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중국인 친구가 한국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점심 약속 차 만난 그는 전날 서울 한복판에 있는 클럽에 갔다 왔다며, 전날의 여운에 취해 신나있었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잘 노는 거냐며 친구는 놀라워했고, 그 말에 아닌 척 겸손을 떨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느 나라의 밤거리도 서울의 밤거리만큼 번화한 곳은 내 짧은 국제경험 속에는 없었다.

  그 밤의 민족이 이제는 오후 10시만 되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10시가 가까워지면 도심 곳곳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물론 야외 장소들로 발걸음을 돌려 그 닉값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저녁 10시 이후 혼자가 된 시간, 원래의 나는 무엇을 했었을까. 학교가 끝나자마자 신촌으로 달려가 동창들을 만나 음주를 즐기고, 막차를 타고 안암에 돌아와서는 대학 동기들의 술자리에 합류해 가무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고 집에 들어오면 바로 쓰러져 자서, 다음날도 별반 다르지 않게 새벽을 불태워왔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시간. 막상 집에 있으니 잠도 안 오고, 그저 가만히 있게 된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으면, 과거에 해야 했었을 일들과 앞으로 맞닥뜨릴 미래들이 뒤엉켜 떠오르기 일쑤였다. 해결되지 않을 일들에 관한 생각 뒤에 따라오는 건 우울한 느낌뿐이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괴로운 생각들을 외면하고자 켠 스마트폰, 눈을 사로잡은 건 국민 56% 코로나19로 우울감 호소1년 전보다 8.3%p 증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며 한숨을 돌리면서도, 이 동질감이 위로가 되지는 못 함은 확실하다.

  그날의 밤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흥은, 회복을 위한 생산적인 해소가 아니라 지친 감정을 잊어버리기 위한 도피처였던 모양이다. 그나마의 도피마저 불가능해진 지금, 술잔 뒤에 숨어 외면했던 내 안의 우울을 마주하게 되었다. 온몸을 불살라가며 우울증을 느낄 새도 없이 강한 에너지로 달려 나가던 우리네들. 지금의 멈춤은 화상자국을 들여다보고, 그 상처들을 돌아볼 쉼의 템포이진 않을까. 코로나19가 종식된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다시 유흥의 민족이 되더라도, 한 번 숨을 고른 이 시간을 통해 더 여유롭고 단단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이윤 디지털콘텐츠부장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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