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비율의 미학

  왜 영화를 TV나 노트북으로 보면 위아래에 검정색 박스가 생길까? 답은 가로와 세로의 종횡비를 나타내는 화면 비율에 있다. 영화는 보통 가로가 세로보다 확연히 긴 와이드 스크린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16:9 비율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모니터로 영화를 볼 때는 레터박스를 사용해 위아래 공간을 채워야 한다.

  김해태(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영화에서 화면의 비율은 연출과 시지각 요소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스마트폰 등 디스플레이에서의 화면 비율은 화면의 집중도와 가독성, 판독성 등을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고 설명했다. 화면비, 컨텐츠와 매체는 서로 연쇄적 효과를 일으키며 새로운 시청 수단의 도전과 함께 꾸준히 변화해 왔다.

 

  TV의 위협으로 탄생한 와이드 스크린

  최초의 영상 화면 비율은 영화의 시작과 그 궤를 함께한다. 1889년 프랑스의 윌리엄 케네디 딕슨은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필름 영화 영사기의 시초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한다. 딕슨은 이 장치에 가로 35mm 폭의 필름을 돌려 감기 위해 필름 양 끝에 일자로 구멍을 뚫었고, 구멍 4개마다 한 개의 프레임을 배치했다. 그 결과 필름에 기록되는 영상 크기는 가로 24.13mm×세로18.67mm1.33:1 비율을 갖췄다. 최근 흔히 쓰이는 화면에 비해 훨씬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이태규(중원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키네토스코프의 프레임은 오늘날까지도 가로 형태 비디오를 표준처럼 사용하게끔 한 뿌리라고 설명했다.

  1929년에는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35mm폭의 필름에 소리를 수록하는 녹음 라인이 추가됐는데, 이에 따라 화면 비율도 약간 변화했다. 당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아카데미 비율(Academy Ratio)’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사용된 22mm×16mm(1.37:1)35mm 필름 프레임의 표준 비율로 채택했다. 아카데미 비율은 가로가 세로에 비해 눈에 띄게 길지 않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고 힘 있는 구성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TV 등장 이후 넓어진 스크린

기술적 이유 넘어 미학적 의도도

모바일 최적화 세로 영상이 트렌드

 

  영화 화면 비율은 1950년대 TV의 등장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TV 덕분에 집에서도 영화 감상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극장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위기를 느낀 극장 업계는 안방 극장을 상대할 새로운 전략으로 와이드 스크린을 선보였다. 당시 TV는 기존 극장의 화면비였던 4:3으로 생산됐다. 이에 영화 산업계는 더 높은 현장감을 재현할 수 있는 와이드 스크린 포맷으로 TV와는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꾀한 것이다. 김종완(동국대 영상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는 자크 오몽의 저서 <이마주> 등 화면 비율이 증대할수록 몰입감이 커지는 것으로 밝혀진 초기의 기술적 연구결과에 따라 상업영화에서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등 다양한 와이드스크린이 개발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와이드 화면을 구현하는 데에는 기술적 문제가 존재했고, 새롭게 등장하는 화면 비율은 이전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우선, 2.59:1의 화면 비율을 가진 시네라마(Cinerama)는 영사기 3개를 동시에 가동하는 스크린 장치로, TV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촬영 역시 카메라 3대를 연결해 진행되며 입체적인 화면을 연출했으나, 초점거리를 조절할 수 없어 촬영 시 카메라가 아닌 배우의 배치를 조정해야 했으며, 여행 풍경을 담는 기행 영화 이외에는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또 필름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됐기에 경비의 지출이 컸는데, 그에 비해 설치할 수 있는 관객좌석 수가 적어 상업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20세기폭스(20세기 스튜디오)는 애너모픽 렌즈라는 특수한 렌즈를 일반 렌즈 앞에 장착해 촬영한 후 압축된 화상을 옆으로 늘리는 원리를 이용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를 도입했다. 화면 비율 2.35:1의 시네마스코프는 시네라마보다 촬영이 쉽고 극장이 부담할 시설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업계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작은 필름을 넓은 화면에 구현하려다 보니 필름 소재 입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노이즈 현상이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

  폭스의 라이벌 영화사 파라마운트는 가로로 촬영한 영상을 세로 방향으로 회전시켜 상영하는 비스타비전을 내세웠다. 비스타비전의 화면 비율은 1.85:1, 필름 규격은 35mm로 이전과 동일했으나 세로가 아닌 가로 촬영을 통해 필름 자체의 촬영 면적을 늘리며 시네마스코프의 화질저하 문제를 해결했다. 비스타비전 촬영기법 자체는 더 이상 영화업계에서 쓰이지 않으나, 1.85:1 화면비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 쓰이는 2.35:1보다 가로가 좁아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에서 주로 쓰인다.

  이태규 교수는 가로 비율이 길어진 영화는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했고, TV영화와의 차별을 꾀하며 영화산업의 발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종완 교수는 와이드 화면에 대한 열망에 대해 임장감과 미장센에 따른 미학적 가능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비율에 서사와 효과를 담다

  디지털 기술이 영상 전반을 차지하면서 대부분의 기술적 문제들이 해결됐고, 영화의 화면 비율은 기술적 제약에서 벗어났다. 김해태 교수는 기술적 여건과 마케팅 전략에 맞춰가던 과거와 달리, 최근 제작되는 영화의 화면비는 감독의 연출과 미적인 시선, 관객에 맞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첼로>, <사냥> 등을 연출한 이우철 영화 감독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종횡비가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광활한 자연을 보여줄 경우 가로축이 넓은 화면이 좋겠지만, 같은 자연이라도 무언가 답답하고 숨겨놓은 것들이 많고 관객에게 일부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면 좁은 가로축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우철 감독은 데뷔작 <첼로> 제작 당시 공포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흔히 제작되던 2.35:1 비율 대신 1.85:1의 비율을 선택했다. 이우철 감독은 화면비가 연출에 중요한 요소였기에 많은 고민을 했다공포라는 장르에 맞게 꽉 막힌 느낌을 더 주고 공간에서 소리가 돌아다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1.85:1 비율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2016년도에 개봉한 영화 <사냥>에서는 넓은 자연과 산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기에 가로축이 넓은 2.35:1 비율을 선택했다. 이 감독은 좌우가 넓어 추격전의 횡적인 움직임을 담기에도 괜찮았고 넓고 큰 산이지만 갇혀있는 느낌을 살리기에도 적당했다고 전했다.

  한 영화에 다양한 화면비를 사용하는 시도 또한 늘었다. 아이맥스(IMAX)로 촬영된 일부 장면을 강조하는 경우 2.35:1 화면과 아이맥스의 화면비인 1.44:1 화면비가 교차돼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다크나이트>,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인터스텔라>, <라이프 오브 파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이 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면비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쿠스타브의 모험담을 다루는 1930년대는 당대 표준 비율이었던 아카데미 비율(1.37:1)이 사용됐고, 작가가 무스타파와 만나 쿠스타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1968년도 장면에서는 50~60년대 유행한 시네마스코프의 2.39:1 화면비가 쓰였다. ,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는 1985년과 현재는 1.85:1로 화면 비율이 바뀐다. 각 시대에 실제로 자주 쓰였던 화면 비율이 해당 시대를 표현하는 요소로 사용된 것이다. 이때 기본 프레임은 1.85:1이며, 1.37:1의 화면비를 사용할 때는 양쪽 옆에 블랙의 레터박스를, 2.39:1 화면에서는 위아래에 레터박스가 생긴다. 이러한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영화사에서는 모든 화면이 1.85:1 스크린 안에 놓여야 한다는 지침을 상영 극장에 전달했다.

제로 무스타파가 쿠스타브와 마담 D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모험을 시작하는 1932년 장면은 아카데미 비율 1.37:1이 쓰였다.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1968년 무스타파가 작가에게 쿠스타브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는 시네마스코프의 2.39:1 비율이 사용됐다.
작가가 호텔 주인 노인 무스타파를 회상하는 1985년과 한 소녀가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읽는 현재 시점은 1.85:1의 비율로 표현됐다.

 

  ADHD 장애를 가진 아들과 엄마의 모성애를 담은 영화 <마미>는 일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1:1의 화면 비율을 사용했다. 정사각형 프레임을 통해 등장인물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다. 특히 아들 스티브와 엄마 디안, 옆집 전직교사 카일라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스티브가 손으로 프레임을 활짝 열어 정사각형에서 와이드 스크린 프레임으로 변하는 장면은 작중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김해태 교수는 <마미>의 화면 비율 설정에 대해 감독이 원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요소로써 프레임 비율이 사용된 것이라고 전했다.

 

  영상이 매체를, 매체가 영상을 바꾼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화면 비율은 16:9(1.77:1). 이 비율은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HDTV 방송의 보급과 확산으로 인해 화면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0년대 이후 출시된 TV와 모니터의 대부분이 이 비율을 따랐다. 고전 영화의 4:3 화면 비율을 채택한 초기의 TV로는 영화의 미학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시네마스코프와 같이 와이드 스크린으로 제작된 영화를 방영할 때 화면의 좌우가 잘리거나 가로 비율을 억지로 줄여 인물들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는 디지털TV의 개발을 통해 극복됐다. 2000년부터 방송국이 송출한 HD 디지털 신호는 1.85:1 비율의 영화를 보기에 적절했기 때문에, HD 방송의 시작과 함께 1.85:1 비율에 가까운 TV가 출시됐다. 이후 TV는 영화뿐 아니라 뉴스나 스포츠 중계, 드라마 등 더 넓고 현장감 있는 영상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16:9(1.7 7:1)비율은 기하학적으로 4:3(1.33:1)2.35:1의 중간 수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폭이 좁은 영화든 폭이 넓은 와이드 스크린 영화든 상관없이, 레터박스나 블랙바가 상하좌우에 조금씩 들어가는 정도면 영상을 효율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됐다. 일종의 타협안인 화면 비율 16:9는 이후 DVD에서 HDTV, UHD(4K)의 표준으로 널리 쓰이게 된다.

  최근에는 시네마스코프 화면 비율과 유사한 21:9 시장도 인기다. 와이드스크린 영화를 볼 때 16:9 비율의 모니터처럼 레터박스 기법으로 비율을 따로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화면 낭비가 적고, 프로그램 창을 여러 개 띄울 때 편하다는 점에서 수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 2014에서 21:9 화면 비율을 가진 ‘105인치 울트라 와이드 TV’를 선보였으며, 올해 3월에는 21:9 비율의 모니터 ‘S65UA’가 출시되기도 했다.

  한편,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영상 비율의 혁신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10년 새 스마트폰이 영상을 소비하는 주요 매체로 떠오름에 따라,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세로형 영상 미디어 제작이 여러 군데서 시도되고 있다.

  최초의 영화가 4:3의 비율로 제작된 이래 대부분의 미디어 플랫폼이나 콘텐츠가 가로 방향으로 만들어져 온 관성 때문에,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아진 후에도 가로형 영상 콘텐츠가 주로 소비돼왔다. 화면의 비율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다. 가로 비디오를 스마트폰에서 전체화면으로 시청하려면 기기를 세로 형태로 90도 회전해야 하는데,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2018 KCA Media Issue & Trend>에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세로와 가로로 번갈아 가며 기울이는 행위 자체를 꺼린다. 하지만 가로형 화면을 세로로 보면 16:9 화면을 기준으로 기존 화면의 3분의 1밖에 구현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서는 기존 가로 콘텐츠를 우선으로 소비했던 가로 먼저의 소비행태에서 세로로만의 소비행태로 변화하게 됐고,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서 볼 때 더욱 몰입감을 주는 세로형 콘텐츠들이 등장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세로 비디오 전용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고, 유튜브에선 기존 가로형식 뮤직비디오를 탈피한 세로라이브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세로형 영화 역시 영화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아이폰11 프로로 촬영한 영화 <스턴트 더블>이 있다. 202012월에 열린 충무로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서울 중구 15개 행정동 거리를 세로로 담은 영화 <The CMR>을 선보였다. 이우철 감독은 세로 포맷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세로형 영상이 영상 컨텐츠의 주류로 자리잡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이태규 교수는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시각의 비율자체가 가로 중심이고, 1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로 중심의 영상이 만들어져왔기에 주류가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모바일 디바이스가 사용자의 환경 속에 완전히 자리 잡으면 세로형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 역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정해진 포맷이 없을 것입니다.” 이태규 교수는 사용자들이 곧 제작자가 되는 현대의 문화소비 경향에서 가로형, 세로형, 정방형 등 더욱 다양한 포맷의 화면 비율이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용자 친화적인 영상 제작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몇 년 진행된다면 표준을 잡기 위해 또 한 번 화면 비율에 대한 전문적 연구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해태 교수는 좋은 화면 비율의 절대적 기준을 규정할 수 없다며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비율이 가장 미학적인 비율이라고 말했다.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사진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공식스틸컷, 위키피디아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