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쟁점 속 일수벌금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쟁점 속 일수벌금제
  • 이정우 사회부장
  • 승인 2021.05.30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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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벌금제 도입 찬반논쟁

‘단기 자유형’의 폐해 막아야

“형벌의 본질 생각해야” 반론도

재산·소득 조사 가능성이 관건

 

 

  우리나라 형법은 벌금형을 일정 총액으로 선고하는 총액벌금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행 벌금 산정 기준은 범죄인의 빈부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경제적 사정에 따라 범죄예방효과가 다르다는 비판 속에 일수벌금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수벌금제 시행 시, 벌금은 일수X일액 으로 책정된다. 동일한 범죄라면, 일수는 같지만 일액은 개개인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달리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같은 죄를 저질러도 재산이나 소득이 높을수록 많은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형은 자유형과 달리 오판에 대한 시정이 용이하고 집행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이 쓰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 벌금을 납입하지 못할 경우 노역으로 대체하는 ‘노역장 환형 유치 규정’을 두고 있어,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면 소액의 벌금도 납입하지 못해 노역장으로 유치되는 경우가 생긴다. 박광현(광주여대 경찰행 정학과) 교수는 “단기 자유형은 집행 기간이 너무 짧아 교화 효과를 거두기에는 부족하고, 출소 후에는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사 회 복귀도 어려워져 재범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형벌로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현행 총액벌금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일수벌금제 도입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수벌금제 도입의 정당성 논의가 계속돼 왔다. 1992년 법무부 형법개정안의 ‘벌금액 산정에서 피고인의 경제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 신설(형법개정안 제44조 제4항), 2011년 형법개정안의 ‘벌금액은 범인이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여 정하여야 한다’는 규정 신설(형법개정안 제46조 제3항) 등 몇 차 례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 입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평등주의·책임주의 위헌 가능성

  일수벌금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평등원칙과 책임주의의 침해를 우려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원칙에 의해 동일 범죄에 대한 형벌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같은 죄를 짓고도 벌금을 달리 부과하는 일수벌금제는 위헌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 반대 입장의 주장이다. 김성룡(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벌에서의 평등이란 자신의 죄에 부합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라며 “자신의 죄와 형벌의 결정에 경제적인 능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헌법에서 말하는 평등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의미하므로 일수벌금제는 합헌이라는 입장도 있다. 박광현 교수에 따르면, 헌법에서 규정하는 평등은 차별적 처우를 일절 금지하는 산술적 정의의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 합리적 차등을 두는 배분적 정의, 즉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 경제적 사정이 다른 사람에게 차등을 두고 벌금을 부과하는 건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으로, 위헌이 아니라고 말한다.

  형벌은 범죄의 불법성과 책임성에 기초해 부과돼야 하는데, 범죄와 관련 없는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같은 행위에 서로 다른 형벌을 주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책임주의는 책임을 전제하지 않은 형벌이나 책임을 초과하는 형벌을 금지하는 형법의 대원칙이다. 일수벌금제가 이에 반하는 것이라면 입법 자체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김성룡 교수는 “책임주의를 불법과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총액벌금제가 더 적절하다”고 했다. 책임주의가 양형 과정에서 일정한 사정 고려의 금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박광현 교수는 “책임 범위 내에서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는 것은 책임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호진(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형벌이 책임주의에 부합하려면 불법의 경중에 따라 형벌이 정해 져야한다는 것과 함께 같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같은 형벌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행위자의 행위에 비해 과도한 형벌이 부과돼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일수벌금제를 찬성하는 입장의 논거가 되기도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같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같은 형벌이 아니라 같은 형벌 효과가 부과돼야 한다. 최호진 교수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벌금 100만원의 크기 는 경제상황에 따라 형벌효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형벌의 예방효과도 고려해야”

  일수벌금제에 대해 박광현 교수는 “시장 논리는 최대 이윤 추구를 전제하지만, 형벌 논리는 궁극적으로 범죄예방을 통한 안전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했다. 예방주의는 범죄자 본인이 형벌을 통해 다시는 그 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특수예방주의와 형벌의 집행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만드는 일반예방주의가 있다. 두 측면 모두에서 일수벌금제의 형벌 효과가 총액벌금제보다 크다는 것이 일수벌금제를 찬성하는 입장의 주장이다. 총액벌금제에 서는 범죄자의 재력에 따라 범죄예방의 효과가 달라져 재산가에 대한 특수예방과 일반예방 효과가 모두 미미하다. 최호진 교수는 “예방의 효용을 줄 수 없는 만큼의 벌금이 부과된 개인으로서는 벌금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라 비용”이라고 말했다. 벌금이 비용의 개념으로 여겨지면 범죄억제로서의 벌금의 기능은 쇠퇴하고, 범법행위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는 면죄부의 의미가 강해질 수 있다. 벌금의 절대적 금액이 주는 개개인의 효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형벌의 예방적 효과를 잃는 셈이다.

  최호진 교수에 따르면, 벌금이 비용으로 인식되는 폐해의 대표적인 예가 성매매다. 그는 "대부분의 성매매 처벌은 벌금형이 나오는데, 이 벌금이 단순히 자기의 성매매를 위한 추가 비용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해서는 안 되는 범죄행위’가 아니라 ‘비용을 더 지불하면 문제없는 행위’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성매매에 대한 형벌을 설정한 의도가 완전히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자유의 무게는 같지만 돈의 무게는 다르다

  벌금 책정에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면, 다른 유형의 형벌에도 적용돼야 하지 않냐는 입장도 있다. 김성룡 교수는 “재산과 소득에 비례하는 형벌이 원칙이라면 이는 벌금 형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모든 유형의 형벌에도 적용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인 자유형과 벌금형의 차이로 이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도 있다. 범죄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유형과 금전을 박탈하는 재산형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최호진 교수는 “징역, 금고, 구류 같은 자유형이 박탈하는 자유의 크기는 모든 사람에게 같지만, 재산형이 박탈하는 금전은 경제적 사정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다” 고 말했다. 즉, 형벌의 유형에 따라 고려할 내용이 다르고, 벌금형은 재산을 박탈하는 형벌이기에 재산박탈 자체가 주는 형벌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벌금형을 집행할 때 행위자의 경제적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정확한 소득·재산 책정이 입법효과 좌우해

  정당화 논의가 해결되더라도 일수벌금제의 입법에는 쟁점이 남아있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일수벌금제 도입과 시행을 위해서는 대상 범죄의 선정, 벌금 단위 지정, 범죄자의 순수입 범위 지정 등이 숙고돼야 한다.

  일수벌금제 입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개인의 소득 및 재산에 대한 책정 가능성이다. 박광현 교수는 그의 논문 ‘현행 벌금형 제도의 문제점과 실효성 확보 방안’에서 “일수벌금제도는 경제적 능력에 대한 조사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불평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소득 및 재산의 정확한 파악은 일수벌금제 도입을 위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1992년 형법개정안과 2011년 형법개정안 등 일수벌금제 도입을 위한 입법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일수 정액을 산정하기 위한 피고인의 재산상태 파악 및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조사관 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일수 정액의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못했다.

  과거보다 소득 및 재산 책정 정확도가 높아져 현시점은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기에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호진 교수는 “90년대 초반과 비교했을 때, 소득과 재산에 대한 국가의 조사능력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덧붙여 “사형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양형기준은 일정 구간을 부여하는 방식”이라며 “국가가 소득과 재산을 완벽하게 오차 없이 추산할 수는 없더라도 오차범위 내에서 양형 구간을 설정할 수 있다면 적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일수벌금제 도입 논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법률의 본질과 시행의 현실성을 두고 팽팽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글┃이정우 사회부장 vanilla@

일러스트┃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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