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암역 한편에서 시(詩) 항아리를 발견했다. 시 항아리는 서울시가 시민들의 정서함양과 시문화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준비한 서비스다. 항아리 안에는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등의 문구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작은 종이 두루마리가 들어있다. 두루마리를 펼치니 이희자 시인의 <빈 들녘의 노래>가 하루의 끝에서 나를 위로했다.

  분명 매일 오가며 지나쳤던 장소인데 이제서야 항아리가 보이다니. 항아리 상태를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항아리 안에는 먼지가 얹혀있는 두루마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지하철 시간에 맞춰 각자의 갈 길에 서두르느라 항아리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갈 사람들이 눈에 선했다.

  정문 앞 주택에서는 ‘고대앞마을 사진전’이 열렸다. 본교 주변 동네의 역사를 되짚으며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누구나 지나가며 들릴 수 있는 개방형 무료전시다.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자취촌 근처에서 진행되지만, 방명록은 허전하기만  하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시라든지 전시라든지 소위 낭만을 위해 선 순간의 멈춤이 필요하다. 그 이전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어 두루마리를 뽑을 수 있고. 잠시 주택에 들어가 눈길을 나눌 수 있다. 여물어가는 가을이다. 잠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라. 당신을 위한 낭만이 도처에서 당신이 봐주길 기다리고 있다.

 

송다영 취재부장 forever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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