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부터 아바타까지 ‘아이돌 세계관 전성시대’
요정부터 아바타까지 ‘아이돌 세계관 전성시대’
  • 이성현 기자
  • 승인 2021.09.1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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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소설처럼 스며든 세계관

세계관으로 그룹 색깔 표현

독특한 설정에 이어지는 스토리

‘잘 만든 세계관’ 다방면 활용

 

  K-POP 아이돌은 콘셉트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해가고 있다. ‘세계관’의 사전적 정의는 ‘철학 세계와 인간관계 및 인생 가치나 의의에 대한 통일적인 관점’으로, K-POP 문화에서 이야기하는 세계관은 이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이융희(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K-POP 아이돌 문화에서 세계관이란 ‘가공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상의 세계와 질서, 그리고 그 질서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관념’을 일컫는다”고 말했다.

  세계관은 오래전부터 아이돌의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사용돼왔다. S.E.S와 핑클의 요정 콘셉트로 시작해 에스파의 메타버스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아이돌 세계관은 가수 자체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에 기획사에서는 영화나 캐릭터 사업을 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수단에도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다. 정지은(조선대 K-컬쳐공연·기획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K-POP 아티스트가 음악적으로만 스토리를 보여주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유튜브 등 많은 창구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전했다.

 

‘콘셉트’를 넘어 그들만의 세계로

  90년대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들은 요정, 전사와 같은 하나의 ‘콘셉트’를 정해 방송에 출연했다. S.E.S는 요정 콘셉트를 활용한 대표적인 아이돌로, 순백색 의상을 입어 ‘요정’의 외형을 보이려 노력했다. 이후 2003년, 동방신기가 데뷔하면서 이름을 네 글자로 짓는 등 아이돌 개인에 ‘캐릭터’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동방신기의 초기 멤버는 총 5명으로, 유노윤호, 최강창민,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으로 구성됐다. 그룹명은 ‘동방에 신이 일어나다’라는 뜻으로, 그중 시아준수는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겠다’, 최강창민은 ‘최강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3세대에 들어서면서 ‘아이돌 세계관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아이돌 그룹 ‘엑소’는 초능력 세계관을 구축했다. 데뷔 초 엑소는 다인원 그룹의 특성을 이용해 평행세계, 초능력을 가진 쌍둥이라는 설정을 담은 세계관을 형성했다. 엑소 멤버들은 태양계 외행성인 ‘엑소플래닛’에서 기억과 능력을 잃은 채 지구로 오게 됐고, 이들이 지구에서 힘을 되찾아 고향인 엑소플래닛을 위협하는 붉은 기운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엑소 멤버들은 각각 담당하는 초능력이 있다. 멤버 '디오'는 괴력, '세훈'은 바람을 담당하는 식이다. 실제로 엑소의 데뷔곡 ‘MAMA'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멤버 '카이'가 순간이동을 하고, '백현'의 손에서는 빛이 나오는 등 멤버들이 초능력을 구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엑소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 세계관을 반영하기도 했다. ‘MAMA’라는 곡에서 멤버들은 쌍둥이 컨셉에 맞게 ‘EXO-K’와 ‘EXO-M’으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했는데, 이때 안무는 두 그룹 간의 연결성을 고심해 구성했다. EXO-M의 멤버가 총을 장전하는 안무를 하면, 같은 파트에서 EXO-K의 멤버는 총을 쏘는 동작을 선보였다. 또 콘서트에서 초능력이 ‘물’인 멤버가 등장할 때 콘서트장에 물이 쏟아지고, ‘빛’을 담당하는 멤버가 나오면 콘서트장의 모든 불이 켜지기도 했다.

엑소 콘서트 '엑소디움' 영상 속에서 멤버 백현이 초능력인 '빛'을 사용하는 모습

 

각자의 정체성과 세계관으로 팬층 확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방탄소년단'도 세계관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 방탄소년단은 2015년 발매한 앨범 ‘화양연화 pt1’부터 세계관과 관련 모든 콘텐츠에 ‘BU’라는 표시를 달았다. BU(BTS Universe)는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일컫는 말로, 이 속에서 방탄소년단은 ‘청춘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Love yourself 시리즈와 같은 연작 앨범 발매 형식을 채택하며 방탄소년단만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각 멤버는 그들의 스토리 속에서 각자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며 스스로 성장한다. 청춘 3부작인 ‘화양연화’ 시리즈는 동명의 영화제목이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사자성어를 차용해, 불안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청춘의 순간을 담았다. 공감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는 점이 대중들에 큰 인기를 얻은 요인이다. 정지은 교수는 “방탄소년단 세계관을 통해 청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동배(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스타들은 대부분 거리감이 있는데, 방탄소년단은 당신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청춘의 일부로 그려졌기에 인기를 끈 것”이라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앨범 콘셉트포토

 

  최근에는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 아이돌도 많아지는 추세다. 멤버들이 ‘yyxy’ 염색체를 가진 신인류라는 설정을 가진 ‘이달의 소녀’와 별자리 세계관을 가진 ‘우주소녀’ 등이 있다. 그중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세계관에 메타버스를 결합한 아이돌 ‘에스파’가 독보적 사례다.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세계(Universe)를 합친 말로, 디지털 세계에서 펼쳐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에스파는 실존인물 4명과 그들의 아바타인 가상인물 4명으로 멤버가 구성되며, 자신들을 8인조 그룹이라 소개한다. 현실세계의 멤버들과 가상세계의 아바타 멤버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소통한다는 설정으로, 뮤직비디오에서 8인의 멤버가 모두 등장해 안무를 선보인다. 더불어 세계관에 충실한 노래를 발표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치기도 한다. 데뷔곡 ‘Black Mamba'에서 멤버들과 아바타의 연결을 방해하는 ‘Black Mamba’의 존재를 노래했고, 다음 곡 ‘Next Nevel’에서는 ‘Black Mamba’를 찾기 위해 ‘광야’로 떠나는 모험의 여정을 그렸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로 삼으려는 시도가 아이돌계에서 늘고 있다”며 “앞으로 AI 기술이 발전하며 실제보다 더 정교한 아바타 아이돌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파 멤버인 카리나와 카리나의 아바타인 ae카리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

 

영화·캐릭터에도 무궁무진하게 활용

  아이돌의 세계관은 이제 음악에 한정되지 않고 영화 산업까지 적용되는 등 다양한 분야까지 뻗어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원작으로 한 ‘YOUTH’라는 드라마는 2021년 제작·방영될 예정이다. 웹툰이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기존에 많았지만, 아이돌의 세계관을 드라마화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또 아이돌이 영화 속에서 직접 연기하며 세계관을 전달하기도 한다. 아이돌 ‘피원하모니’는 세계관이 담긴 영화인 ‘피원에이치(P1H):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공개했다. 영화 속 멤버들은 ‘악의 집단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위험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세계관에 맞춰 각자의 설정을 연기로 표현했다.

  세계관을 활용해 기획사가 캐릭터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BT21’이라는 방탄소년단의 캐릭터 브랜드가 인기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각 멤버들의 특색이 반영된 캐릭터 제작에 참여했다. 멤버 ‘제이홉’의 캐릭터인 ‘망이’는 제이홉과 닮은 말 캐릭터로, 제이홉의 닉네임인 ‘희망’에서 이름을 붙였다. 또 다른 멤버 ‘진’과 닮은 알파카 캐릭터 ‘RJ’도 있다. 이름은 알파카의 ‘알’, 진의 ‘J’를 따온 것이다. 이어 ‘BT21’ 캐릭터는 ‘BT21 Universe’를 가지고 있는데, 대중은 기존 세계관인 ‘BTS Universe’와 닮은 점을 찾아보며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멤버 ‘뷔’의 별명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캐릭터 ‘타타’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인 옥탑방을 마련했다는 현실적 설정은 방탄소년단 세계관 속 어려움을 겪는 청춘과도 비슷해 보인다. BT21은 재미를 더한 새로운 캐릭터 세계관을 구축한 예시다. 정지은 교수는 “BT21은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사례”라며 “앨범 등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캐릭터를 만든 점이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홍대에 위치한 BT21 굿즈 판매샵

 

  K-POP 아이돌은 저마다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려 한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첨단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김영대 평론가는 “세계관이 아이돌에게 몰입하는 하위문화적 특성을 강화한다”며 “만화, 애니, 캐릭터 산업, 메타버스 등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이성현 기자 saint@

사진 | 강동우 기자 ellipse@

사진제공 |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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