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4월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 인근 공원으로 산책하러 가 대여섯 살쯤 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중 한 아이가 풀밭에서 메뚜기를 걷어차고 있었다. 그 나이 남자아이의 철없는 행동이지만 문득 이유가 궁금해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재밌잖아요.”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며칠 뒤 술자리에서 같은 대답을 들은 순간이었다. 다만 아이의 해맑은 얼굴 대신 음흉한 눈빛과 벌건 얼굴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A가 단순한 자신의 재미에 말을 옮긴 것은 남검사와 여기자 간의 추문이었다. 유부남인 남검사가 자신을 미혼이라 속여 미혼인 여기자와 바람을 핀 이야기였다. A는 심지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함께 특정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A가 언급한 사람은 이 사건과 무관했고, 과장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A의 얘기를 들은 뒤 사실이 아님을 알려주자 A는 간단하게 이 문제를 넘어갔다.

  “재밌잖아.” A는 조롱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B는 한술 더 떴다. B의 주장에 따르면 기자는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폭행을 휘두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청탁을 하는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인물이었다. B는 자신이 받은 이른바 지라시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고 이를 알려주자 B는 이렇게 답했다. “재밌잖아. 술자리에서 왜 그래?”

  단순히 술자리 안줏거리용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에 상상을 보태 재미를 찾았을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어떨까.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자가증식을 통해 어느 순간 사실인 양 포장이 됐고, 그들의 사회적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깎여버렸다. 성실하게 일하던 남검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혼 사실을 숨기고 여기자와 바람을 핀 파렴치범이 됐고, 성실하게 일하던 기자는 한순간에 폭행범으로 변해있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재미에 곤충을 괴롭혔고, 누구나 한 번쯤은 재미에 사실이 아닌 소문을 아무 생각 없이 옮긴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사자라면 어떨까. 그때도 재밌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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