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든 건 아니지만, 니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안 힘든 것도 아니다

  이 말은 우스갯소리로 시작했지만, 사실 정곡을 찌르며 회자되고 있다. 요즘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공정이라는 키워드와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종종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것 같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현실에서 공정한 평가와 기준만이 유일한 위안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공정의 기준에 대해서는 조금 의아하다.

  26살의 대학 재학생이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임명되었을 때였다. 물론 그 임명이 젠더와 청년이라는 키워드에 따른 정치적인 선택이었으며, 정치권과 청년세대의 괴리를 좁히기엔 피상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전해진 청년의 박탈감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지점에서 발현된 듯하다. 20대에도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취업 준비도 해보지 않은 재학생이 청년을 대변할 수 없다는 비판과, 부지사·고등법원 부장판사급의 1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이다.

  임명직으로 그 평가기준이 시험이 아닌 정치적 역량이었을 테지만, 그의 정치활동 이력은 무시되었고, 편입경력은 비하 받았다. 학력이 한 사람의 능력을 전부 보여줄 수 없다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학력으로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평가했고, 높은 편입 경쟁을 뚫고 합격하기 위한 노력은 학벌에 편승하겠다는 요행으로 비아냥 받았다.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경험해 오고 있는 학벌 중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 반성은 없었다. 언론은 임명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다.

  ‘청년비서관1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 것은 나이가 어려도 중요한 직무를 맡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청년비서관은 청년의 취업 및 주거 등 현실문제 해결과 더불어 청년세대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상상을 하도록 지원하는 등 사회적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이러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았다. 공정의 기준을 정치화하며 청년의 역량을 사회의 일꾼으로 제한했으며 그 평가기준을 학벌과 구직경험으로 한정했다. 공정이라는 의제가 정치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공정이라는 외피로 가능성을 제한하고, 일률적인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닌 다양한 능력과 경험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기준의 모순을 경계해야 한다.

 

<늘품2014>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