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유산·역사 소재로 선보여
대사로 보전하는 토속 방언
“지역주민 참여 콘텐츠 도모해야”

주희야, 내가 더 큰 빅 뉴스감 들려줄까? 동피랑을 떠나지 않고, 오직 동피랑에서만 혼자의 힘으로 실력을 쌓은 유명 화가가 탄생했다. 어때?”

-통영 극단 벅수골 <동피랑>

  연극하면 서울 혜화가 제일 유명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지역만의 매력을 가진 향토 극단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역 극단들은 1983전국 지방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 개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늘날까지 전통성을 지키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지역 향토 극단들은 역사적 인물, 문화재와 같은 각 지역의 문화자원을 연극으로 승화시키며 그 색채를 뚜렷이 하고 있다. 송희영(서울예술대 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지역의 문화를 돋우는 일에 가장 전투적인 기지에 있는 사람은 지역 문화 예술인이라며 향토 극단은 차별화된 지역 콘텐츠를 구상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제주 자청비 설화를 소재로 한 극단 '세이레'의 자청비 공연 사진
제주 자청비 설화를 소재로 한 극단 '세이레'의 <자청비> 공연 사진

극으로 재조명한 지역 자원

  지역 향토 극단들은 각 지역 위인을 소재로 삼아, 그들의 삶을 조명한 무대로 특색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2009년 파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극단 예성은 파주의 대표 인물로 널리 알려진 율곡 이이, 임명애 등의 위인을 소재로 한 극들을 공연해왔다. 먼저, <율곡 이이>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율곡 선생의 공로뿐 아니라, 그의 가족사를 그리는 등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 파주의 여성 독립운동가 임명애의 생애를 다룬 <8호 감방 임명애>는 지역의 향토 연극들이 경연하는 고마나루 전국 향토 연극 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극에서는 만삭의 몸으로 만세시위에 나서며 감옥에서 갓난아이를 돌본 임명애 운동가의 처절한 삶을 다뤘다. 박재운 극단 예성 대표는 지역의 선조들을 다룬다는 건 지역 예술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파주의 역사적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연극을 본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작품에 활용하는 극단도 있다. 통영 극단 벅수골은 통영의 자연경관, 전통문화유산, 설화 등을 연극 콘텐츠로 승화시킨 통영 로드스토리텔러시리즈를 기획했다. 통영의 무형문화재인 나전칠기를 소재로 활용한 <나의 아름다운 백합>,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동피랑>이 대표적이다. <나의 아름다운 백합>은 나전칠기 장인 노인의 공방에 제자가 되고자 하는 청년이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해당 작품은 하나의 나전칠기 작품을 만들 때 많은 우여곡절이 생기듯, 풍파를 견디는 인간 삶의 깊은 고뇌를 담아냈다. , <동피랑>은 통영시민들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재탄생한 동피랑 마을을 배경으로, 예술가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동피랑 마을 젊은이들과 시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려내 예술적 감성을 담아냈다. 송희영 교수는 벅수골이 무대화해서 보여주는 요소들은 통영의 오래된 기억과 장소를 상기하게끔 한다극단의 개성과 통영의 정체성이 접목돼 차별화된 행보를 선보였다고 말했다.

  극단 벅수골은 연극과 관광을 결합한 온라인 연극여행 콘텐츠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지난 1, 벅수골은 희곡 전자책과 연극 무대 영상을 함께 관람하는 통영예술관광브릿지플랫폼을 출범했다. 플랫폼 상에서 통영의 유명한 관광지를 코스로 보여주면서, 각 장소와 관련된 연극 콘텐츠들을 영상화해 제공했다. 장창석 극단 벅수골 대표는 통영의 잊혀 가는 역사와 숨어있는 자원을 발굴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지속가능한 공연을 통해 통영 지역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 울려퍼지는 방언들

  지역 연극계에선 사투리를 활용한 작품으로 지역 방언을 보전하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향토 극단들은 각 지역의 특색이 담긴 방언을 연극 언어로 사용하며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배우의 몸짓과 대사, 억양이 미치는 영향이 큰 연극에서 방언을 활용해, 지역 고유 방언을 기억하고 보전하려는 것이다.

  “헌저헌저 서답헐 옷이나 챙경 가게!(빨리빨리 빨래할 옷이나 준비해줘!)” 연극 <자청비> 무대에 제주 방언들이 가득 울린다. <자청비>는 토속적인 제주어 대사들이 일품인 제주 극단 세이레의 대표 작품이다. 제주 설화 속 농경·오곡의 신인 자청비를 소재로 한 연극으로, 자청비의 주체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유네스코가 소멸위기어로 지정한 제주어만으로 이뤄진 해당 작품은 충남 공주, 서울 등에서도 공연돼 정통 제주어를 관객들에 널리 선보였다. 정민자 극단 세이레 연출가는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제주어를 사용해야 한다제주인의 정체성과 생활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제주어를 연극 언어로 활용하면, 관객들의 깊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시립극단도 지난 3월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연극으로 불리는 차범석의 <산불>을 전북 지역 방언으로 각색해 정기공연을 올렸다. <산불>은 한국전쟁 당시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이념의 허구를 다룬 수작이다. 전주시립극단 표 <산불>은 전북 순창군 회문산의 마을이라는 극 중 배경과 무대 위 인물들이 내뱉는 지역 사투리가 함께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더욱 투박한 감성을 전했다. 지역의 문학가들과 토박이들에 자문을 구해 작품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투리의 말맛은 살린 완성도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은 사투리는 지역 언어의 뿌리이자 영혼이라며 전북 사투리를 복원하고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전북 지역 연극인들의 일차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말 사투리 보전에 대한 연극계의 고민은 축제의 형태로도 발전했다. 2019년부터 시작해 매년 열리는 말모이연극제는 경상, 제주, 이북을 포함한 지역들의 다채로운 언어로 대학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각 지역의 뚜렷한 정체성이 잘 담긴 스토리와 배우들의 구성진 방언이 어우러진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말모이연극제를 관람한 A씨는 연극의 중심 언어가 사투리라는 게 색달랐다무대를 통해 각 지역의 문화와 생활 방식 그리고 설화까지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말모이연극제 운영위원회 측은 기존 연극이나 영화에선 사투리에 대한 문화적 고민이 깊게 나타나지 않았다음성 언어로 표현되는 연극 무대가 우리말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민자 연출가는 제주어가 생소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게 처음엔 우려가 됐지만, 문맥과 억양만으로도 정서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지역 향토 극단만이 들려줄 수 있는 무대를 보여줄 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향토 극단들은 지역 연극 보전을 위해선 시민의 관심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만큼, 관람하는 지역민들이 있어야 비로소 무대가 완성될 수 있다. 이에, 지역 극단들은 무대 외에도 주민 참여형 연극 콘텐츠들을 개발하며 지역민들이 지역 연극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극단 벅수골은 통영 세포리 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작품의 스토리텔링 메이킹을 함께하고, 주민들을 <치마꽃>의 극 중 배우로 직접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민자 연출가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톡톡 연극 교실을 진행하며 제주도의 젊은 연극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재운 대표는 무대를 완성시키는 건 결국 관객들의 존재라고 말했다. 송희영 교수는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작자와 관객과의 공감과 소통이라며 지역주민 참여형 콘텐츠는 향토 연극의 지속 가능성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이주은 기자 twoweeks@

사진제공 | 극단 예성, 극단 세이레, 말모이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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