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은 흥행을 보정하는 과정

재개봉, 액션보단 로맨스가 유리해

 

최승호 이사는 "모든 영화에 상영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다양성을 보장하는 편성을 강조했다.

 

   “전직 아트하우스 팀장, 현 프로배급러 그리고 비됴알바입니다.” 워터홀컴퍼니 최승호 배급이사의 블로그에 적혀있는 짧은 자기소개 글이다. 그는 비디오 대여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CGV 편성전략팀 부장과 아트하우스 팀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워터홀컴퍼니의 배급이사로 활동하며,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애니메이션 영화인 <귀멸의 칼날>을 국내 단독 개봉시키기도 했다. 16년째 운영하는 영화 블로그 비됴알바에는 매일같이 다양한 영화 소식을 업데이트한다. 배급부터 편성, 박스오피스 분석까지, 관객이 영화를 만나는 과정에 그가 함께한다. 오랜 시간 영화산업에 종사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최승호 이사를 만나 영화 편성 철학과 노하우에 대해 물었다.

 

- 영화 편성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영화 편성을 할 때는 수많은 변수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극장은 대중들의 영화 인지도 및 선호도 조사뿐 아니라 개봉일, 마케팅 컨셉, 광고 카피 등 많은 부분에 관여합니다. 따라서 만약 출연 배우가 구설수에 오른다거나, 경쟁작이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는 등의 변수가 생기면, 즉시 관객들의 반응을 수용해 상영관 수를 조정합니다. 워낙 변수가 많은 업계이다 보니 관객들의 피드백에 따라 재빨리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사실 편성은 영화의 흥행을 보정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급사와의 충분한 소통도 필요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콘텐츠가 시장 경쟁력을 결정하기에, 배급사를 통해 개봉 전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 작품만의 가치를 찾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 자신만의 편성 철학이 있다면

  “저는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편성을 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극장의 운영방침과 개인적인 편성 철학이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대형 영화관에서는 개별 지점의 실적을 중시하다 보니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높이 평가받지 못한 영화라도 누군가가 그 영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상영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례로 CGV에서 단독개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습니다. 당시 영화가 가졌던 화제성에 비해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영을 포기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잠재력을 지닌 영화라고 판단해 단독 계약을 맺었고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굳이 편성 철학을 들라면, 좋은 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재개봉작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재개봉작이 극장에서 흥행하려면 젊은 관객층이 움직여야 합니다. 따라서 너무 오래된 영화는 특별한 명분이 없는 이상 재개봉을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케이블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영화도 희소성이 떨어져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습니다. 좋은 영화임에도 시간이 지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가 유리합니다. , 액션이나 느와르 장르보다 영화 <러브레터><이터널 선샤인> 등 상대적으로 여성 관객들이 선호하는 로맨스 장르, 또는 음악 영화가 흥행하는 편입니다. 때문에 말랑말랑한 감동 코드를 가진 영화를 주로 선정하게 됩니다.

  물론 대전제는 다시 봐도 재미있느냐입니다. 시대가 변하며 당시의 걸작이 촌스러워질 수도 있고, 추억에 따라 미화돼서 재미있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영화가 현시점에서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CGV 내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아트하우스에서 근무할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아트하우스 팀장입니다라는 말이 지니는 무게감과 신뢰감이 좋았습니다. 아트하우스에서는 매번 다양한 컨셉에 맞춰 기획전을 진행했는데, 실적의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영화가 가진 본연의 재미에 푹 빠져 일했습니다.

  특히 성인을 위한 장르영화 기획전인 시네마 어덜트 베케이션을 진행했는데, 정말 흥미롭게 임했습니다. 라인업 선정부터 개봉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을 쏟았고, ‘29, 공포, 빌런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다양한 영화를 편성했습니다.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됐는데, 다행히 화제성이 높았고 개봉 후 반응도 좋아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르영화 특성상 마니아층이 확실한데, 그들에게 좋은 영화를 선보일 수 있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 영화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영화 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산업이기에 변화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꾸준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나가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작은 시장에 불과했던 재개봉 영화가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해 블루오션이 됐습니다. K-POP의 위상이 높아지며 아이돌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상영 포맷을 시도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관객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굿즈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등의 이벤트도 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획해야 합니다. 그래야 잠시 주춤하더라도 극장과 영화 산업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현민 기자 neve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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