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서재] 배움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들
[고대인의 서재] 배움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들
  • 고대신문
  • 승인 2021.05.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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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그 시험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라는 것이 충분한 것인지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시험을 본 후 답은 더 선명해진 듯했다.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때까지의 내 성장 과정을 탓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중략)

  산 위에서였다면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끄럽고, 전등불로 가득한 곳, 성인으로 가장한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곳에서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진실과 독트린 하나하나에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는 공교육을 거부하는 아버지로 인해 16년간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 책은 배움에 대한 호기심조차 낯설었던 저자가, 먼저 대학에 진학한 형제의 권유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는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자신이 어떻게 학습하는 과정을 깨달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에 대한 애정을 단단히 드러낸다.

  ‘배움의 발견’은 무슨 뜻일까? 어떻게 학습되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대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 이전과는 다른 수업과 평가 방식이 어색했다. 시험에 나온다고 내용을 정리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강의는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과제나 시험에서는 내 생각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배우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아직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내 삶에 환류되는 것이며 그중 무엇이 지식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몇 년 전 문득 내가 하는 모든 공부는 그것이 어떤 분야든 내가 만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 조금 더 곁을 내주고 싶기 때문이고,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내 처지로만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몇 만 년 인류 역사가 촘촘히 쌓은 방대한 지식을 압축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결국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가족에게 조금 더 여유를 내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얻는 모든 지식은 가까운 미래의 한순간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배움은 삶을 긍정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빠가 그렇게 집을 떠난 대가가 어떤 것이었는지, 오빠가 자신이 향하는 곳을 얼마나 모르는 채로 떠난 것이었는지를 내가 이해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 오빠가 왜 그렇게 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오빠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확신이 불확실성이 드리운 어둠을 밝힐 정도로 밝게 타오르게 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오빠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악, 우리는 듣지 못하는 희망에 찬 멜로디 때문일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오빠가 삼각함수 책을 살 때, 그 모든 연필밥을 모을 때 흥얼거렸던 그 비밀의 멜로디 말이다.”

 

서린(디자인조형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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