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공학을 넘나드는 융합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더는 혁명적이지 않은 단어만큼이나 오래된 문장이다. ‘융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융합해야 하는지는 배우기 어렵다. <첨단×유산>을 통해 인문학과 공학이 어떻게 교차점을 찾는지 알아봤다.

 

  (1)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  동궐도×드론

국보 제249호 동궐도. 현재 전해지는 두 소장본 중 한 점이 고려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안양시 동편마을 수변공원에서 촬영용 드론이 날고 있다.

  동양 미술은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부감법을 사용했다. 조선 후기 창덕궁과 창경궁 전경을 그린 동궐도는 장대한 규모에 복잡하게 자리잡은 건물을 표현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비켜나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평행사선부감법을 사용했다. 동궐도는 시선의 높이와 경사각을 달리하며 거리감과 입체감, 정밀한 묘사까지 충족했는데, 이는 오늘날 드론의 항공 촬영 사진과 유사하다.

  드론은 하늘을 날며 지상을 내려다본다.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을 대신 방문하고 관찰하며 세상의 정보를 새롭게 구성한다. 촬영용뿐만 아니라 배달, 농업, 건설, 문화유산 복구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특히 구조물의 문제를 미리 진단해 안전을 관리하는 드론은 시선을 넘어 세상을 진단하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역할을 한다.

 

  (2) ()의 어제와 오늘:  고려청자×디스플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고려청자. 고려청자가 국립중앙박물관 조각공예관에 보관되어있다.
디스플레이 기술은 각 화소들이 독립적인 색과 밝기를 표현하게 하여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색을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겨왔다. 태토를 유약, 급열, 급랭하는 과정으로 비색청자를 완성한다. 은은히 맑은 비색과 유려한 형태, 화려한 문양에서 고려청자 고유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고려시대에는 비색으로 아름다운 색을 구현했다면 현대에는 디스플레이 RGB를 이용한다. 디스플레이의 발전으로 표현 가능한 색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고려청자의 옥색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에는 아직까지 한계가 있다. 청자의 비색을 구현하려면, 훨씬 더 까다로운 색 표현과 높은 해상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가장 유사한 옥색을 구현했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의 눈은 이를 옥색으로 인식하지만, 옥색의 정확한 화소는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화소를 통해 빛의 밝기를 조절하여 다양한 색들을 만들어내는 디스플레이가 과거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3) 이어지는 정보 공유의 명맥:  보성사×인공지능

3.1 운동을 위한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불타 없어진 보성사의 옛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인공지능 도슨트 로봇 큐아이(QI)가 전시안내를 하고 있다.

  본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교육, 그 이상의 목표를 추구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 <야뢰>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민중을 계몽하고 이를 통해 암울한 시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이용익 선생은 대중 계몽에 도움이 되는 각종 서적을 출판하고 배포하기 위해 보성전문학교와 함께 출판사 보성관과 인쇄소 보성사를 설립했다. 본교는 약 100년 전, 이미 지식을 생산·저장·관리·공유하는 선구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에는 그 역할을 인공지능이 맡고 있다. 인공지능이 접목된 디지털 아카이브 추진을 통해 보성전문학교, 보성사 그리고 보성관이 함께 실현하고자 했던 교육구국의 이념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4)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다: 태항아리×바이오기술

국보 제177호 분청사기 인화문태호 태항아리. 인화문 분청사기의 가장 세련된 작품인 '분청사기인화문태호'는 고려대 박물관 역사민속전시실 도자실에 전시돼있다. 
바이오 기술이란 ‘특정 부품,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유기체나 생물 시스템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탄생을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아이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항아리. 태를 담은 하나의 작은 항아리를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는 방식이다. 이때, 항아리를 모신 태실과 죽은 이의 무덤은 한 장소에 마련되기도 했다. 개의치 않고 태실과 무덤을 함께 배치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는 조선 사람들의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죽음에 관한 현대 과학기술의 시선 역시 조선과 유사하다. 인간의 생체조절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멈춘 후 냉동보관하여 죽음을 유예하는 냉동인간 기술. 유전자가위를 통해 염기서열을 변형한 뒤 맞춤형 인간을 탄생시키는 복제인간 기술. 바이오기술은 모두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태항아리와 바이오기술은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생사의 경계는 정말 모호하게둬야 하는 것인가.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바꾸어 나갈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 본 지면은 강제훈 외 18(2021), <첨단×유산> 책에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서현주·송원경·유보민·정인서·조휘연·김예락·최혜정 기자 press@

사진제공 | 고려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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