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를 폭행하고 또 폭행당하는 아이들, 교복을 입고 골목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 이미 뉴스면 단골 아이템이다. 심지어는 자해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고, 최근에는 마약에 손대는 청소년들까지 나타났다. 갖가지 이유들과 상황들로 가정의 울타리 밖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불법을 사주하고 조건만남을 요구하는 못난 어른들뿐이다.

  거리는 가출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생존하기를 요구한다. 특히 어린 나이와 가출 사실이 성매매 시장에서 가출청소녀들을 탐욕의 대상이 되는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거의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으로서의 조건만남. 그녀들에게 ‘버린 몸’이라는 자책과 포기를 내면화시키고 일생 동안의 굴레를 씌우게 된다.

 

  중학생 시절, 몇 차례의 철없던 연애 경험은 내게 우리 동네 ‘걸X’라는 오명을 씌웠다. 다행히도 부모의 교육열이라는 억압은 오히려 학교라는 야생 생태계로부터의 탈출구가 되었다. 다른 동네 특목고로의 진학과 유명 대학으로의 입학은 나를 성곽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사실 가출청소년들의 방황은 아주 오래된 문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 비적자(非適者)들이 된 아이들은 거리에서 방황할 수밖에. 비적(非適)으로의 꼬드김에서 벗어나 간신히 생존의 대열에 낀 나의 등 뒤에는 아직 너무 많은 비적자들이 남아있다.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바닥은, 늘 투덜대지만, 그나마 양지(陽地)다. 음지(陰地)에 머물러있는 그들에게는 나의 바닥도 높이서 빛나는 한 지점일 수 있다.

 

  아직은 희미한 빛이겠지만, 나라도 그들에게 한쪽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 어둠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사회적 장치를 구현하는 것. 내 인생의 목표이자 내게 쥐어진 의무라고 여기고 있다. 단 한 번뿐인 학창시절이 지우고 싶은 악몽이 되지 않게끔, 양지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고 싶다. ‘고대생 언니’로도 충분히 빛나 보일까. 지금의 위치까지만이라도 길을 안내한다면, 그들이 또 다른 밝은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서는, 이러한 멘토-멘티 관계를 시스템화한 재단을 설립해 이 선순환을 지속시키고 싶다.

  내가 이번 칼럼을 먼 훗날 다시 읽게 됐을 그때에는, 지금의 부채의식이 아닌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끼도록 이 글을 지면에 새겨둔다.

 

이윤 디지털콘텐츠부장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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