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무더위를 전하는 일기예보가 무서울 때면 최악의 폭염 피해를 기록했던 2018년, 한 마늘 농가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해 7월 인터뷰를 위해 경남 창녕을 찾았다. 긴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창녕까지의 거리도 만만찮았지만, 창녕에 도착해서 농장까지 가는 길도 난관이었다. 농어촌버스에 몸을 맡긴 후에도 대낮에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도착한 후에는 빨리 실내로 들어가 에어컨을 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한참 막바지 마늘 선별작업에 바빴던 인터뷰이는 바깥에서 작업하면서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제 막 입사 7개월에 접어들었 던 요령 없는 기자는 털털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더운 바깥 공기에 익숙해져 선풍기 바람마저 시원하게 느껴질 즈음 인터뷰를 마쳤고, 원할 때면 언제든 쉽게 보송보송해질 수 있는 서울로 돌아왔다.

   이날이 오래 기억에 남은 이유는 단지 무더운 날의 고생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단 몇 시간도 버티기 힘든 환경에서 다른 누군가는 오랫동안 묵묵히 노동하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했다. 농식품 밸류체인의 가장 마지막인 소비단계에서 농식품을 항상 쉽고 편하게 즐기는 위치에만 있다 보니 잊고 살았던 생산단계의 어려움과 노고를 새삼 피부로 느꼈던 것이다. 시원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안도감도 함께 찾아왔다.

  그러면서 고도로 분업화된 시대가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세대는 먹고 마시고 입는 데 큰 불편함 없이 자랐다.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앞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해도 되는 세상에서 컸다. 바꿔 말하면 무관심해야만 더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다. 값싼 인건비에 기대는 24시간 영업을, 부당 업무까지 택배기사에게 떠넘기며 지속되는 택배업의 속사정을 몰라야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영국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은 윤고은 작가의 소설은 분업화된 시대가 어떻게 개인의 책임과 죄책감을 잘게 쪼개다 못해 아예 증발시켜버리는지를 섬찟하게 그려낸다.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결말은 비극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런 방식의 세상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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