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전문병원에서 통일의학교실까지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에서 통일의학교실까지
  • 이성현·이주은 기자
  • 승인 2021.05.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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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의료원 93년의 역사를 되짚다

여성 의사 양성 초석 다지고

노동자·농민과 함께한 병원

차별 없는 사랑과 나눔 이어가

 

  본교 의료원은 민족정신과 박애정신을 신조로 차별 없는 사랑의 인술을 펼치고 있다. 1928년 설립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시작으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우석대학교를 거쳐 탄생한 의과대학은 민족의 힘으로 의학인재 양성의 기반을 다져왔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여의사 양성이라는 소명을 안고 세워졌으며, 이러한 설립 정신에 뿌리를 둔 본교 의료원은 오늘날에도 의료소외계층을 보듬고 있다.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대에도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본교 의료원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시대 소명 받들어 여성 의사 양성

  조선에 서양 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 개화파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이 의료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 (Horace Newton Allen, 알렌)의 치료로 목숨을 부지하자, 서양 의학을 향한 조선 사회의 관심이 커졌다. 1885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들어서며, 조선인들은 서양 의료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배제됐다. 유교 사상과 내외법이라는 법규에 따라 조선에 만연했던 ‘남녀유별’ 원리 때문이었다. 남녀가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던 당시 사회상에 비춰볼 때, 여성이 남성에게 몸을 보이고 진료를 받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조선 여성들의 현실을 마주한 미국 감리교 여의사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스크랜튼)은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 (保救女館)을 설립했다. 보구여관은 ‘여성들을 보호하고 구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명성황후가 하사한 이름이다. 보구여관의 환자들은 경제적 형편에 따라 의료비를 부담했는데,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여성 환자들은 닭, 달걀, 곶감 등으로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

  보구여관의 초대 관장 메타 하워드(Metta Howard, 하워드)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1890년 미국인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Rosetta Sherwood Hall, 홀)이 후임을 맡아 2대 관장으로 부임했다. 홀 여사는 가부장적 질서에 억눌려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당대 여성들을 보며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의료 활동’ 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조선의 의료와 위생 개선이 조선 여성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임을 역설했다. 이후 홀 여사는 본격적으로 조선 여성들의 의학 교육을 장려했다.

  그러나 당시 여성 의료인을 양성하는 정식 교육기관이 없었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대신 홀 여사는 광혜여원 의학강습소 학생 안수경, 김해지, 김영흥을 총독부병원 부설 의학강습소에 청강생으로 입학시켰다. 이는 근대 최초의 공식적 여성의학교육으로 여겨지며, 청강생들은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1918년 국내에서 교육 받은 최초의 여의사가 됐다. 조명희 본교 의과대학 여자교우 회 실장은 “본교 의과대학은 시대의 소명에 따라 태동했다”며 "환자에 비해 여의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에 여의사 양성에 중요한 첫걸음이 돼줬다”고 설명했다.

의학도서관 1층에 위치한 호의역사실은 의과대학의 민족정신과 박애정신을 기리고 있다
의학도서관 1층에 위치한 호의역사실은 의과대학의 민족정신과 박애정신을 기리고 있다.

민족의 힘으로 일궈낸 의학 교육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명칭을 바꾼 총독부 병원 부설의학강습소는 1926년부터 여학생의 청강조차 금지했다. 여의사 양성이 난관에 봉착하자, 홀 여사는 직접 여자의학전문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조선 민족의 힘을 통한 여의학교 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한 홀 여사는 그의 뜻에 공감한 초기 여의사, 선각자들과 함께 1928년 9월 4일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개소를 이뤄냈다. 일제의 권세와 탄압이 거셌던 시기에 ‘경성’ 대신 ‘조선’을 학교 이름에 붙인 건 대단한 강단이었다. 당시 부소장엔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길정희가 임명됐다.

  1933년 일제의 강압으로 인해 조선여자의 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개칭되고, 정년퇴임한 홀 여사의 뒤를 이어 길정희, 김탁원 부부가 운영을 맡았다. 홀 여사가 떠난 후 기독교 재단의 지원조차 끊겨 힘겨웠던 상황에서도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총 11명의 의사시험 합격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중돼 길정희와 김탁원은 재단법인 여자의학전문학교 기성회를 조직해 전문학교로 승격을 추진했다. 김탁원은 기성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보성전문학교를 운영 중이었던 인촌 김성수를 찾아갔다. 인촌 선생은 강습소의 사정과 김탁원의 깊은 뜻에 공감해 힘을 보태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보성과 중앙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도움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 김탁원에게 우석 김종익을 소개해줬다. 당대 순천 유지였던 우석 선생은 교육 사업과 여의사 양성에 뜻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우석 선생은 유언을 통해 사후 65만 원을 경성여자의학강습소에 남겼다. 김영훈 의무부총장은 “당시의 65만 원은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00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며 “경성의학 강습소가 전문학교로의 승격하는 데 우석 선생의 기부금이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순전히 조선 사람의 힘을 통해 전문 여의학교가 설립되는 것을 꿈꿨던 홀 여사의 오랜 소망은 1938년 5월 1일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탄생으로 비로소 실현됐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서울여자의 과대학, 수도의과대학으로의 개편을 거쳐 1957년 남녀공학으로 전환됐다. 1966년엔 우석대학교로 승격돼 종합대학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1971년 우석학원이 고려중앙학원에 인수합병되면서 비로소 지금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홀 여사는 의료소외계층이었던 조선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그들이 주체성을 회복할 것을 열망했다. 그의 정신은 본교 건학 이념인 ‘교육구국’과도 맞닿아 있다. 홀 여사는 여의사 양성뿐만 아니라 점자 책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는 등의 업적을 남기며 소외된 자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의 박애주의적 헌신은 당대 조선 사회에 산재하던 구시대적 의료 관념을 변화시켜 의료소외계층의 권리 회복에 기여했다. 본교 의과대학은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기리며 민족에 보탬이 되는 사회공헌사업을 이어왔다.

소외된 지역 품은 따뜻한 병원

  의료 사각지대를 품는 박애정신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본교 의료원은 70~80년대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겪는 과정에서 생긴 의료소외지역에 부속병원을 건립했다. 독일의 차관을 받아 1983년에는 구로병원이, 1984년에는 여주병원이, 1985년에는 반월병원(현 안산병원)이 개원했다. 구로와 반월은 공단이 위치해 산업재해가 빈번했고, 여주는 도시보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 지역이 었다. 70~80년대 구로공단의 수많은 공장에는 의무실 하나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구로병원에는 작업 중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빈번하게 찾아왔다. 1987년 구로공단 인쇄소의 제본공이 책 자르는 기계에 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구로병원에서 31시간에 걸쳐 손가락 접합술을 받았던 사건도 있었다. 당시 집도의였던 김우경 전 의무부총장은 국내 최초로 열 손가락 미세 접합 수술을 성공시킨 사례로 기록됐다.

  본교 안산병원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 환자들을 치료하며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재난지원 활동을 주도했으며, 환자들의 퇴원 후에도 사후 관리와 상담을 진행했다. 안산병원은 이를 계기로 2014년 7월 ‘단원재난의학센터’를 출범시켜 국가 재난 시 피해자 치료를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을 구축했다. 또한 주변에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안산병원은 2016년 로제타 홀 센터를 열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진료 및 통역을 지원해오고 있다.

  김영훈 의무부총장은 “고대병원은 지역사회가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라며 “본교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곳에 병원을 세워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본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현재에도 안암, 구로, 안산에서 지역사회와 더불어 발전하는 병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에도 나눔 통해 박애정신 이어가

  본교 의료원은 ‘민족과 박애’의 정신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과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김영훈 의무부총장은 ‘Back to basic’, 즉 본질로 돌아가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의료가 아무리 첨단화, 상업화되더라도 생명 존중을 가장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의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정신을 계승해 본교 의과대학 대학원은 ‘통일의학교실’을 운영 중이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질병 및 건강 상태를 연구하고 통일 이후 보건의료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김영훈 의무부총장은 “민족의 대학인 본교 의과대학은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 질병 등에 대해서도 응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본교 의료원은 코로나19로 생긴 의료 사각지대에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코로나 정밀 검사가 가능한 이동형 CT버스를 2020년 11월부터 운영하며 주말마다 탈북자, 다문화가정 등의 환자를 찾아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 이동식 순회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꿈씨(KUM-C) 버스도 2014년부터 운영 중이다.

  의과대학 역시 박애정신을 가진 의학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김하윤 의과대학 학생 회장은 “의료지원이나 기부 등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선배들께 늘 감사함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재학생들도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참된 의사로 성장하기 위해 학업에 정진하고, 국내외 의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의무부총장은 “본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며 “우리의 자랑이자 보존해야 할 가치는 소외계층에 대한 사랑” 이라고 전했다. 의학이 수행해야 할 과업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는 정신 하나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본교 의료원은 민족과 국가를 향한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의료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글 | 이성현·이주은 기자 press@

사진 | 김민영 기자 dratini@

사진제공 | 의과대학 커뮤니케이션팀

인포그래픽 | 송원경 기자 b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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