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PC7곳 중 4곳 채굴 나서

점주들 먹고 살려면 불가피

학생들 채굴 탓에 PC 성능 저하

 

  15일 오후 9, 개운사길의 한 PC. 2년 전이었다면 한창 북적였어야 할 금요일 저녁 피크타임이지만, 좌석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곳 컴퓨터들은 전원이 켜진 상태로 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 속에서 PC방들은 암호화폐 채굴에 뛰어들고 있다. 많은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채굴 효율이 높아지는 특성도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악화된 PC방의 영업 상황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본지 취재 결과, 2020년 기준 12곳이었던 안암PC방 중 5곳이 코로나 이후 폐업했으며, 남아있는 7PC방 중 4곳이 암호화폐 채굴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PC방 점주들이 암호화폐 채굴에 뛰어든 것은 영업난 때문이다. 개운사길 근방에서 PC방을 운영하는 B씨는 “13년간 가게를 운영해서 벌어들인 수익보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겪은 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채산성이 가장 좋은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채굴하고 있는데, 이게 없었다면 일찌감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130석 규모를 지닌 B씨의 점포엔 손님들이 좌석의 절반을 채우는 일이 드물다. 매장 운영을 통해 버는 수익보다 이더리움 채굴로 얻는 이익이 훨씬 큰 상황이다. 한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선 채굴 작업을 하는 PC방 영업주가 노는 컴퓨터 150대를 돌려 하루에 0.44 이더리움(135만 원, 521일 종가 기준)을 채굴했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현행법상 PC방의 암호화폐 채굴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PC방 운영명목으로 사업자등록을 했더라도, 목적을 벗어난 수익에 대해 세금만 납부한다면 문제가 없다. 김제완(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라며 아직 충분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현 상황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의 기본 원칙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채굴 작업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굴하는 PC방의 전기 사용료가 매출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다. PC방은 일반용 전기요금을 납부하기에 용도상 문제가 없다. 다만 약관대로 일반용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전력공사 커뮤니케이션팀 측은 채굴 작업의 유행 초기에는 요금이 더 싼 농업용 전기나 산업용 전기를 쓰는 이들이 있었다일반용 전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전기로 채굴하다 적발될 경우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채굴, 손님들은 달갑지 않아

  암호화폐 채굴은 컴퓨터로 고난도의 연산 문제를 풀고 그 대가로 코인을 얻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 채굴 작업은 복잡한 연산 과정을 거치기에 고성능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컴퓨터 여러 대가 필요하다. 수백 대의 컴퓨터를 갖춘 PC방이야말로 채굴에 특화된 환경이다.

 

GPU 8개가 연결된 암호화폐 채굴기와 열을 내보내기 위한 선풍기가 PC방 컴퓨터 위에 놓여있다.
안암동 소재 피시방의 컴퓨터 화면. '파일 최적화중'이라는 안내가 띄워져있다.
암호화폐 채굴 프로그램이 연산을 수행하고 있다.

 

  PC방 업주들이 채굴 프로그램을 돌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매장의 일정 부분을 손님들에게 아예 개방하지 않는 채굴용 컴퓨터 구역을 마련하거나, 손님들이 사용할 컴퓨터에도 백그라운드 채굴 프로그램을 돌려 상시 채굴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누군가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마우스나 키보드를 건드리면 채굴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컴퓨터가 자동으로 재부팅된다. 이런 컴퓨터들은 최적화 중이니 마우스를 클릭하라’, ‘버튼을 클릭하면 최적의 상태로 이용 가능하다등의 안내를 화면에 띄워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PC방을 찾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9일 에브리타임 고려대 커뮤니티에는 안암동 소재의 한 PC방에서 암호화폐 채굴 프로그램이 계속 돌아가 컴퓨터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은 30개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간호대 18학번 A씨는 게임을 하다가 블루스크린이 뜨거나 디스플레이의 결함이 나타나는 컴퓨터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채굴하는 것 자체는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이용객들을 생각한다면 컴퓨터의 성능은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PC 성능 저하, 단정할 순 없어

  PC방 점주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컴퓨터 성능은 관리 능력에 따라 좌우돼, 채굴 작업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안암동 PC방 점주 B씨는 우리 가게에서 사용하는 GPU는 온도를 120°C까지 높이고 수십 시간 동안 돌리는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이라며 컴퓨터 최대 성능의 약 70% 정도로 제한을 두고 채굴 프로그램을 돌리는 등 온도와 작업 시간을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우(정보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채굴 프로그램이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지만, 연산량이 많은 타 프로그램도 계속 수행하면 컴퓨터 내부 실리콘 칩(CPU, GPU ) 온도가 높아져 일시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태원(정보대 컴퓨터학과) 교수도 꼭 채굴로 인해 고장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CPU 또는 GPU에서 발생하는 열을 모니터링하고 조절하는 센서가 컴퓨터 내부에 있고, 발열 허용범위를 넘어서면 컴퓨터의 성능을 강제로 제한해 온도를 낮추도록 관리하기 때문이다.

  서태원 교수는 컴퓨터가 게임과 채굴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면, 게임을 하러 온 손님은 당연히 불편하다채굴과 게임 프로그램은 모두 컴퓨터 성능을 최대치로 사용하므로, 두 작업을 함께 수행하지 말고 각기 다른 시간에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정성우 교수는 손님이 없는 동안엔 채굴 작업을 하더라도, 손님이 사용하기전에는 일정 시간을 두고 컴퓨터의 내부 공기 온도를 낮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학생들이 없는 PC방 그 빈자리엔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컴퓨터의 열기만 자리하고, 손님들은 불편을 감내하는 또 다른 코로나19 블루스가 펼쳐지고 있다.

 

김민재 기자 flowerock@

사진서현주 기자 z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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