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대신 ‘하이퍼리얼리즘’

자유로움 추구하는 웹예능이 대세

유튜브, 코미디의 새 시장 열어

  국내 최초 비대면 스탠드업 코미디 오디션 ‘황금마우스’가 오는 7월 막을 올린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속 웃음이 줄어든 국민의 현실을 위로하고, 활동무대를 잃어버린 희극인에게 활동 재개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다. 아홉 번째 시즌으로 막을 내렸던 생방송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 역시 올해 하반기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흥과 웃음의 민족이었다. 양반사회에 대한 노골적이고 해학적인 풍자와 함께 신명나는 무대를 펼친 조선시대 봉산탈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시대만 다를 뿐, 현대인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웃음을 소비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어 유튜브 등 뉴미디어까지, 웃음의 매체는 확장을 거듭한다.

 

  연예인 넘어 비연예인 ‘리얼일상’ 담는다

  “이제 TV에는 저희가 설 자리가 없어요.” ‘개그콘서트’ 폐지 직전까지 KBS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한 조래훈(남·30) 씨가 말했다. 지난해 6월 폐지된 KBS 개그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공개코미디는 지상파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주부가요 열창’ 등 인기 프로그램 제작에 30년간 참여해온 김진태 예능작가는 공개코미디 부진의 원인으로 콩트의 진부함을 꼽았다. 그는 “개그맨들의 짜여진 연기 반복에 내성이 생긴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느낀 것”이라며 “때마침 등장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결정타를 날린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측할 수 없는 ‘리얼’의 솔직한 재미는 ‘합’이 주는 계산된 웃음보다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리얼리티 예능 초기에는 연예인들의 꾸밈없는 생활을 담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었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나 ‘삼시세끼’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이동규(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민낯뿐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기 연예인들의 인간미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예인 관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 등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이제는 연예인을 넘어 비연예인들의 삶까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확장됐다. 대중은 리얼리티가 추구했던 리얼함보다 더 높은 수준의 ‘하이퍼리얼리즘’에 열광하는 것이다. 강혜원(성균관대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 연구원은 “요즘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짜고 치는 듯한 체험을 쉽게 눈치채고 지겨워한다”며 “비연예인, 즉 일반인의 예능 출연이 더욱 보편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아무튼 출근’ 등 직업 예능의 흥행요인이 여기 숨어있다. 두 예능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직업의 세계를 간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경우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는 청년부터 수능 출제위원과 감자 연구원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일궈나가는 성과와 노력에 두 진행자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재미와 감동을 준다. MBC ‘아무튼 출근!’ 은행원, 공항철도 기관사, 떡볶이 밀키트 제조원 등 일반인들의 다양한 직장생활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담아냈다. 강혜원 연구원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일상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웹예능’의 자유로운 표현방식

  예능은 그 내용뿐 아니라 방영하는 플랫폼 역시 변화를 겪고 있다. TV방영 중심이었던 기존 송출방식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 웹 공개 방식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지난 13일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는 카카오TV의 웹예능 '개미는 오늘도 뚠뚠'이 예능 작품상 후보에 오르면서 예능 지형의 변동을 실감케 했다. '개미는 오늘도 뚠뚠'은 출연자들이 직접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수익률을 다투는 프로그램이다. 티빙의 ‘여고추리반’과 웨이브의 ‘어바웃타임’ 등 국내 OTT 서비스도 웹예능 시장에 뛰어들어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다.

  웹예능의 강점은 자유로움이다. 지상파의 엄격한 규제에서 벗어나 훨씬 새롭고 유연한 시도를 선보일 수 있다. 프랜차이즈 기업을 상대로 상품 가격을 ‘네고’하는 ‘네고왕’의 황광희와 장영란은 특유의 뻔뻔함과 센 입담으로 가격을 깎고, 소비자의 불만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등 기존 예능에서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성격을 갖는다. 형식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난다. ‘네고왕’은 초 단위의 정신없는 편집에 개그 요소를 가득 담았다. 홍진경의 ‘공 부왕찐천재’ 역시 기존 예능의 기승전결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공부가 싫어 미루는 모습을 가감없이 담아내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선사한다.

  ‘페이스아이디’와 ‘톡이나 할까’ 등 다수의 웹예능은 기존 가로화면 대신 모바일에 최적화된 세로화면 콘텐츠로 제작됐다.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 캠프’ 등 5분 내외의 짧은 웹예능도 인기다. 이동규 교수는 이를 “과자 먹듯이 가볍게 스마트폰으로 웃음을 소비하는 ‘스낵컬쳐’ 현상”이라며 “기존 긴 호흡의 예능에서 벗어나 짧고 굵은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상파에 비해 욕설이나 폭력성 등 심의기준이 낮아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웹예능의 자극적인 콘텐츠는 반발을 초래하기도 한다. 웹예능 ‘가짜 사나이’와 ‘머니게임’이 대표적이다. ‘가짜 사나이’는 극한의 환경에서 이뤄지는 강도 높은 특수부대 훈련 과정을 담은 웹예능으로, 누적 조회수 1억6000만 건을 돌파했을 정도로 크게 흥행했다. ‘머니게임’은 14일간 8명의 참여자가 상금 획득을 위해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콘셉트다. 두 웹예능 모두 공개 이후 큰 관심을 끌었지만, 동시에 숱한 논란에 휩싸였다. 가짜사나이는 훈련 과정이 지나치게 가학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머니게임 역시 출연자들의 도덕성 문제와 끊이지 않는 폭로전 등으로 각종 구설에 올랐다. 이동규 교수는 “출연자의 솔직한 모습과 자유로운 소재들이 웹예능의 인기요인이지만, 기존 예능에 비해 안전장치가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로 컴백한 코미디

  공개코미디에서 활약하던 일부 개그맨들에게 유튜브는 새로운 무대가 됐다. 방송사 공채 출신 개그맨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채널 개설 2년만에 구독자 수 117만 명을 돌파했다. 피식대학에는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멘트로 ‘B대면 데이트’를 진행하는 카페 사장 ‘최준’(김해준), 허위매물을 올리는 중고차 딜러 ‘차진석’(이용주) 등이 등장한다. KBS 공채 출신 코미디언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 ‘좋아서 하는 채널’은 일진 고딩, 도를 아십니까, 싫은데 하는 메이크업샵 등 개그 상황극을 선보인다. 코미디언 곽범, 이창호로 구성된 2인조 아이돌 ‘매드몬스터’ 또한 과한 카메라 필터와 특유의 뻔뻔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매드몬스터가 지난 4월 발표한 첫 싱글 ‘내 루돌프’의 뮤직비디오는 업로드 3주만에 5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위 채널들의 인기 요인은 독특하고 확고한 캐릭터다. 느끼한 카페사장 콘셉트의 ‘최준’, 인기 아이돌 콘셉트의 ‘매드몬스터’는 자신만의 캐릭터에 충실하며 유튜브 속 세계관을 확장해 나간다. 조래훈 씨는 “인위적이고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 설정과 디테일한 연기 등 공개 코미디의 콩트 요소를 녹여낸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희극인들은 공개코미디에서 갈고닦은 연기력과 캐릭터 분석력을 바탕으로, 신선하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콘텐츠를 만든다. 개그맨 김대희가 운영하는 채널 ‘꼰대희’는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 시절 무뚝뚝한 아버지 캐릭터를 재현해 과거 ‘개콘’의 추억까지 소환했다.

  이 밖에도 개그맨들은 신나는 입담과 자신만의 코믹한 요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게임 관련 코미디를 진행하는 개그맨 조충현,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담는 개그맨 김병선도 유튜브에서 인기다. 개그맨 출신 유튜버 김주연이 돼지 머리띠를 하고 진행하는 ‘일주어터’는 ‘일주일 동안 삼겹살만 먹으면 살이 빠질까?’, ‘일주일 동안 수박만 먹기’ 등 일주일간 신박한 컨셉의 다이어트를 진행한다. 발랄한 리액션과 신나는 입담으로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구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동규 교수는 “개인의 다양한 관심사를 간파한 영리한 채널들이 늘고 있다”며 “큰 자본이 없어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유튜브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웃음은 순간의 고통을 잊게 한다. 철학자 베르그송에게 웃음이란 사회라는 딱딱한 신체 마디마디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회적 제스처’다. 사람들은 기계적이고 딱딱한 현실을 치료하기 위해 웃음을 처방한다. 김진태 작가의 말처럼, 웃음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공감과 소통의 문화양식이자, 시대의 완전한 반영이다.

 

글│이다연 기자 idayeoni@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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