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시선을 돌릴 때마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내 빈집은 9만 3402가구다. 7만 9000가구 가량이었던 2015년 이후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빈집 문제의 심각성이 화두로 떠오르자 서울시는 2019년부터 빈집 활용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낙후된 빈집을 매입해 임대주택, 마을공원 등으로 탈바꿈하며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보였지만, 체계적인 계획이 부족하고 빈집 매입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빈집 문제 해결 위해 걸음 뗀 재생사업

  빈집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집 자체가 낙후돼 살기 어려워졌거나 가족 간의 분쟁으로 집이 상속되지 않은 경우 빈집이 된다. 특정 동네의 주거 여건이나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자연스레 빈집으로 방치된다.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한 빈집도 많다. 서울시 대부분의 빈집이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발생했다. 건축공간연구원 박성남 부연구위원은 “투자를 노리고 재개발 지역에 집을 사서 월세를 놓느니 차라리 재개발을 바라고 집이 더 낙후되도록 놔두는 것”이라고 전했다.

  빈집이 늘다 보면 마을 전체가 ‘슬럼화’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빈집은 전염성이 있어요.”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말했다. 빈집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고 주변 미관을 해친다. 붕괴 위험도 높고 화재 발생 가능성도 생겨 주변 주택의 안전도 위협한다. 범죄 장소로 둔갑하기도 한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과 박일현 빈집활용팀 팀장은 “실제로 범죄자들이 빈집을 은신장소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며 “안전상의 위험을 해소하는 데 빈집 재생사업의 취지가 있다”고 말했다.

  빈집 발생으로 말미암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특례법)’이 2018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빈집특례법을 통해 빈집의 명확한 기준이 생겼고,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빈집특례법에 의하면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주택’을 빈집으로 간주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는 2019년도부터 빈집 활용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랜 기간 방치된 빈집을 매입해서 청년 혹은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으로 활용해 주거난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약 2년이 흐른 지금까지 총 366개의 빈집을 매입했고 300개 정도의 빈집을 생활SOC사업이나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는 상태다.

 

형평성 도모하는 빈집재생

  빈집 활용 도시재생프로젝트의 의의는 재개발과 달리 원주민 정착률이 높다는 데 있다. 전면 재개발을 하는 경우 거주하는 사람은 임차인이고 실소유자는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다. “빈집 재생사업은 실소유주가 거주하는 경우에만 철거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원주민의 방출을 줄일 수 있다”고 박성남 부연구위원은 말했다. 재개발이 효율성에 집중한다면, 빈집 재생은 형평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유선종 교수는 “형평과 효율의 문제는 항상 상충해왔다”며 “재개발이 확실히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원주민의 정착률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반면 빈집 재생은 원주민들이 재정착하도록 돕는 동시에 청년들의 유입을 늘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양동에 위치한 빈집을 매입해 만든 청년임대주택은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과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다. 빈집을 재생시킨 임대주택은 입주 대상자를 다양하게 설정하는데, 삼양동 청년주택의 경우는 청년창업단체 설립자들을 대상으로 입주 희망을 받았다. 청년주택에 입주한 패밀리파머스 대표 심성훈(남·27) 씨는 “팀별로 한 달에 30만 원씩 월세를 내고 있는데, 서울에서 이 금액으로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년주택이 주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임대주택 내에서 커뮤니티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주택 1층에는 주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임대주택에 입주한 청년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조성해 주민들과 청년들의 화합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형평성으로 상생 도모하는 빈집 재생 프로젝트,

빈집 소유주와 합의 도출이 최대 과제

 

체계적인 빈집 재생 계획 필요

  빈집특례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빈집 재생에 대한 거시적인 계획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빈집재생사업은 매년 주어진 예산에 맞춰 매입이 가능한 빈집들을 선정해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성남 부연구위원은 “서울시 내 어떤 지역에 빈집이 많은지, 어느 부분부터 개선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며 “매년 몇 채의 빈집을 매입해 재생시킬지에 대한 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빈집 재생계획 수립 과정에서 사업의 담당 주체를 명확하게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의 경우 빈집 재생을 구에서 담당해야 하는 것인지, 시 전체에서 담당해야 하는 것인지 정해져 있지 않다. 따로 담당부처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추가 업무를 배정하는 것이기에 업무 선호도도 높지 않다. 때문에 도시계획과에서 맡아야 하는지, 주택정책과에서 해야 하는지 담당자와 부서를 지정하기가 모호한 상황이다.

  구체적 계획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재생사업은 부작용을 낳는다. 창신동 재생사업이 그 예다. 창신동에서 진행한 빈집 재생에는 시작 전에 해당 지역 구성원들에게 빈집 활용 도시재생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해 벽화를 그리고 빈집을 주민편의시설로 변화시키는 등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생활에 달라진 게 없다”며 또 다른 재생사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제약돼있어 같은 지역에 재생사업을 여러 번 진행하기는 어렵다. 유선종 교수는 “창신동이 일종의 사회실험 대상이 됐다”며 “실험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빈집 재생을 진행해선 안 될 것”이라 전했다.

 

빈집 매입 어려운 재생 현장

  빈집 활용 도시재생프로젝트 담당자들은 매입이 가능한 빈집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박일현 팀장은 “빈집을 매입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빈집 소유자와 금액을 둘러싼 합의를 원만히 이루지 못하면 사업은 당연히 무산된다”고 전했다. 현재 빈집 매입은 감정평가 결과로 나온 금액 이하에서만 가능한데, 빈집 소유주가 그 이상의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빈집특례법에 따르면 주변 지역에 ‘굉장히 해가 되는 빈집’에는 철거명령을 내리고 강제철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항 자체가 주관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넓기 때문에 강제철거를 하게 되면 사유권을 침해했다는 민원이 발생하기 쉽다.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법률은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빈집 매입은 소유주와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박성남 부연구위원은 “빈집소유주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해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소유주와의 연락이 어렵다는 점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토지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에도 소유주와의 합의에 어려움을 겪는다.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현행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현재 건축법에 맞지 않게 지어진 구옥들이 많기에 이들은 리모델링을 기피한다. 또한 리모델링 시 50%에서 80% 정도의 비용을 지원해주지만 남은 금액은 빈집 소유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 경우 소유주들은 리모델링에 쉽사리 나서지 않는다. 생활이 어려운 실거주자의 경우 생활비도 없는데 몇천 만 원을 내라는 요구에 선뜻 응하기 어렵다. 투자 목적으로 빈집을 구입한 이들의 경우에도 리모델링을 해서 임대주택으로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재개발을 노려 아파트를 갖는 게 더 수익성이 좋기에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더 나은 빈집재생을 위한 방안으로는 건축 특례와 세제 특례가 거론된다. 현재는 건물보다 토지에 대한 세율이 더 높기에 빈집을 철거하게 되면 보유세를 더 많이 지불하게 된다. 때문에 빈집을 재생시키는 경우 양도세나 취·등록세를 감면해주는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쉽게 빈집을 찾을 수 있도록 건축 특례도 고민해야 한다.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려면 현재 주차장 부지를 일정 정도 확보해야 하고 도로와도 접해야 해서 대상 빈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박성남 부연구위원은“이런 경우 건축특례를 마련해 주차장 비율 등의 규제를 완화해준다면 재생사업 대상 빈집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전했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빈집 재생에 동참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선종 교수는 “빈집세 같은 것을 도입해 사람들이 빈집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고 그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면 빈집 재생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strong>빈집 재생 후</strong><br>빈집을 매입해 만든 삼양동 청년주택. 낙후된 건물들이 즐비한 지역에 활기를 준다.<br>
빈집이 밀집한 노원구 백사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
빈집이 밀집한 노원구 백사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

 

글|이승빈 기자 bean@

사진|박소정 기자 chocopie@

사진제공|SH서울도시주택공사 도시재생본부 빈집Bank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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