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센터장은 “안전속도 5030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4월 17일은 교통안전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언한 날”이라고 말했다.

도시부 도로 특수성 고려한 정책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 우선의 교통환경 구축해야

 

  지난 417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안전속도 5030’은 제한속도 표지판만 바꿔 붙이는 사업이 아니다. 변경된 속도 제한에 맞게 신호등 운영 체계를 바꿔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넓은 차로 폭을 좁혀 보행자에게 더 안전한 도로 환경을 제공하고자 한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의 설계와 운영 매뉴얼 집필을 주도한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국가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안전속도 5030 정책, 어떻게 시작됐나

  “OECD 교통안전 분석기관에서 2년 정도 일했는데,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정책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속도 관리라고 느꼈다. 유럽의 도시부 도로는 대부분이 시속 50km인데, 보행자 사망사고가 유독 많은 우리나라는 기본 제한속도가 시속 60km. 속도 제한 정책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다. 실험 결과 시속 60km로 달리는 차량이 보행자와 충돌하면 10명 중 9명 정도가 사망하지만, 시속 50km에서는 5명으로 사망률이 줄어들었다. , 시속 30km에서 충돌하면 보행자 사망 가능성이 10% 이하로 떨어진다. 생존율을 확연히 높인다는 점에서 편익이 크다. 그래서 2017, 교통안전을 위해 각 정부 부처가 수행해야 역할을 정하는 8차 교통안전 기본계획수립 당시 안전속도 5030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넣었다.”

 

  - 통행 시간이 늘어난다는 비판이 있다

  “제한속도가 낮다고 통행 시간이 무조건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도시부 도로에는 자동차뿐 아니라 보행자가 많이 통행하기 때문에 횡단 수요가 굉장히 높다. 따라서 도로 곳곳에 횡단보도와 신호기가 많은데, 아무리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도 신호기의 대기시간 때문에 총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어렵다.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봤더니, 전체 통행 시간 중 약 50%가 교차로 신호 대기시간이었다. 통행 시간이 총 30분이면 신호 대기만 15분을 하는 셈이다. ·퇴근 시간과 같이 혼잡한 시간에는 더 길어졌다.

  유럽에서는 속도가 빠르다고 도착 시간이 당겨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자리잡은 상태다. 어차피 도시에서는 속도를 많이 못 내기 때문에 시속 60km50km는 큰 차이가 없으며, 시속 30km로 낮췄을 때는 보행자가 훨씬 안전해지니까 제한속도가 낮아도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정책시행 초기인 지금은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교통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되길 기대한다.”

 

  -‘도시부 도로개념을 강조하는데

  “도시부 도로란 시가화 지역에 만들어진 도로로, 주변에 건물이 많고 교차로와 횡단보도가 자주 나타난다. 자동차가 중심인 고속도로, 국도 등의 지방부 도로와 달리,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대중교통 등 통행 주체가 다양하다. 고속도로나 국도와 동일하게 일률적인 설계 기준을 가지기보다, 보행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배려해 도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전속도 5030 정책 시행 이전에는 도시부 도로와 상관없이 편도 1차로에 시속 60km, 편도 2차에는 시속 80km를 적용했다. 도시부 도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다 보니 사고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70%가 도시부 도로에서 발생했다. 안전속도 5030 정책 내용에 자동차 중심 도로와는 특성이 다른 도시부 도로를 분명하게 명시한 이유다.”

 

  - 안전속도 5030 정책이 협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우리나라의 교통행정은 이원화돼 있다. 도로를 건설하고 인프라를 관리하는 일은 국토교통부 등의 도로관리청이 맡아서 하고 있지만, 신호기의 운영과 횡단보도 설치, 제한속도 지정 및 단속과 같은 업무는 경찰청이 담당한다. 그런데 부처 간에 상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한 부처가 요청한다고 해서 권한이 생기지 않는다. 교통 문제를 개선하려면 두 부처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필요한 교통안전 정책을 제때 펼치기 쉽지 않았던 이유였다.

  안전속도 5030은 경찰청이 주도했다. 경찰 내부에서 보행 사망자 수의 비중을 줄이려면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제한속도를 조정할 도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도로설계를 하향 조정된 속도에 맞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도로관리청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침 국민 생명과 관련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당시 국토부 장관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중요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앙정부 부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지자체에 교통안전 사업 예산을 지급하는 행정안전부, 한국교통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 교통안전 관련 공단, 시민단체, 안전 법안을 만드는 국회 교통안전포럼 등 각종 기관이 합심했다. 손해보험협회에서도 홍보에 크게 도움을 줬다. 기존 차량 운전자들의 인식과 도로 환경의 관성을 바꾸는 게 쉽지 않겠지만, 큰 목표를 위해 한번 힘써보자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실무자끼리 자주 만나다 보니, 안전속도 5030 외에 다른 영역의 교통정책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논의할 기회가 생겼다. 경찰에서 어느 지역에 신호기 설치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지자체가 관련 예산에 좀 더 신경 쓰게 되는 식이다. 당시 새로 제정됐던 윤창호법’, ‘민식이법의 방향성과 협조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5030 정책협의를 계기로 타 부처 업무와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다른 정책들도 쉽게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교통안전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이러한 협치가 중요할 것이다.”

 

  -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람이 우선시되는 교통 환경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첫째로, 도로가 지금보다 훨씬 보행자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회전 차량을 들 수 있다. 현재는 차량의 우회전 소통을 위해서 보행 신호를 짧게 주는 등, 보행자가 신호 운영 방식에서 다소 불리한 위치에 있다. , 도로교통법 27조에 따라 횡단보도에 통행하는 보행자가 있으면 차량은 일시정지해야 한다. 어쩌면 보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데, 차량이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보행자가 출발했는데 운전자 쪽에 사람이 없으면 그냥 우회전하는 법규 위반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졌다. 교통사고를 확실하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부터 보행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혀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는 교통사고의 원인을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수치상으로도 신호 위반, 과속 등 운전자 과실로 발생한 사고의 비율이 90%가 넘는 것은 사실이다. 차량에 결함이 생겨서 나는 사고는 5~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운전자가 실수하기 쉬운 도로 환경이 근본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 인적·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별 위험이 연쇄적으로 반응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 최근 유럽 국가들의 경우 사람의 실수가 사망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로와 차량 시스템 설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하는 안전 체계적 접근(‘Safe System’ approach)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사람이 조심하면 사고가 줄어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예방책도 홍보와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물론 보행자와 운전자 태도도 중요하지만, ‘자동차와 도로가 더 안전해질 수는 없는지에 대해 접근해본다면 미래의 심각한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성수민 문화부장 skycastle@

사진김민영 기자 dra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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