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다름을 알파벳으로 이해하는 시대
너와 나의 다름을 알파벳으로 이해하는 시대
  • 성수민 문화부장
  • 승인 2021.05.09 0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TI 열풍 읽기

반짝 유행 아닌 일상 표현돼

여전히 부정적인 학계의 시선

편견 아닌 이해의 도구 돼야

 

  “이제 MBTI 없이는 대화가 어렵죠.” 조수원(중앙대 경영21) 씨는 MBTI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일상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고 느낀다. 자신을 소개하거나 누군가를 묘사할 때, ‘계획적이라는 형용사 대신 ‘J’, 외향적인 사람을 ‘E’로 칭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조수원 씨는 특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MBTI의 종류와 뜻을 모르면 대화를 정확하게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에서의 진로 상담이나 기업체 인사관리에 쓰이던 성격유형검사 MBTISNS상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최근 1, 2년 새의 일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조금만 내려도 MBTI를 이용한 마케팅과 궁합에 관한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특정 상황을 접했을 때 MBTI별로 보이는 반응을 다루는 유튜브 동영상이 수십만 조회 수를 달성한다. MBTI 강사 자격증을 보유한 전혜린(·33) 씨는 “5년 전, 10년 전에도 MBTI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있었지만, 관심 있는 사람 몇몇이 커뮤니티에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다지는 데 그칠 뿐이었다작년쯤부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MBTI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MBTI 유행의 진정한 계기는 코로나19의 확산이다. 대부분의 만남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은 줄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팬데믹 이전까지는 늘 남을 향하던 시선이 이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진 것이다. 김재형 한국 MBTI 연구소 연구부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사람을 만나는 대신 인터넷을 활용할 시간이 커지면서 검사 도구에도 자연스럽게 노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MBTI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개발자인 모녀의 성에서 명칭을 따왔다. 자기보고식 성격 검사인 MBTI는 칼 융의 성격유형론을 근거로 한다. 4종류의 선호지표에 따라 성격 유형이 달라지는데, 선호하는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형(E)과 내향형(I), 선호하는 인식에 따라 감각형(S)과 직관형(N), 선호하는 판단 방식에 따라 사고형(T)과 감정형(F), 선호하는 삶의 패턴에 따라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뉜다INTJ, ESFP와 같이 각 지표에서 해당되는 네 개의 알파벳을 조합하면, 16개의 경우의 수 중 본인의 유형이 나온다.

  MBTI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파벳 네 개가 주는 함의가 성격의 유형화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냉정하다’, ‘따뜻하다와 같이 긍·부정적 의미가 존재했던 다양한 성격적 묘사들이 동등한 지위의 알파벳으로 부여되면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나와 남의 성격을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김수경(정경대 통계20) 씨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해서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하고 생각했는데, MBTI를 알고 나서는 내가 사고형(T) 성격이라서 그렇구나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경나(서울대 사회복지학21) 씨는 알고 지낸 지 8년 정도 된 친구와 정말 많이 싸웠었는데, MBTI 유행 이후에는 우리가 싸웠던 이유가 서로 달라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고 말했다.

  MBTI는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또 드러내기를 요구받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을 가시적이고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김재형 연구부장은 자기만의 용어로 나를 설명하게 되면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유된 틀을 사용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심리는 더 나아가 젊은 세대의 SNS 이용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 길고 추상적인 글 대신 간결한 글귀와 사진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성격처럼 모호한 영역도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세현(미디어20) 씨는 친구들이 SNS에 자신의 MBTI와 관련한 이야기를 업로드하거나 다른 변용 심리 테스트를 MBTI에 대입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사람의 성격을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로 표현하는게 참 어려운데, MBTI가 그 기준점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MBTI의 유행이 다원주의를 향하는 시대 변화의 단초라고 설명한다.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담론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분화되고 다양한 모습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늘었다. 박선웅(심리학부) 교수는 이전에는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 문화 등이 확립돼있었다다원화로 인해 사회의 중심 가치나 규범이 사라지면서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단일기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에 맞게 사는 삶이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다. 더 나아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가 생활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김재형 연구부장 역시 개개인이 집단과 조직 문화의 굴레 속에 묶여 있던 과거에 비해 개별자를 인정하는 사회적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사람과 삶을 옳고 그름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점차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유형화와 편견에 대한 경고

  유행 현상과는 별개로, MBTI를 향한 심리학계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의 다면적 성격을 임의로 범주화한다는 것이다. 박선웅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을 기준으로 완전히 외향적이지도, 완전히 내향적이지도 않은 수준에 분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같은 유형 내에서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결국 ENFJ와 같이 유형을 제시하면 그 유형의 특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MBTI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승원(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 유행 현상을 편한 것을 좇으려는 인간 욕망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성향 자체가 정교한 설명보다는 일반화해서 쉽게 이해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최승원 교수는 성격의 유형화를 문서 작업에서 색깔을 선택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가령 이미 만들어진 몇 가지 색깔 중에서 고르는 방식과 연속된 스펙트럼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있을 때, 심리학계는 전자의 방식으로는 나에게 딱 맞는 성향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자의 방식이 더 끌리는 게 인간의 심리다. 연속 스펙트럼과 같은 인간의 성격을 임의의 기준에 따라 구분했다는 점도 문제지만, 그러한 유형에 속하고 정의내려지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도 문제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MBTI 전문가들은 MBTI 유형이 한 사람의 성격을 완벽하게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혜린 씨는 사람의 성격이 한쪽 방향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MBTI 심층검사인 form Q는 각 지표를 여러 개의 세부 척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지향하는 정도를 수치화하여 표현한다같은 유형에 속하더라도 사람마다 미묘한 성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MBTI가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재형 연구부장은 “MBTI선천적인 선호의 영역이라며 동일한 유형이라도 성장 환경의 차이에 따라 현재 모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을 16개 유형으로 나눌 수 없다는 비판이 자연스러울 수는 있지만, MBTI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지표지 성격을 단정 짓는 심리검사가 아님을 정확히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MBTI를 대화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도 MBTI가 편견을 조장할 위험성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MBTI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도 MBTI가 다루는 기준에 따라 분류하게 됐다는 것이다. “MBTI로 새로운 사람을 단기간에 파악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조그마한 일도 성격 유형의 틀에 가둬버리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세현 씨가 말했다. 이경나 씨는 공부할 때는 T,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E 성향이강하지만, 친구들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는 IF 성향이 발현된다상이한 MBTI 특징을 모두 아우르는 성격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유행, 피할 수 없다면 건강하게

  흔히 MBTI 검사라고 알려진 ‘16personalities’는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간이 검사로, 한국 MBTI 연구소에서 만든 정식 검사가 아니다. 간이 검사는 각 지표의 이니셜을 정식 검사와 다른 단어로 설명하는 등 저작권 문제를 우회적으로 피해 갔다. 하지만 정식 검사에 비해 절차가 간단하고 무료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김재형 연구부장은 검사의 정확한 취지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듣지 못하는 것이 간이 검사의 문제라고 말한다. MBTI선천적인 선호의 경향성에 대한 검사라는 것을 모른 채, 현재 상황이나 능력을 기준으로 선택지를 고르면 제대로 된 검사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또, 정확한 해설을 듣지 않는다면 MBTI 유형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되고 정식 연구와 전혀 관계없는 해설을 믿을 수 있다. 예컨대, E 유형은 소위 친구가 많은 인싸’, I 유형은 그렇지 못한 아싸의 개념이 아니다. E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며, I는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J는 부지런하고 P는 게으르다고 받아들이는 속설도 잘못됐다. J는 계획에 맞게 일을 실행하는 것을 선호하고, P는 융통성 있게 일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김재형 부장은 오리엔테이션과 해석 없는 간이 검사가 ‘MBTI가 편견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생성하고 부각시킨다고 말한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만 여겼었어요. MBTI가 흥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는 것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노효빈(부경대 신문방송학20) 씨가 말했다. 결국 키워드는 다름에 대한 이해. 정답과 오답으로 구분되던 많은 영역이 이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알파벳으로 설명된다. 최승원 교수는 MBTI가 아니더라도, 어떤 도구를 통해 상대방을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됐다면 좋은 일이라며 차별과 미움으로 번지지 않고 인간관계 형성과 화합의 수단으로 가볍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