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해야 했다. 남겨진 물건 중 가장 처치 곤란한 건 성인용 기저귀였다. 구매가의 반값 정도로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올렸고, ‘당근!’이라는 알람 소리가 2주간 이어졌다.

  한 박스, 두 박스가 팔려나가고 마지막 두 박스를 사간다고 연락이 왔다. 후련한 마음이 밀려오며 언제쯤 거래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잠시 후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주무셔야 나올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성인 기저귀를 사가는 사람의 상황이 그려졌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6개월 동안 침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요양원에 보낼 수는 없다며 가족 요양을 택한 이모는 하루 다섯 번 이상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이모는 수발을 들며 고관절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다. 이모는 구매자가 앞으로 겪을 고생이 선하다며 간호용품을 주려 했다. 물건을 받으러 온 구매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역시나 상황은 비슷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지 않겠노라 선언했고, 가정에서 간호해야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는 여성을 이모는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안았다. 마지막 인사는 행복하세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였다.

  취재를 위해 범죄피해자와 통화했던 경험이 있다. 취재원은 남편에게 몇 십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했다. 폭력을 당할 때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그렇게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고소를 진행했고, 소식을 들은 남편은 일주일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수십 년의 불행이 또 다른 불행으로 덮어졌다. 핸드폰에 들리는 취재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야기를 들은 후 감히 당신을 공감한다’, ‘힘들었겠다’, ‘유감이다따위의 말은 하지 못했다. 그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괜히 들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꼭 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통화를 마칠 때 떠올린 말은 행복하세요”.

  신문 속 세상은 항상 소란스럽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은 너무 크고 대단해 같은 세상이 맞나 싶기도 하다. 눈앞에 마주하는 사람은 다 같이 아픈 사람들인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만남은 귀하고 짧게 스치는 인연마저 소중하다.

  당신과 어디서 만나도 행복하세요하고 싶다.

송다영 기자 forever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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