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피 끓는 전율을 광주에서 처음 느꼈다”
“그토록 피 끓는 전율을 광주에서 처음 느꼈다”
  • 송정현 기자
  • 승인 2021.05.16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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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

1994년부터 관련자료 수집

6학년 일기 “무섭고 두렵워”

“작지만 약하지 않은 힘”

 

  “쿠데타 군대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총을 잡았지만, 행정 공백 상태의 며칠 동안 광주에서는 단 한 건의 강도·도난 사건도 없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는 사건이라는 걸 알려주는 증거죠.” 역사 기록물을 수집·보존하는 ‘기록 연구사’로 10년간 활동해온 권도균 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4년부터 5·18자료수집위원 회를 통해 수집된 5·18기록물들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 재 10주년을 맞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이하 5·18기록관)의 기록물을 바탕으로 41년 전 그날의 광주를 들여다봤다.

 

  5월 정신 계승 위해 설립해

  유네스코 등재 기록물에는 청문회 회의록이나 미국해제문서 등 공공기관이 생산한 자료와 5·18을 직접 겪은 시민들의 기록이 포함돼 있다. 시민들이 수기로 작성한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 수첩이 대표적이다. 특히 성명서와 선언문에는 시민들이 항쟁기간 동안 신군부의 폭력적 만행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목소리가 담겨있다. ‘민주시민 여러분께’, ‘껍데기 정부와 계엄 당국을 규탄한다’, ‘도지사가 도민에게 드리는 글에 대한 반박문’, ‘광주시민은 통곡하고 있다’ 등 총 15개 성명서와 호소문을 포함해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어찌하여 사람을 마구 죽이는지”

  시민생산기록 중 ‘5월 일기’에는 당시 참혹했던 광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광주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 씨는 시민군 본부인 전남도청에서 취사 활동을 하며 느낀 심정을 일기로 남겼다. “18일부터 정부에서 공수부대의 파견으로 많은 민주시민들이 무차별 학살당했다”, “그러나 메스컴은 일절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우리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있다” 등 당시 신문과 함께 실린 일기의 내용은 군부의 폭력과 언론으로부터 고립된 광주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시민생산기록(5월 일기) 주소연의 일기, 주소연 씨는 스크랩한 기사 위에 "영어는 믿어도 한국어는 못 믿는다"고 적었다.
시민생산기록(5월일기) 김현경의 일기

  초등학교 6학년의 눈으로 5·18민주항쟁을 바라본 기록도 있다. 김현경 씨의 일기에는 “어제 총을 가지고 쏘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이 비참한 사건을 왜 수습 안 해주나”, “어찌하여 사람을 마구 죽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와 같이, 어린아이조차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광주를 짐작케 하는 기록이 있었다. 이 외에도 ‘5월 일기’에는 당시 시민들이 보고 들은 내용뿐 아니라 각자가 느낀 불안과 우려, 분노와 격분 등이 자세히 표현돼 있다.

 

  선언문 속 ‘5·18 광주의거’

시민생산기록(성명서) ‘껍데기 정부와 계엄 당국을 규탄한다’ 이 성명서는 5월 24일 오후 3시, 2차 궐기대회에서 낭독됐다.

  계엄군이 물러간 5월 23일부터 전남도청 광장에서 시민의 자발적인 궐기대회가 열렸다.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해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하기 전날까지 이어진 시민궐기대회에서 22종가량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중 원문이 남아있는 15종이 5·18기록관에 보관돼 있다. 성명서 ‘껍데기 정부와 계 엄 당국을 규탄한다’는 5월 24일 오후 3시, 2차 궐기대회에서 낭독된 것으로, 정부와 계엄 당국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규하 과도정부를 ‘실권 없는 껍데기 정부’로 규정하고 흑색선전 금지, 구국과 도정부 구성 등 5가지의 정치적 요구를 제시한다. 관제언론이 당시 상황을 두고 ‘광주사태’라고 표현한 것과 달리 성명서에서 이들은 그들의 투쟁을 ‘광주의거’로 표현한다. 광주시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4·19혁명을 잇는 민주의거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목숨 걸고 전하려 누른 셔터

사진(필름)자료 장재열 기자 기증 사진
사진(필름)자료 장재열 기자 기증 사진
사진(필름)자료 조광흠 기자 기증 사진

  1980년 5월 광주에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 당시 상황을 전하려는 기자들도 있었다. 전남매일, 동아일보, 전남일보, 중앙일보 기자들은 현장을 생생하게 찍기 위해 계엄군의 총탄을 마주하며 위험을 감내했다. 위의 사진은 장재열 기자와 조광흠 기자의 사진이다.

 

  “단전단수로 광주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고 방송국, 파출소 등이 불타 시내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가운데 광주 외곽으로부터 도청 앞 광장으로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모여드는 군중들이 부르는 아리랑 가락을 깜깜한 도청 옥상에서 혼자 들으며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 피 속에 무엇인가 격렬히 움직이는 전율을 느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 <5.18특파원리포트> 김충근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김도균 씨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물 외에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택 기자의 <현장기자가 쓴 10일간의 취재수첩>과 한국기자협회의 <5.18 특파원 리포트> , 제니퍼 헌틀리의 <제니의 다락방>이 그것이다. 출간된 서적을 바탕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먼저 접하고 기록물을 보면 그때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는 “작지만 약하지 않은 힘이 모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뤘다”며 “앞으로도 잘못된 집단의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글│송정현 기자 lipton@

사진제공│5·18민주화운동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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