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도쿄와 하계올림픽의 악연
[탁류세평] 도쿄와 하계올림픽의 악연
  • 고대신문
  • 승인 2021.05.1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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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옥 문화스포츠대 교수·국제스포츠학부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했던 베를린올림픽이 한창이던 1936년 여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194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는 결선 투표에서 일본 도쿄가 핀란드 헬싱키를 3726으로 누른 것이다. 한술 더 떠 일본은 이듬해엔 1940년 동계올림픽 개최권까지 삿포로로 가져왔다(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전까지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은 같은 해에 열렸다). 서구 열강에서만 줄곧 열렸던 올림픽을 아시아 국가가 처음으로 유치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며 악명이 높아지고 있었다. 1931년 만주를 기습적으로 침략했던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워 그곳에 괴뢰정권을 세웠다. 이 여파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서 쫓겨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통해 국가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또 다른 전범국인 이탈리아 역시 194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1944년 올림픽 유치를 돕겠다는 일본의 공수표에 속아 캠페인을 중도에 포기했다.

  어렵사리 하계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거머쥐었음에도 불장난에 안달이던 일본의 본색은 머잖아 드러났다. 193777일 중국 본토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 스포츠계와 IOC는 전쟁이 오래지 않아 끝난다고 판단해 어떻게든 올림픽을 열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시 일본올림픽위원회는 전쟁으로 물자가 모자라자 올림픽 주경기장인 메이지 진구 경기장을 철골 대신 목재로 건설했다. 군부가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대회 개막을 2년여 앞둔 19387월 일본은 결국 개최 포기를 선언했다. IOC는 부랴부랴 올림픽 개최권을 헬싱키에 넘겼다. 그러나 193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1940년 하계올림픽은 팡파르를 영원히 울리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삿포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같은 해 동계올림픽도 일본이 개최를 포기함에 따라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으로 개최지가 변경됐다. 이 대회 역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1940년 대회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던 1944년 하계올림픽도 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다. IOC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열린 194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권을 런던에 선물한 데 이어 1952년 하계올림픽 개최권은 헬싱키에 넘겼다. 전쟁으로 포기한 개최권에 대한 보상이자 승전국의 전리품이었다. 물론 전범 국가인 일본에 돌아갈 선물은 없었다. 도쿄는 1964년에 이르러서야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됐다. 1972년엔 삿포로가 동계올림픽을 열었다. 32년 묵은 올림픽의 저주가 풀리는 듯했다.

  오는 723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은 개최가 여전히 불확실하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던 이 대회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1년 연기된 상태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여파로 5개 올림픽이 취소됐지만, 대회가 연기된 사례는 여태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하루에도 7000명이 넘는 코로나감염자가 속출하는 최근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대회 개최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 정부는 감염병 확산세를 늦추기 위한 백신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접종률이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쿄 올림픽을 취소하라는 청원에 동의한 국민이 3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민심마저 대회를 강행하려는 일본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회가 열리더라도 IOC의 요구에 따라 관중 없는 경기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경기장 관중석50%에 이르는 입장권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관중 대회로 결정됨에 따라 1조 원 가까운 입장료 수익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특히 방송중계권료는 올림픽을 통해 얻는 수익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대회가 취소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일본과 올림픽은 이래저래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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