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0.84명. 인구데드크로스가 현실화됐다.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정부는 지금까지 출산장려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가가 인구데드크로스라는 위기에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당사자인 청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의 청년은 왜 아이를 포기했는지 알아보며 청년의 삶을 들여다봤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이유에 대해 20대 초반 대학생 20명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답을 따라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개인주의인가

  #“공동체보다 개인을 더 위하게 돼 비혼과 비출산을 많이 선택하는 거 같아요.” -임채린(문과대 영문20) 씨

 

  20대가 말하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차이점’은 개인주의다. 가정을 꾸리고 인구를 재생산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자평한다.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가정을 이루면 삶 자체가 안정적일 것 같아 결혼과 출산을 원한다”는 김현성(남·21) 씨는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두는 사회적 분위기가 비혼·비출산 선택이 많아진 이유”라고 말했다.

  거시적 관점에서 개인주의를 저출산의 이유로 꼽는 경향이 있지만, 스스로가 개인주의 때문에 비출산을 택했다고 말하는 응답자는 드물었다.

 

  허지원(심리학부) 교수는 청년 세대가 개인주의나 이기심 때문에 비출산을 선택한다는 논리는 착각이라고 말한다. 그는“사실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까지의 세대 중 가장 이타적인 세대”라며 “이들이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에 있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봉사와 기부에 가장 관심이 많으면서도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에 과도하게 짓눌려 있다. “내가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에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아이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출산을 주저한다. 비출산이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통념과 달리, 출산이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가 개인주의 때문에 비출산을 택했다고 말하는 응답자는 드물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A(21·여) 씨는 청년들이 비출산을 선택하는 이유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라고 답했지만 정작 본인은 개인이 아닌 아이에게서 비출산의 원인을 찾았다. A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한 경쟁 사회에 뛰어들어야만 했다”며 “내 아이가 같은 과정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김수민(성신여대·경제학20) 씨도 “지금처럼 불안정한 사회에서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크리라는 보장이 없어 출산을 주저하게 된다”고 했다.

  설령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이들에게 저출산 상황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근태(공정대 공공사회·통일학부) 교수는 “나의 행복이 더 중요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청년들에게 ‘개인주의의 팽배’나 ‘공동체의 약화’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는데, 이 논리는 공동체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공동체주의를 출산의 유인책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조영태(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출산에 대한 국가와 개인 간의 합의가 깨진 시점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며 사회의 위기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는 아이가 없으면 안 되지만, 개인은 아이가 없는 편이 이득인 상황에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비출산을 부추기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저출산에 어느정도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B(남·24) 씨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 직장에서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워요” -C(여·22) 씨

 

  많은 응답자가 결혼과 출산이 커리어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이라 전망한다. D씨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비혼과 비출산 선택 경향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미혼 3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30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향후 출산 의향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63.4%) 중 여성이 42.2%로, 21.2%인 남성에 비해 훨씬 많았다. 과거부터 남성보다 가정생활에 더 많이 기여해온 여성이 일에서 가정생활의 방해를 더 줄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출산으로 인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여성은 남성보다 출산에 대해 더 부정적이다. A씨는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유발하며, 사회적 자아로서의‘나’를 위협한다”며 “커리어는 물론이고 개인적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도 출산을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진출 높을수록 출산율 증가

  많은 해외 사례가 여성의 사회진출이 오히려 출산율을 높인다고 말한다. 김근태 교수는 여성의 사회진출은 높은데 출산율도 높은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스웨덴은 2019년 기준 OECD 가입국 중 여성의 경제 활동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출산율은 우리나라보다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김근태 교수에 따르면, 핵심은 여성의 사회진출 자체가 아닌 가정 안과 밖에서의 성평등 정도의 차이다. 가정 안팎의 성평등 정도의 차이가 클수록 출산율은 낮아진다. 가정 안팎의 성평등 정도가 동일하게 낮더라도 출산율은 올라가고 가정 안과 밖의 성평등 정도가 모두 높아도 출산율은 높아진다. 그는 “우리나라는 노동시장과 교육시장 등 가정 밖에서는 성평등이 많이 보장되는 편인데, 가정 내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만연하다”며 “결국이 차이가 저출산에 기여한다”고 했다. 실제로 통계청(2020)이 발표한 ‘2019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가정 내 남성과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의 격차는 2시간 17분이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진출률은 비슷한 수준인데 여성(3시간 13분)은 남성(56분)보다 3배 이상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애하고 있다. 김근태 교수는 “스웨덴은 가정 내외의 성평등 차가 굉장히 낮다”며 “이 차이가 스웨덴의 출산율을 높인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을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는 과도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스웨덴에서도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가정 내에서 여성이 겪는 가사 분담 불평등이 컸다”며 “이들도 수십 년간 제도와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지금의 상태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가정 밖과 안에서의 성평등 문화를 정립해간다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출산의 걸림돌이 아닌,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발표에 따르면, 스웨덴같은 나라들도 여성 경제활동 증가 초반에는 출산율이 하락하나 이후 여성 근무 여건이 안정화되고 여성고용률이 60% 선을 넘을 때부터 출산율이 증가했다.

 

노동자로서의 삶만 있는 건 아니다

  허지원 교수는 가정을 꾸리는 생애 과정이 여성의 삶에 장애가 된다는 관념이 형성된 과정을 지적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경력이 단절된다는 공포감도 결국 개인에게 내면화된 노동 중심적 사고라는 분석이다. 과거 남성이 가사노동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모습에 맞춰 가정 참여가 ‘노동’에 어떤 영향도 줘서는 안 된다는 관념을 심어줬다. 이렇게 된다면 여성은 물론, 육아 등 가사에 참여하려는 남성의 의지도 꺾이기 쉽다. 그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삶도 나의 선택인데, 사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결국 스스로도 엄마로서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고 전했다. 남성 중심적인 직업관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인간으로서, 부모로서 개인 인생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는 계획된 커리어에 어떠한 변수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한다. 이는 겉으로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나 성평등으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 노동 외의 생애과정 속 자아를 스스로도 부정하게 만든다.

 

자녀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 “내 일자리는 불안한데, 사교육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C(여·22)

  청년들은 자녀 양육에 너무 많은 돈을 쓰게 될까 두렵다. 지금까지 자신이 자라면서 받아온 부모의 지원 등을 생각하면 태어날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게 너무 많다. ‘30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 중 48.9%가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부족이 이유라고 말했다. 24.6%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되어서’, ‘24.3%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직 본인의 소득과 위치가 불안하고 당장 자리를 잡더라도 주거나 소득이 안정된다고 전망할 수 없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하락한다. 김근태 교수는 출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로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꼽았다. 재생산 본능은 인간이 가진 기본 본능이다. 청년들이 이 본능과는 반대로 판단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자기 자신의 미래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저출산을 막고 싶다면 청년의 일자리와 고정적인 수입을 통해 청년이 겪는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요 이상의 완벽주의 성향도 출산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허지원 교수에 따르면, 현세대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매우 강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한 엄마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세대다. 여러 양육법이나 사교육에 많이 노출되면서 아이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압도돼 있다. 그는 “많은 청년이 양육자로서 완벽한 이상형에 도달할 수 없는데 출산을 하는 것이 옳은지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조영태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장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물질적 지원을 누렸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럴 준비가 되지 않으면 가정을 꾸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과거보다 청년들은 부모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을 월등히 크게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출산으로 청년의 삶 들여다봐

  조영태 교수는 출산을 장려하는 책의 추천사를 거절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청년당사자들에게 사회는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출산을 ‘장려’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년의 자리에서 본 인구데드크로스는 국가의 위기이기보다 상처였다. 이 나라에서 마음 놓고 가정을 꿈꿀 수 없다는 신호였고 이 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기 힘들겠다는 무의식의 판단 중 하나였다. 여기에 어떤 설명을 붙여도 청년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글┃이정우 사회부장 vanilla@

사진┃박소정 기자 chocopie@

인포그래픽┃송원경 기자 b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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