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로 살면 편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선배가 아껴둔 육아휴직 카드를 뽑아 들며 남긴 말이다. 자기 일이 아니면 할 수 있어도 못 한다며 칼 같이 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호구라서요. 이렇게 하나하나 해주다 보면 제 일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치자면 나 또한 호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급 회장이며, 전교 학생회며, 멘토링에 축제 진행까지 담당했다. 대학에선 다들 뜯어말리는 뻔대를 하고 싶다고 자원했다. 한때 몸담은 동아리에서조차 영상의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몇 번 해봤다는 이유로 떠맡았고, 그렇게 80% 이상을 혼자서 해낸 적도 있었다. 나는 호구라고 불리고 있었다.

  “호구였다.” 일부러 과거형으로 끝마친 이유는 이런 상황 속에서 덩달아 나까지 삐딱해졌기 때문이다. SNS에 쌓여가는 부탁들과 빈틈없이 차오른 캘린더, 어느새 할 일로 가득 차 깜지가 된 다이어리를 보며 생각했다. 결연하게 호구가 되지 않기 플랜을 가동하기로. 그 이후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에 내 일 아닌데 왜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하게 되더라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한 채로 적당히 하기를 일삼았다.

  그래도 천성은 천성이다.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니 온갖 일을 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도 추가 임무를 하느라 저녁 시간과 주말을 모두 할애하고 있다. “네가 할 필요 없어라고 수없이 들었던 일도 눈 떠보니 내 담당이 되어있었다.

  엄마에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엄마는 네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잘 해내니까 맡기고 싶은 것이라 말했다. 엄마의 말마따나 일을 과하게 맡길 정도라면 능력이 출중한 것이 분명할 텐데, 어디서부터, 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만만한 취급을 받게 된 걸까?

  도리어 반대편에 선 이들의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일에서 면제된 자신의 마음이 편하고자 열심히 사는 사람을 내려치며 자신이 옳다고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그렇지만 결국 실제로 이득을 얻고 있는 건 호구라고 불리는 그들이다. 원했든, 떠맡겨졌든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경험치로 축적되기에. 일을 맡기면 척척 해내는 사람. 당신은 그를 호구로 얕잡지는 않았는가. 또라이로 살아야 편하다는 세상, 편함을 얻고 있는 대신 당신은 경험의 기회를 잃고 있다.

 

박소정 기자 choco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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