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위상> 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김현

  누구나 한 번쯤, 인터넷을 유랑하다가 우연히 본 누군가의 글에 마음을 사로잡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제도권의 승인 없이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의 표현을 세상에 전할 수 있고, 동시에 느낄 수도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문학은 어떠한 효용을 가져야만 하고, 또 가질 수 있는가. <한국문학의 위상>은 제6한국 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지만서도, 그 앞에 적은 분량으로 실려 있는 글들은 언제 읽어도 촌철살인이라 할 만한 충격을 준다.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은, 그것이 전통적인 형태이든 혹은 새로운 형태이든, 아무런 효용이 없다. 그러나 다만 모두에게 하나의 역할이 되어줄 뿐이다. 그것이 무슨 역할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문학은 누군가에게는 표현의 수단이자, 공감해주는 친구이자, 시대를 보여주는 뉴스이고, 과거를 떠올리는 앨범이다. 누군가는 문학이라는 현실의 도피처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문학이라는 현실의 거울을 찾기도 한다. 그것은 그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의 기쁨과 슬픔의 일부분일 뿐, 사실상 아무런 효용은 없다. 문학은 역설적이게도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쓸모를 가지는, 無用之用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모두에게 효용이 있지만, 모두의 효용성은 없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김현은 문학이 그 자신의 쓸모없음을 통해 쓸모만 중시하는 세상을 불편하게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문학은 모두의 효용성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효용을 가지는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언제 어느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문학은, 전통적 장르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가질 수 있는효용은 형용할 수 없이 다양하지만, ‘가져야만 하는효용은 없다. 그것이 또한 문학의 효용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모두의 효용성이 없는 문학의 무용지용의 매력을 인정함으로써 문학의 종말론을 반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다현(문과대 국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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