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 앞에서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려 하는 주장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소수자 정체성 운동에 대한 반대 맥락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기실 규범 앞에서의 개인의 선택과 책임만을 강조하는 논리는 오래전부터 반복됐던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그가 넘어서려 했던 노동 착취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임금은 노동요소 한 단위의 추가 투여가 생산에 기여한 양만큼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봉틀 앞에서 어떤 생산성을 기대해야 한단 말인가? 생산구조 자체의 문제를 망각하는 이와 같은 왜곡은 피해자의 비극이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변 하사의 해고가 군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현재 MTF(male-to-female) 트랜스젠더도 복무가 가능하다.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당한 바로 그다음 날부터 말이다. 변 하사가 전역심사 연기를 요청했고 인권위가 이를 권고했음에도, 국방부는 시행령 개정 바로 전날로 심사를 강행했다.

  몇 십 년 된 논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구조의 모순 앞에서 구조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은 이론으로 현실을 끼워 맞추는 일일 뿐이다. 피해자 앞에서 선택과 책임을 들먹이며 이성적인 척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판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느냐고 되묻기 전에 판의 논리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어야 한다. 비판은 대상의 합리성을 내부의 한계 지점에서 논파하여 그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만 자신을 스스로 조건 짓지 않고 그 환경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고의란 행위자가 알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변희수 하사를 둘러싼 판을 만든 것은 국방부였고, 국방부는 이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고의적인 행위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윤석(문과대 사회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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