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를 건너는 공연예술계

 

라이브 공연장 살리는 페스티벌

빈 객석을 채운 밴드사운드

채팅·이모티콘으로 팬들과 소통

 

  공연예술계도 코로나19로 격심한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공연예술기관 1694곳 중 코로나19 이후 휴업한 기관은 43.6%, 폐업한 기관은 2.2%로 집계됐다. ‘브이홀’, ‘살롱 노마드’, ‘에반스 라운지’ 등 대다수 인디 뮤지션의 음악적 터전인 홍대 라이브 클럽들 역시 줄줄이 폐업을 신고했다. 현재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예술계에 대한 지원책은 대부분 예술인의 창작활동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예술인 개인에 대한 혜택 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어 라이브 공연장 등 예술시설 및 공간을 유지, 보전하는 데에는 정부 지원과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다.

  민간 기업 ‘코드’는 이러한 라이브 공연장의 위기 극복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온라인 페스티벌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를 기획했다.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라이브 공연장을 살리고, 대중의 관심을 모아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피력하자는 취지다. 페스티벌은 ‘롤링홀’, ‘웨스트브릿지’, ‘프리즘홀’ 등 홍대 인근 5개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3월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됐다. 관람을 원하는 날짜의 티켓을 미리 구매하면 당일 진행되는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 티켓 및 굿즈 판매금과 후원으로 얻은 수익은 공연장과 뮤지션들에게 배분되며, 인디 음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금으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잔나비’, ‘브로콜리 너마저’, ‘다이나믹 듀오’, ‘DJ D.O.C’ 등 페스티벌의 취지에 공감한 총 67팀의 뮤지션이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홍대에는 저희 잔나비가 숨겨놓은 추억들이 많습니다. 홍대 클럽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는 선후배 뮤지션들이 만들어나갈 추억도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꼭 도움이 되고 싶어 참여했어요.”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남·29) 씨가 말했다.

 

각계의 도움 모여 완성한 무대

  “관객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줄 공연장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어요.” 밴드 ‘해리빅버튼’의 보컬이자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의 공동 기획자 이성수 씨는 올해 1월 초 주변 라이브 공연장들의 연이은 폐업 소식을 접했다. 빈 관객석과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 속에서 견디다 못해 무너진 것이다. “사실 그동안 공연장들이 버텨왔다는 게 비현실적일 따름이죠.”

  공연 산업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광경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는 평소에 친분이 있던 사단법인 코드의 대표 윤종수 변호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직접 온라인 자선 페스티벌을 개최해 라이브 공연장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페스티벌의 이름은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죽어가는 라이브 공연장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진행된 미국의 ‘#saveourstages’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기획부터 섭외까지, 한 달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기 위해 수많은 땀방울이 모였다. ‘프레젠티드 라이브’, ‘스쿨뮤직’ 등 총 22개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 온라인 공연 플랫폼 프레젠티드 라이브는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의 온라인 티켓팅과 영상 송출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백명현 프레젠티드라이브 대표는 “인디 록 음악의 요람과도 같은 홍대의 소규모 공연장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웠다”며 “다양성이 보장된 건강한 음악 산업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흔쾌히 플랫폼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익명 기부자와 자원봉사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여진(여·31) 씨는 과거 지친 현실 속 오아시스가 돼준 홍대 공연장의 추억 때문에 현장 진행 스태프를 자원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맥주 마시면서 편하게 관람할 생각으로 티켓만 구매해뒀는데, 공연장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더 보태고 싶었다”며“정신없고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무대에 설 뮤지션 섭외는 이성수 기획자가 맡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뮤지션들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참여를 제안했다. “친분이 없는 뮤지션한테는 편지를 써서 부탁하기도 했어요.” 기획 의도에 공감한 많은 뮤지션들이 선뜻 참여하겠다고 나서 페스티벌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밴드 ‘뷰렛’의 보컬 문혜원(여·41) 씨는 “코로나19 이후 공연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잔나비의 최정훈 씨는 페스티벌의 취지에 대해 “공연장 몇 곳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들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캠페인은 뮤지션과 기업, 자원봉사자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완성됐다.

 

떼창 없는 낯선 공연장

  3월 11일 목요일 저녁 7시, 하드 록 밴드 해리빅버튼의 무대가 예정된 홍대의 라이브공연장 ‘롤링홀’.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부터 웅장한 베이스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마주한 공연장은 무대와 관객석이 한눈에 담길 정도로 휑했다. 관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무대를 준비하는 스태프 8~9명뿐이었고, 한쪽에 쌓여있는 의자들은 할 역할을 잃은 채 늘어져 있었다.

  “자, 카운트다운할게요. 3, 2, 1” 현장 공연 진행을 맡은 스태프의 외침과 함께 무대가 시작됐다. 불 꺼진 무대에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동시에 서서히 조명이 켜졌다. 보컬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고, 공연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몇몇 스태프들은 다 함께 리듬을 탔다. 모르는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무대의 전율을 느꼈던 코로나19 이전의 공연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온라인으로 페스티벌을 시청한 김경애(여·40) 씨는 과거 대면 공연에서의 열정적인 환호성이 그립다고 말했다. “실제 공연장과 달리 언택트 무대에서는 떼창도 못 하고,뮤지션과 주고받는 호흡이 덜했어요.”

  아쉽기는 텅 빈 관중석을 마주보며 노래하는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뷰렛의 문혜원 씨는 “공연의 완성은 관객이라고 생각하는데, 온라인 무대에서 관객들의 피드백을 바로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잔나비의 최정훈 씨도 관중에게 현장감을 전달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관중과의 호흡 부재는 해소될 수 없는 아쉬움이죠. 큰 스피커에서공간을 압도하는 음압을 화면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어요.”

밴드 '해리빅버튼'이 40분 동안 언택트 무대를 펼쳤다. 연주 중간 중간 모니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밴드 '해리빅버튼'이 40분 동안 언택트 무대를 펼쳤다. 연주 중간 중간 모니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오히려 부담 없는 모니터 속 무대

  13일 토요일,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페스티벌이 생중계됐다. 공연장까지 직접 방문해야 하는 대면 페스티벌과 비교하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편리하게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었다. 뷰렛의 문혜원 씨는 비대면 라이브 공연이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가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여겼다. “생업이 있거나 거리가 멀어서 클럽을 직접 찾지 못하던 사람들도 손바닥 안에서 생생하게 라이브 클럽 문화를 즐길 수 있잖아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건반 김잔디(여·39) 씨는 “안락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무대를 관람했다는 후기를 읽었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비대면 무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채팅창이 뮤지션과 관중들의 소통창구가 돼줬다. 관객은 댓글과 이모티콘으로 화면 너머에 있는 가수들을 응원했고, 뮤지션들은 노래가 끝날 때마다 틈틈이 댓글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경애 씨도 댓글로 신나는 마음을 표출했다. “댓글창은 보면 볼수록, 쓰면 쓸수록 빠져드는 것 같아요. 멤버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이모티콘이나 공연장에서 점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이모티콘을 댓글에 달았어요.” 이아름(여·36) 씨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 유쾌했다고 전했다. “무대 중간에 간간이 밴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색다른 관람 방법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차츰 적응이 돼서 재밌었어요.”

  당일 예정된 뮤지션의 라인업 중 소란, 뷰렛, 잔나비, 카더가든의 무대를 선택해서 시청했다. 밴드 소란은 평소 대면 공연과 다를 바 없이 ‘나만 알고 싶다’라는 노래에서 후렴구 가사의 ‘싶다’가 반복될 때마다 화면을 향해 마이크를 넘겼다. 오프라인의 현장감을 모니터를 통해서도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관객과 뮤지션들은 어디선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오프라인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삭혀갔다.

관중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무대가 온라인으로 송출되고 있다.
관중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무대가 온라인으로 송출되고 있다.

 

애정 어린 관심이 변화 이끌 것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기존에 알지 못했던 뮤지션들을 새롭게 알게 됐다는 이들도 많다. 이모 씨(여·43)는 “가수 카더가든의 무대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했는데, 이제껏 몰랐던 훌륭한 인디 밴드들을 알게 돼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아름 씨도 기존에 알지 못했던 밴드 ‘406호 프로젝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좋은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몰라요. 이번 페스티벌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뮤지션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감사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션들 역시 이번 캠페인을 통해 인디음악을 향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했다. 잔나비 최정훈 씨는 “좋은 음악들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혜원 씨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비대면 라이브와 같은 새로운 공연 형식이 점차 보완되고 상용화되길 기대했다. “이번 페스티벌과 같은 의미 있는 공연들이 기획될 때마다 많은 관심과 피드백을 주신다면, 뮤지션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온라인 공연페스티벌은 약 4500만 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팬데믹 기간의 음악계는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처참한 전쟁터에서 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이 울려 퍼져서 행복했습니다.” 페스티벌의 피날레 무대에서 이성수 기획자가 말했다.

  공연이 삶의 전부인 뮤지션에게 공연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살아갈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덕희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국장은 정책 입안 과정에서 공연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연예술을 단순히 유흥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에요. 예술인들에게는 공연이 생계와 직결된 삶 그 자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세상에 다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위해서는 라이브 공연장이 그 자리에 남아있어야 한다. 공연장 대관료 지원이나 공연 장소 보존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 즐겼던 무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중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관심이 쌓이고 목소리가 커질 때, 비로소 우리의 무대를 지킬 수 있다.

기자가 온라인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기자가 온라인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글 │ 진서연 기자 standup@

사진 │ 박소정 · 서현주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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