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미래의 주인공이자 현재의 동반자
어린이, 미래의 주인공이자 현재의 동반자
  • 이다연 기자
  • 승인 2021.05.02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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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한걸음

 

아동 향한 냉소적 시선 거둬야

어린이는 힐링 수단 아닌 ‘목적’

입시경쟁 대신 놀이 필요해

 

  “모든 어른들도 한때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어린왕자>의 서문 중 일부

 

  UN아동권리협약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철학가 야누슈 코르착은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선명히 쓰여진 노키즈존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어린이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잘못된 교육방식을 가진 일부 부모들로 인해 어린이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커져만 간다. ‘조카 물고문 살해’ 외삼촌 부부와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사건까지, 되풀이되는 사건 사고에 ‘어린이’라는 단어는 202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아! 이쁘다”라고 하면서 손을 잡아주거나, 아동학대를 가한 사람을 보고 “저런 죽일 놈들을 봤나” 하며 분노하는 것만이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은 아니다. 아이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자 우리 모두가 지나온 과거이기도 하다.

 

어린이 향한 잘못된 인식 개선해야

  4월 1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하며 계란과 고추장 양념을 빼달라고 요구했다가 직원으로부터 ‘맘충’ 발언이 섞인 욕설을 들었다는 사연이다. “아이 키우는 2년간 주위에 피해 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외출도 자제하고, 공공장소에서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작성자는 “아이가 계란 알러지가 있고 아직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재료를 빼 달라 했던 것”이라며 욕설을 들을만한 행동이었는지 반문했다. 작성자를 응원하는 누리꾼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낀 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요즘 ‘맘충’이나 ‘빠충’이라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예절 교육을 강조하면서 아이 가진 부모들을 비하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어요.” 이만영(본교·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제대로 된 어린이예절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사회적으로 아동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떻게든 아이를 통제해보려고 애쓰는 부모를 한탄하듯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안타깝다”며 “어린이와 그들을 키우는 사람에 대한 존중, 배려도 결국 어린이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전했다.

  ‘주린이’, ‘헬린이’ 등의 신조어 또한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냉소적 시선이 담긴 표현이다. ‘주린이’는 주식과 어린이를 합친 단어로 주식투자 초보자를 뜻하며, ‘헬린이’ 또한 헬스를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변호사는 “단지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라기보다는 아직 초보 단계에서 부족하고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멸시하는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이를 한없이 부족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전반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젊은이’, ‘늙은이’ 등의 용어와 대등하게 사용하며 아동의 대우를 격상시켰다. “최근 만들어진 이러한 단어들이 사용되는 행태는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용어를 창시했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며 김희진 변호사는 우려를 표했다.

 

  아동이 부모의 소유물처럼 인식되는 세태 또한 심각하다. 아동학대를 자녀훈육이라고 말하고, 자녀와 함께 자살하는 경우 동반자살이라고 지칭하는 것 모두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언어표현이다.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한유정 팀장은 “자녀에 대한 체벌도 엄연한 폭력이며, 자녀를 살해 후 자살하는 것을 동반자살이라고 칭해서는 안 된다”며 “아이를 자신의 마음대로 처우할 수 있다는 일부 부모들의 인식이 하루빨리 없어지는 사회가 오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희진 변호사는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활동만큼이나 성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어린이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로 소비되는 어린이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 속 아이들은 최근 미디어에서 가장 활발하게 소비되는 대상이다.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TV에 나오는 아이를 보며 힐링을 하고, 아동을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를 ‘덕질’하듯 사진이나 영상으로 소비한다. 실상은 보는 이를 더욱 자극할 각종 연출과 편집으로 인해 방송에 출연하는 아동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이브더칠드런 고우현 매니저는 2020년 아동 앞에서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연출해 아이를 울린 뒤 인터뷰까지 진행했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심의를 요청했다. 그는 “육아예능이 많아지면서 아동권리 침해가 우려되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곤란해하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특히 인기가 많은데,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어른에게는 그저 재미있고 귀엽게만 느껴지지만, 아이들에겐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어린이의 초상권 문제에 대한 인식도 무디다. 나주중앙초등학교 교사 유새영(35·남) 씨는 “예능 촬영은 보호자 동의 하에 진행되지만, 그 보호자가 과연 어린이의 초상권을 공개할 온전한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방송이 아동 자신에게 어떤 영향과 파급력을 미칠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송에 노출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등과 같은 뉴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아동 콘텐츠의 진입장벽은 더욱 낮아졌고, 수많은 ‘키즈 유튜버’가 탄생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1월 초, 일본 동요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무라카타 노노카의 영상이 SNS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처음에는 귀엽다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노카가 우동을 먹는 영상에 달린 “한국에도 우동이 있나요?”라는 자막이 일부 네티즌의 반일정서에 불을 붙였다. 노노카를 향한 악성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한국에서의 계정 운영이 중단되었다. 김희진 변호사는“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각종 악성댓글이나 욕설 등으로 인해 우울증을 비롯한 정서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교사들 사이에서도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을 올리는 ‘쌤튜브’나 ‘쌤스타그램’에 대한 논의도 뜨겁다. 유새영 씨는 “자신의 교실에 있다는 사실이 학생에 대한 모든 권리를 선생님이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아이들의 초상권에 대해 어른이 먼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상에서 아동인권이 유린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세이브더칠드런 측은 유튜브 아동권리 보호 캠페인을 진행해 유튜버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고우현 매니저는 “아동권리 침해요소를 캠페인 가이드라인에 포함시켜 미디어 내 아동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있게 존중해주세요 △‘영상을 잘 뽑는 것’보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주세요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주세요△아이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초상권은 보호돼야 합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놀 권리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하고 놀이동산 못 가는 게 제일 슬퍼요.” 김성지(13·여) 양과 장규원(13·여) 양은 야외에서 자주 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던 송연우(13·여) 양도 “매일 친구들과 나가서 놀고 싶은데, 다섯 명 이상 모이지 못하니 갈 곳이 많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2020년을 강타한 팬데믹으로 누구보다 많은 것을 잃은 아이들이다. 교문은 굳게 닫혔고,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해야 할 운동장의 모습은 썰렁하다.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등교하던 어린이들은 이젠 화면 속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이 더 익숙하다. 옆자리 친구와는 투명 칸막이로 가로막혔고, 친구들과 밥 먹으며 수다 떨기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6월 굿네이버스에서 실시한 ‘아동재난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아동이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 활동을 자유롭게 못 하는 것(23.6%)’,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숙제를 제출하는 것(20.2%)’, ‘친구들을 마음 편히 만날 수 없는 것(15.7%)’, ‘인터넷 사용 및 게임 등으로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는 것(12.9%)’ 순으로 나타났다. 한유정 팀장은“무엇보다 아이들 놀이의 질적인 저하가 문제”라며 코로나 시대 외부활동의 제한과 인터넷 과잉 사용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청소년 사회복지사이자 아동 인권 강사로 활동하는 전안나(40·여) 씨 역시 아이들의‘놀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를 과도한 학습으로 몰아넣으면서도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했다. 학교 일과가 끝나면, 마스크를 쓴 어린이들은 놀이터 대신 학원으로 향한다. 조율하(13·여) 양은 “평일에는 5시간 30분, 주말에는 8시간동안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린다”며 “힘들지만 예중에 합격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안나 씨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어른들도 주40시간, 주5일 근무하는데,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가는 시간을 통틀어 주 6일 이상, 주40시간 이상 공부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어린이의 놀이나 휴식의 결핍은 과열된 입시 경쟁의 영향이 크다.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확 낮아진 것 같아요. 성적표로 본인의 가치가 매겨지고, 학교나 사회나 가정에서 차별받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한유정 팀장은 이제껏 만나본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놀 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아동단체에서 자주 사용되는 ‘아동기의 상실’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삼는 어린이의 현실을 반영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동의 고유한 발달 및 행복을 위한 놀이나 여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새영 씨는 어린이들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서관 정도를 제외한다면 어린이들이 여가활동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가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선배, 교수님, 교직원, 동기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가잖아요. 아이들도 똑같아요. 좋은 어른을 만나고 올바른 환경이 뒷받침되면 타고난 성향을 긍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안나 씨는 어린이를 ‘신입생’ 또는 ‘신입사원’에 비유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강조했다. 어린이에겐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더 좋은 것들을 물려받아야 할 ‘계승자’로서의 어린이, 다른 하나는 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개선해 나갈 ‘창조자’로서의 어린이다. 어린이는 멋진 미래를 가꾸어 갈 존재기 이전에,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온전한 인격체다.

 

글|이다연 기자 idayeoni@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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