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훈 문과대 교수·한국사학과

  20대 시절, 김준엽 선생을 말석에서 뵌 적이 있었다. 고대 총장에서 쫓겨나고 얼마 안 된 때였던 듯싶은데, 선생은 사학과 답사에 동행했다. 필자의 지도교수가 선생께 간곡하게 동행을 부탁드렸고, 필자는 그 답사에 대학원생 조교로 참석했었다. 어찌 되었건 저녁을 먹고, 모여서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이란 게 믿을 것이 못 되어, 장소도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자리의 생생함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선생은 20대 시절 세 번 죽음을 각오했다고 한다. 일본 학병에서 탈출하면서 한 번, 중국군 유격대의 일원으로 일본군과 싸우다가 한인 탈출병을 모아 충칭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할 때 한 번, 조국 땅에서 죽고 싶다고 미국 특공대에 지원할 때 한 번. 대충 그렇게 세 번으로 기억된다. 각각의 각오가 가져온 유익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유격대 경험 덕에 지금도 어디서나 누우면 잘 잔다고 하셨다. 우리 때는 국사 교과서에 광복군이 미군 특공대 훈련을 마치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당사자인 선생을 친견하고 말씀을 듣는 일은 석사과정의 사학도에게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 가지 실망스러웠던 것은 역사의 신을 믿는다는 선생의 고백이었는데, 당시는 역사의 과학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때라 김이 새는 발언이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던 젊은 시절을 덧없이 보내고, 필자는 여전히 고대 교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대의 싱싱한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하지 못하게 되는데, 우리 집 막내가 필자가 만나는 학생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보니, 세월이 제법 흘렀다. 이제야 어렴풋하게 역사의 신이 무슨 의미인지 알 듯도 하다. 필자에게 역사의 신은 선의(善意)’. 뭇 군상이 각축하는 장에서 어찌 선의만 있겠는가만, 온갖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힘을 써서 찾아내고 읽어가는 것이 선의가 아니라면 허무할 것 같다.

  동기 중에 제법 재주가 있고 맹랑한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필자의 지도교수 수업에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저는 별로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누가 설명해주면 알아들을 정도는 됩니다. 율곡 이이가 왜 훌륭한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율곡을 본받고 싶어 하셨는데, 그런 분의 수업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은 우리 사이에서 회자하였는데,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잘 답이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불똥은 우리에게 튀었는데, 한동안 전공자 모임이 있을 때면 지도교수께서 율곡이 왜 훌륭한지 풀어주셨다. 우리는 전후 사정을 모른 채로, 퇴계와 율곡을 비교하고, 시대상에서 율곡의 역할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지겹게 들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지식이 늘기는 했다.

  친구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 율곡으로 책도 내고 글도 여러 편 썼다.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렸는데, 필자에게는 한 권 보내오지도 않았다. 자기는 공부도 하고 그 덕에 생활에 보탬도 되었겠지만, 영문도 모르는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필자가 멋진 책을 내게 되면, 우아하게 서명하여 보내줄 작정이다. 천성이 게을러서, 소심한 복수의 기회나 있으려나!

  필자는 역사의 선의를 믿는다. 가끔 수업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한다. 15세기에 양반은 전체 인구의 10%가 되지 않았다. 지금 여러분 중에 양반 성씨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16세기, 노비 인구는 30%가 넘는 비중을 점했다. 한 오백 년 지났는데, 30%가 넘던 노비는 증발했고, 10%도 되지 않던 양반은 한국 사회에 차고 넘친다. 왜 이럴까? 양반이 줄기차게 생식하는 동안, 노비는 자식을 낳지 못해서인가? 인위적인 결과이다. 어느때 누군가 결심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후손에게, 노비 신분을 물려주지 않겠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자신이 지워져야만 노비 신분이 대물림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낯선 어느 땅에서 선의를 품고, 공덕을 베풀며 신분을 세탁했다. 시간이 흘러 그의 집안은 양반으로 전환되었고, 전환된 신분은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았다. 그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인 결과가 오늘의 한국 사회인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선의를 품은 안타까운 노력을 용납하려고 하는 유전자가 한국 사회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굳이 찾으려면, 못 찾을 이유가 없었을 터이지만, 지금 선을 쌓아가는 노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는 항상 자신을 지워가는 몸부림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틈새가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선의의 출발점이다. 선의에 바탕을 둔 성과는 모두의 힘을 모아야 이뤄진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는 노비 같은 범부(凡夫)도 터득한 상식이었는데, 요즘 한국의 리더십에서는 이러한 상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의에 찬 결단을 참 많이들 웅변하는데, 선의는 자신을 지울 때 진정성을 드러내는 법이다. 아직은 더 공부해 보려 한다. 한국 사회를 지탱해 가는 선의를 찾아볼 작정이다. , 율곡이 왜 훌륭한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필자의 강의에 오시면, 설명을 들으실 수 있겠다. 물론 선의를 강조하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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