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업무 보조하는 AI

이용자의 서비스 접근성 높아져

해외에 비해 더딘 국내 리걸테크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SF영화에나 나오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이제는 코앞에 다가온 현실임을 일깨워줬다.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AI 기술은 우리 생활 속 곳곳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법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법률과 기술을 접목한 ‘리걸테크(Legal Tech)’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리걸 테크란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이용해 판사, 검사, 변호사가 수행하는 법률 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게 제공하는 산업이다. 전문가들은 리걸테크가 고객의 접근성을 제고하고, 변호사의 업무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장완규(용인송담대 법무경찰과) 교수는 “법률AI의 활용은 사법 서비스의 증진과 함께 사법 접근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은 엄격한 법 규제, 데이터 부족 등의 이유로 해외 시장과 비교해 더딘 추세다. 2020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동안의 리걸테크 분야 투자 규모가 미국은 19억 6000만달러, 영국은 1억 1500만달러에 달한 반면, 한국은 1200만달러로 집계 됐다. 장완규 교수는 “우리나라 리걸테크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각종 규제 때문”이라며 “법적인 걸림돌이 해소된다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색부터 소송까지, 이용자 돕는 AI 법률

  AI는 법률판례 검색, 변호사 검색 및 중개, 전자증거개시, 온라인 분쟁해결 등 다양한 유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법률 및 판례 검색 서비스는 리걸테크의 초기 버전으로, 찾고자 하는 법령 또는 판례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전에는 필요한 법령을 얻기 위해서 법률 용어를 정확하게 입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리걸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면 일반적 인문장으로 검색을 해도 AI가 그 의미를 이해해 관련 법령들을 나열해준다. 예를 들어, ‘왕따’, ‘학교’, ‘괴롭힘’ 등의 일상용어를 입력하면 AI가 자동적으로 관련 법률인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사용자에게 제시한다.

  또 전자증거개시제도(이디스커버리제도)에 리걸테크가 적용된다.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제도)는 영미법계 국가의 민사 소송 절차 중 하나로,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소송당사자가 소송 상대방이나 제3자로부터 소송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국내에서도 도입을 위한 연구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디스커버리 (eDiscovery)제도는 디스커버리제도에 전자를 뜻하는 ‘e’를 붙인 것으로 이메일, 전자 문서와 같은 전자자료를 대상으로 한 증거개시절차를 뜻한다. 리걸테크가 사용되기 전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증거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면, 지금은 AI의 분류 기능을 통해서 찾고 싶은 증거를 간단하게 확보할 수 있다. 장완규 교수는 “전자증거개시에 리걸테크가 사용되면, 법원의 인력 낭비를 방지하고 분쟁을 신속하게 종결할 수 있다”며 “소송의 승패를 예측함으로써 소송의 남용과 악용을 막는 선순환 구조도 확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접근성도 용이해질 전망이다. 필요한 법률 서비스를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사건의 수임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알선인이 있어 변호사 수임료에 대한 부담이 컸다면, 변호사 소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AI 시스템을 이용하면 변호사 선임의 선택권이 넓어져 자연스레 수수료가 감소한다.

  특히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경제적 취약 계층 및 사회적 약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호사 소개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사회적 약자들이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돕고 있다. 장병열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신사업 전략연구단 연구위원은 “성폭력 또는 가정 폭력 피해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법률 서비스는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리걸테크가 국선변호사나 법률구 조공단 이외에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로 사용돼 과거보다 법의 보호를 받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완규 교수 역시 “리걸테크는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간편하고 저비용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법률 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정보 시스템에 간단한 일상 용어를 검색하면, 찾고자 하는 법령을 AI 시스템이 제공해준다.<br>
법률정보 시스템에 간단한 일상 용어를 검색하면, 찾고자 하는 법령을 AI 시스템이 제공해준다.

 

  “AI, 경쟁자 아닌 조력자”

  리걸테크는 법률 서비스 이용자뿐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인 법조인에게도 도움을 준다. 판례나 법령을 검색할 때 찾는 내용을 자동으로 제시해주거나, 기초적인 문서 작성을 대신하는 등 단순하고 소모적인 업무를 맡아주기 때문이다. 장완규 교수는 “변호사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서류 작업인데, 리걸테크로 인해 자동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경찰 공무원이나 행정 공무원의 법률적 접근도 용이해질 전망이다. 장병열 연구위원은 “공무원들은 변호사 수준의 법률 지식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이라며 “리걸테크를 활용한 법률 및 판례 검색 시스템은 공무원의 의사결정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해외 국가들은 법 분야에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와 호주의 경우, 인공지능 시스템을 활용해 판결을 내리는 ‘AI판사’ 제도를 일부 재판에 도입했다. AI판사가 내린 판결은 실제 재판 결과로 확정된다. 또, 중국은 온라인 서비스인 ‘AI 가상판사’가 형사 소송의 전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반면, 국내 리걸테크는 아직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걸테크 기업인 ‘까리용’의 오경원 대표는 “리걸테크가 가장 발전한 영미권에 비하면 한국 시장은 초기단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까리용의 박성남 변호사는 “변호사의 업무에는 순전히 논리적인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송 당사자를 공감하는 ‘휴먼터치’가 필요한 부분도 있어 AI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중형 로펌에 소속돼있는 변호사 A 씨도 “변호사의 상담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AI는 예외적인 상황에 적용하기 힘들다”며 “변호사의 완벽한 대체재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한된 판례 공개, AI 학습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판례가 비공개되고 있다는 점은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AI의 딥러닝을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판례 데이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법원의 판결문이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어서 AI가 학습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합법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처리된 153만 5886건의 본안 사건 중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건수는 2179 건(0.14%)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부 판례를 개방한다고 하더라도, 하급심이 아닌 대법원 판결에 한정해 공개하는 점도 문제가 된다. 장병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대법원 판례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며 “대법원까지 가는 사건은 전체의 10~20%에 불과하기에, 데이터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걸테크 산업 규모가 큰 미국의 경우, 법원이 판결문을 비공개하는 경우가 드물다. 판결문의 대부분이 공공기관이나 유료기관에서 쉽게 찾아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양적으로 풍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 리걸테크는 매섭게 발전하고 있다. 오경원 대표는 “판례 검색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입장에서, 판례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 국내 리걸테크의 성장을 더디게 하는 중요한 원인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원이 판결문 공개에 제한을 둬왔던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분별한 판결문 공개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 안에는 소송당사자의 이름, 전화번호부터 재산문제, 가족 등과 같이 예민한 정보들이 기록돼 있다.

  판례 개방을 주장하는 측은 ‘비식별화 기술’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비식별화 기술을 활용하면,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어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장병열 연구위원은 “성명, 주소, 개인정보 부분은 삭제하고 개인정보에 민감하지 않은 영역부터 점진적인 판례 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호사법 둘러싸고 커진 갈등

  우리나라에선 현재 ‘변호사법’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변호 사법 제 34조로, 변호사 업무와 관련해 변호사와 변호사가 아닌 자(기술자)와의 동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조항이다. 동업의 결과로 발생하는 보수나 이익의 분배도 금지된다.

  지난 4일, 대한변호사협회는 내부 규정인 ‘변호사 업무 광고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변호사 광고, 소송결과 예측 등 리걸테크 서비스에 대한 변호사들의 참여를 막았다. 로톡 등 변호사 소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플랫폼 업체가 기존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사무장 로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송시섭(동아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는 “비변호사와 변호사의 동업을 반대하는 측은, 종래 ‘사무장 로펌’의 불법성이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간 형태로 실현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가가 아닌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보유한 사무장(기업)이 변호사와의 동업을 통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면, 기업이 주도권을 가지고 법률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법률 시장이 바뀔 수 있다. 송시섭 교수는 “리걸테크 기업이 법률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때 윤리적 가치보다 돈, 명예 등의 다른 가치들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변호사 4000여 명이 가입하고 있는 로톡은 변호사를 소개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아서 변호사와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 변호사를 노출해주는 대가로 광고비를 받아 운영하고 있기에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변호사와의 동업금지규정’은 국내 리걸테크 성장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변호사가 아닌 자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받으면, 동업금지 위반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장완규 교수는 “비변호사와의 동업 금지규정으로 인해 리걸테크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국내 리걸테크의 발전을 발목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변호사와의 동업을 허용하자는 측은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변호사와 협력하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취약계층에게 법률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그 이유를 든다. 송시섭 교수는 “변호사법 개정 찬성론자들은 리걸테크가 변호사와의 협력을 통해 국민에 대한 법률 서비스의 질적·양적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세계 리걸테크 시장이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한다. 송시섭 교수는 “리걸테크의 영역을 변호사 소개에만 국한하여 대립관계로 파악하지 말고, 여러 영역에서 상생 구도로 나아가도록 리걸테크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열 연구위원도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진서연 기자 standup@

사진 │ 박소정 기자 chocopie@

일러스트 │ 조은결 전문기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