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스물>, <멜로가 체질> 이병헌 영화감독 인터뷰

이병헌 영화감독은 "소소한 이야기가 곧 경쟁력인 코미디를 만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대흥행작 영화 <극한직업>은 2018년 최고의 유행어를 낳았다. 영화는 안 봤더라도 ‘수원왕갈비통닭’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역시 여전히 노래방 인기차트 상위권이다. <극한직업>의 흥행으로 입증해낸 대중성부터 <멜로가 체질>을 통해 형성된 두터운 마니아층까지, 감독 이병헌은 코미디라는 세계관 속 굳건한 ‘이병헌 월드’를 건설 중이다.

  영화 <과속 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을 각색하고 로맨틱 코미디 <오늘의 연애>의 각본을 쓴 이병헌 감독은 2012년 첫 영화 연출작 <힘내세요 병헌 씨>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스물>, <바람바람바람>, <극한직업>을 지나 드라마 <멜로가 체질>까지 쉼 없이 달렸다. 6년간 1편의 독립영화, 3편의 상업영화, 1편의 드라마를 만든 그는 여전히 하고픈 이야기가 많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설정, 신선한 연출, 졸깃한 대사,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일단 모든 걸 지루하게 봐요. 그 다음엔 이리저리 비틀어 보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일반적이지 않을까 하면서.” 소소한 공감이 경쟁력인 그의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도 관객을 빵빵 터뜨린다. 코믹하고 찰진 대사들이 특히 일품이지만, 그의 영화에는 말맛만큼이나 ‘사람맛’도 진하게 느껴진다. B급 감성 물씬 나는 특유의 ‘병맛’ 개그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작 <극한직업>, <스물>, <멜로가 체질> 속 이병헌 감독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인간 이병헌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덤이다.

 

대중성·마니아층 모두 잡아

코미디, 재밌고도 어려운 장르

찰진 대사는 관찰과 고민의 힘

 

낮에는 치킨 장사, 밤에는 잠복근무하는 마약반 형사 5인방의 사건 해결 프로젝트 영화 <극한직업>

  <극한직업>, 모든 신에서 웃기겠다는 각오로

  최고로 웃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한 장면도 빠짐없이 웃기자는 생각뿐이었어요.” 매 신마다 코미디 요소를 삽입하겠는 마음가짐으로 <극한직업>을 찍었다. 영화 개봉 이후 가장 달렸으면 하는 댓글로는 ‘ㅋㅋㅋㅋㅋㅋ’를 꼽았다. “그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운 평가죠. 재미만큼은 확실했단 거니까. 더 욕심을 내자면, 웃음 안에서 사람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긴 한데···(웃음).”

  2018년작 <바람바람바람> 촬영 당시, 이병헌 감독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모든 걸 혼자 통제하려고 했어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스텝들과도 사이가 틀어질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코미디는 오락적 요소의 비중이 커서 다른 장르에 비해 박하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작품성도 인정받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다 책임지고 내 영화를 보여주겠다’하는 과욕이 앞선 것 같아요.”

  <극한직업>의 초고를 받아본 건 <바람바람바람> 촬영 막바지였다. “너무 재밌었어요. 감정의 개연성에 특히 초점을 맞춘 전작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코미디의 본질인 ‘웃음’ 자체가 목적이 돼도 상관없겠다 싶었죠.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실제로 그는 <극한직업>을 작업하며 평가에 대한 강박을 훌훌 털어버렸다. “어느 인물이든 프레임 안에 등장하면 한 번은 웃기고 퇴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과해도 상관없었어요. 넘치는 건 편집으로 덜어낼 수 있지만 모자란 건 채울 수가 없잖아요. 저도, 배우도, 스텝도 정말 재밌는 생각만 하면서 날아다녔어요.” 편안한 마음가짐도 <극한직업>의 흥행에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드니 오히려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게 나오더라고요.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스무살 동갑내기 세 친구의 고민과 선택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
스무살 동갑내기 세 친구의 고민과 선택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 <스물

  <스물>은 어쩌면 ‘불안’에 대한 이야기

  영화 <스물>은 이병헌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함께한 스무 살 동갑내기 세 청춘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데뷔작 <힘내세요 병헌 씨>에서 선보였던 찌질한 유머와 패기가 <스물>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유쾌함의 이면에 미래를 향한 묵직한 두려움도 존재하는, 코미디의 이중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하고 싶은 걸 찾느라 헤맨 시간을 스물이라고 한다면, 저의 스물은 꽤 길었던 셈이죠.” 스무 살 이병헌은 ‘방황’했다. “영화를 만들 때, 청춘의 고달픔을 꺼내 놓고 공감받고 싶었어요. 같이 웃고 떠들다 보면 이 고독을 조금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이 먹고 다시 들여다보니 ‘불안’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더라고요.”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내재된 캐릭터였다고 말한다. “어쩌다 TV에 나오는 김에 다시 봤는데 웃기지가 않았어요. 인물들이 너무 안쓰럽고, 웃기자고 하는 말에도 마음이 애잔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조급함이 느껴지면 어떻게든 쳐내고 앞으로 전진하고자 했던 젊은 시절 이병헌과 지금의 그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요즘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불안함을 아주 가까이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가 된거죠.” 이병헌 감독에게 ‘스물’이란 치호, 경재, 동우처럼 한없이 흔들리는, 꼭 안아주고 싶은 나이다.

 

  나만의 인생드라마, <멜로가 체질>

  “10년 치 메모장을 다 털어 넣은 작품이에요.” 어마어마한 대사량, 주옥같은 명대사의 향연이 이를 증명한다. 말맛을 살린 ‘수다 블록버스터’, <멜로가 체질>은 감독 이병헌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어떤 플랫폼이든 상관없어요. 꼭 극장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죠. 오히려 16부작 드라마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극한직업>이 쾌감을 준다면, <멜로가 체질>은 공감을 선사한다. 시청률은 1.8%로 저조했지만 소수 마니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종방 이후에는 넷플릭스 ‘오늘 한국의 톱10 콘텐츠’에 차트인하는 등 역주행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현실 연애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고 늘 꿈꿨어요.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인 30대에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곡차곡 준비한 작품이에요.”

  극중 인물들은 맥주 한 캔을 손에 쥔 채 매일같이 거실 소파에서 수다의 꽃을 피운다. “시트콤처럼 매회 다른 에피소드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면 더 자유롭고 편한 수다를 떨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메모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멜로가 체질>은 기존 드라마의 공식을 완전히 깼다. 사건의 극적인 갈등과 화해보다도 풍성한 대사와 에피소드로 승부했다. 색다른 시도였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그는 <멜로가 체질>이 다루는 내용 자체가 ‘의미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졌다고 전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주는 위로를 당연하게 여겼던 건 아닌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는지. 이 정도의 생각만 들어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일단 판단을 내렸으면 그다음엔 가는 거죠. 뭐든 표현해내는 게 제 직업이니까.”

 

  코미디의 ‘황금열쇠’ 찰진 대사의 비밀

  속도감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 특유의 대사들은 작품에 날개를 달아준다. “대사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리듬과 호흡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극한직업> ‘마약반 5인방’ 형사들의 티키타카와 <써니>의 찰진 욕 배틀, <멜로가 체질> 속 맥주 한 캔과 곁들이는 만담 호흡이 대표적이다.

  영화를 보는 것만큼 쓰는 것도 좋아하는 그는 마치 일기를 쓰듯이, 혹은 수다를 떨듯 이 대사를 적어 내려가곤 한다. 그가 만들어 내는 대사에는 본인의 말투 못지않게 관찰의 힘이 섞여 있다. “사실 전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편해요. 듣기보다는 생각이 더 편하고요. 누가 돈만 주면 하루종일 집 소파에 앉아서 창밖만 내다보며 보낼 수 있어요.”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대사와는 다르게 인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척 공을 들인다는 이 감독은 대사를 ‘그린다’고 표현한다. “CG팀이 공들여 그래픽을 그리는 것처럼 작업하는 거죠. 쓰고 수정하고 직접 말해보고, 늘어지는 것은 쳐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면서 고쳐나가는 거예요. 그 작업을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 직전, 심지어는 후반 믹싱 작업 때까지 해요.” ‘병헌표’ 속사포 대사 이면에는,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그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

 

  코미디, 어렵다 어려워!

  코미디는 유쾌하다. 때로는 뻔뻔해도 괜찮다. 이런 장점만큼이나 단점 또한 명확하다. “사회문제를 각각 다큐드라마와 코미디로 풀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엔 큰 차이가 있어요. 코미디는 어떤 주제든 웃음이 일차적 목적이기 때문에 일단 웃기면 좋은 거고, 웃기지 못했을 땐 욕을 하는 거죠.” 감독의 개인 취향 자체가 단점이 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코미디다.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빵 터지는 그 한순간을 위해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만큼 늘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에요. 열등감은 사실 예술가에게 없어선 안되는 감정이에요. 그냥 받아들이고 즐겁게 일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자율성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코미디는 그 어떤 장르보다 까다로워요. 약간의 어긋남도 위험하죠.” 약자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아직 많다. 그런 사람들을 다루지 않으면서 그 문제에 접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코미디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코미디는 약자나 사회적 아픔을 희화화했다는 지적을 받기 아주 쉬운 장르에요. 부정적인 소재, 혹은 인물들의 등장만으로 나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종종 있죠.” 이병헌 감독은 자체적인 검열 기준과 함께 예민한 영화적 요소들을 조율하는 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다. “힘들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의 방향성을 적절하게 타고 가는 게 요즘의 ‘이야기 만들기’가 추구해야 할 가치인 것 같습니다.”

 

  감독 이병헌이 사랑하는 코미디

  “세상의 모든 코미디 배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해요.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를 지금 봐도 경이로운 지경이에요. 그 시대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허를 찌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들이 분 단위로 쏟아져 나오죠. 특히 ‘버스터키튼’을 무척 좋아해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시대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쏟아지던 고전 코미디인데도 ‘이게 코미디지!’ 싶은 우스꽝스러운 설정, 허술한 미장센과 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면서 이상한 쾌감을 줘요. 이후로도 ‘우디 앨런’의 지적인 찌질함을 처음 접했을 때,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우는 정적을 봤을 때라던지, 너무 많은 기억들이 충격으로 남아있어요. 이건 날이 새도 말이 끝나지 않을 거 같네요.”

 

  텅텅 빈 객석, 사라지는 극장 경험

  “극장의 잊혀짐이 곧 사라짐이 되는 것만 같아 너무 서글프고 두려워요.” 이병헌 감독에게 극장은 어부에게 바다 같은 곳이고 농부에게 땅과 같은 곳이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OTT의 성장이 사실상 영화계에 숨줄이 돼버린 상황에서, 극장 산업은 존폐의 기로에 놓인 듯하다. “무엇을 할 수 있지,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할까, 절망 속에서 힘겹게 고민 중이에요. 사실 코로나로 힘들지 않은 곳이 없어서 감히 엄살 부릴 생각도 못하죠. 그냥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돼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전염병이 낳은 이 무시무시한 고난을 해결할 가장 빠른 방법 아닐까요?”

 

  차기작 진행 상황은

  “박서준, 이지은 씨가 주연을 맡은 <드림>이라는 영화의 국내 촬영 마쳤고요, 코로나 19로 중단됐던 해외 촬영분을 준비하고 있어요. 웹툰 원작의 숏폼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고, 후배 감독들과 OTT용 시리즈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준비하고 최근에서야 완성한 장편 영화 시나리오가 있는데, 솔직히 그건 좀 잘 쓴 거 같아요. 반 농담으로 받아주세요. (웃음) 그 영화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은데, 나중에 나오게 되면 잘 만들었는지 한번 봐주세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이병헌 감독은 코미디가 좋다. “때로는 유치하고 웃기기만 한 것도 코미디만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미디는 왜 존재해야 하지? 진지하지 않게 생각해보는 거죠. 웃고 살면 좋으니까, 끝. 좋잖아요.” 감독 이병헌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리는 듯하다. ‘병헌표’ 코미디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힘내세요, 병헌 씨’!

 

글|이다연 기자 idayeoni@

사진제공|영화 <극한직업>, <스물> 공식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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