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중대재해에 접근하는 방법을 보면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원인을 생각하거나 배우지 않고 생색내기에만 여념이 없는 것 같다. 그 압권이 소위 김용균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현 정부 들어서 중대재해 예방에 엄청난 인원과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도 왜 감소성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현 정부는 중대재해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엄벌을 대표브랜드로 내걸고 있는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부터 우리나라 안전관계법의 법정형은 재해예방선진국과 비교할 때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법정형이 낮은 것이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주된 이유이고, 그래서 처벌만 강화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듯이 강변한 것이 이 법의 주된 제정배경이다.

  법규의 실효성이 약하고 규범력도 부족한 데다 산재예방 인프라마저 엉성한 상태에서 이런 문제의 해결 없이 엄벌로 다스린다고 예방역량이 올라갈 리가 없다. 그렇게 해서 예방역량이 올라갈 것 같으면 북한,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이미 재해예방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엄벌이 곧 정의도그마에 빠지면 시스템 개선이 방치되기 십상이다.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마치 없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대목에서는 법 제정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현재도 많은 경영책임자가 처벌되고 있지만, 이것이 진정 부족하다면 산업안전보건법 벌칙 체계를 정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은 그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다분히 보여주기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들고 나왔다.

  잘못된 인식과 진정성 없이 출발한 입법이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을 리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법,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위반할 경우 엄벌하겠다고 하는 법을 우리는 악법이라고 부른다. 악법의 문제는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다고 잔뜩 겁을 주지만 실질적 효과는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도, 폭행과 같은 자연범과 달리 행정범에 대해선 명확하게 규정해야 수범자에게 재해예방의 행동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형벌이 강할수록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 법치주의는 불명확한 규정을 통해 무너진다. 지나친 형벌을 규정하는 법도 문제지만 이보다 무서운 것이 이현령비현령 해석이 될 수 있는 규정이다. 특히 의무주체인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부터가 모호하고, 경영책임자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조치해야 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강제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안전조치의무는 모든 계층이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책임자가 이를 직접 다 이행하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안전 원리에 맞지 않고 과잉금지원칙에도 반한다. 불법의 정도, 비난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기존 안전관계법보다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가 없는데도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건 형벌체계의 정당성과 균형을 상실한 것이다. 도급, 용역 등과 관련해서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원청에게 하청종사자에 대해 형사책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위험책임, 대위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 원청이 모든 안전조치를 다 하라는 식의 불합리한 규제로는 하청문제를 풀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 헌법원칙과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건 이 법이 실효성과 수범자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포퓰리즘 입법임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이런 접근으로는 중대재해를 줄이기는커녕 사회적 비용과 혼란만 증가시킬 뿐이다.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엄벌만능주의 접근에서 벗어나 산재 예방법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비현실적 규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법규제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산재예방행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또한 기업의 재해예방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재해예방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널리 보급해야 한다. 중대재해 문제해결의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실력과 진정성이라는 기본에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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