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땅투기 의혹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LH뿐만 아니라 공직자 전수조사에 대한 요구까지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4년 전, 사회생활의 첫발을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 LH에서 뗐다면 나는 이번 사건의 광풍에서 비껴갈 수 있었을까?

  LH 직원들의 선택을 옹호하려는 건 결코 아님을 먼저 밝힌다. 그저 관념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옳고 그름 가운데 하나를 현실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떤 행동을 할지 스스로 궁금했을 뿐이다.

  대학을 갓 졸업했던 시기였다면 자신 있게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다르다라고 말이다. 지금은 단언하기가 힘들다. 사회생활은 자신이 그렇게 단단한 인간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보자면 이제 막 신입사원 티를 벗은 2018,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어느 자리에서나 이슈였던 때였다. 그 무렵 업무차 잡은 식사 자리에서 상대방이 피해자의 외모를 언급하면서 무례한 말들을 이어갔다. 심히 불쾌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순조로운 업무 진행을 위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무력감을 느꼈다. 학생 때는 그런 순간이 오면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이런 일들은 이후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침묵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했으나 이번 LH 사태를 보면서 퍼뜩 불안해졌다. 옳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기 주저하는 순간이 쌓여 종국엔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모르고 모든 것에 무뎌진 사람이 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단단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힌트를 얻었다. 김영하 작가가 최근 펴낸 에세이 3부작 <다다다>에서다. 작가는 서문에서 “‘보다말하다읽다로 이어지고, 그 셋은 순환하면서 인간을 더욱 강한 존재, 세상의 조류와 대중의 광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라고 적었다. 많이 보고, 말하고, 읽다 보면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도 있지 않을까.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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