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는 이동국 전 선수가 말했습니다.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모든 경기를 할 순 없다. 좋을 때와 나쁠 때의 격차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사회생활 5년 차. 처절한 경쟁을 초 단위로 하는 곳에서 4년여를 뛰면서 느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두 가지입니다. 아마추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지만 프로는 그러기 어려운데도 꾸준해야만 한다. 작은 불꽃이라도 꺼뜨려선 안 되고, 꺼지면 모든 게 끝이다.

  “휴대폰 끄고 동해 간다.” 지난 주말 지인에게 말했습니다. 끄긴 껐는데 도로 켜고 동해가 아니라 광주에 갔습니다. 계속 끄고 동해로 갔으면 멋있었을까. 3초 생각하고 접었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사 20년차 출신 이나가키 에미코님이 쓴 <퇴사하겠습니다>란 책을 줄을 쳐 가며 읽던 3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그런데 복지 서비스 등은 불편해질 것이니 감당할 수 있을 때 나가라’.

  왜 감당 못할까. ‘연금 펀드, 고향에 보낼 돈, 퇴사하는 순간 사라질 인맥.’ 디폴트 값은 고상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켜기 어려우니 못 끈다. 받아들이는 데 3초 걸렸습니다.

  꺼진 불을 다시 보라는 옛말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불꽃을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받아들이면 조심하라는 뜻이겠고, 인생을 바꿀 큰 기회로 받아들이면 잊지 마라는 뜻이겠죠.

  신문엔 양극화란 말이 적혀 있습니다. 죽는 사람이 태어나는 사람보다 많고, 인구는 줄테니 지방대를 구조조정하고 집값을 잡아서 인서울 아니면 죽는다는 국민들의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험생, 취업준비생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일 그만두고 다른 일 찾으려면 저도 여러분과 다시 경쟁해야 하니까요.

  꺼진 불은 안 보입니다. 양극화 앞에선 타오르는 불길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불을 계속 켜려고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합니다.

  휴대폰을 끈 후 동해 말고 광주에 가기까지 3초 걸렸습니다. 사회인에게 휴대폰 끄는 행동은 자살 행위니까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높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그 자살과 사회인의 자살은 좀 다른가 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인 자살지수는 높지 않을 겁니다. 한 번 끄면 다시 켜기 힘든 걸 다들 알 테니.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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