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부터 2010년까지 운행

도시민의 대표적 근교 여행지

알알이 박힌 대학생 엠티의 흔적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는 경춘선 숲길이 있다. 오래된 철로가 남아있는 길은 원래 경춘선이 지나던 곳이다. 경춘선은 1939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과 춘천을 이어줬다. 경춘선이 전철화되면서 몇몇 구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고, 그곳에 생긴 게 경춘선 숲길이다.

  낭만 열차 경춘선은 이제 없지만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경춘선 숲길 인근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68일부터 103일까지 기획전 경춘선, 엠티의 추억을 진행한다. 경춘선의 개통 역사, 도시민들의 기차 여행, 대학생들의 엠티를 회상할 수 있는 전시이다. 기획전을 총괄한 서울생활사박물관 황혜전 학예사는 사라졌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엔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전시를 통해 추억이 된 낭만 열차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들리는 열차 소리와 스크린에서 달려오는 경춘선은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한다. 엠티의 추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대학생의 엠티행을 책임지던 경춘선을 따라 그 시절의 향수를 둘러봤다.

 

열차 칸 내부의 모습은 물론 소음과 창밖의 풍경까지 묘사했다.
관람객들은 전시회 감상 후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렸다.

 

경춘선의 역사를 지나다

  전시는 경춘선 개통 당시의 자료들로 시작된다. 경춘철도 용지도(어떤 일에 사용되는 토지를 표시한 것)에는 철도건설을 위해 사들인 부지가 표시되어 있다. 경춘선은 춘천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1920년대부터 그 개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경춘철도주식 회사에서는 19375월 경춘선 부설 공사에 착수해 1939년 경춘선을 완공했다. 1939723일 자 동아일보에는 개통식을 위해 출발하는 경춘선의 모습이 실렸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안내 책자 조선여행은 주요 관광지와 철도역을 표기했다. 경춘선은 사설 철도로 구분돼 파란색으로 표시됐다. 1940년대 발행된 조선철도시간표와 최신 조선산업교통지도 등에는 경춘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전시된 자료들을 따라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면 경춘선이 지나는 정거장들의 흑백사진이 보인다. 지금은 광운대역이 된 성북역부터 사라진 성동역, 남아있는 가평역, 춘천역까지 오래된 역사가 사진 속에 남아있다. 성동역은 개통 당시 경춘선의 출발지였고 도시화로 1971년 폐역됐다. 현재 제기동역 근처에서는 성동역 터 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당시 청량리역과 광장의 시계탑이 재현됐다.
전시장에는 당시 청량리역과 광장의 시계탑이 재현됐다.

 

만남의 광장, 여행의 출발점

  “9시에 청량리역 시계탑에서 만나자!” 전시장 한쪽 벽에서는 1960~70년대 청량리역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흘러나온다. 성동역이 사라지고 경춘선의 출발역이 된 청량리역 시계탑에는 여행 가는 인파가 몰려있고 설렘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영상 속의 청량리역은 화면을 넘어서도 존재했다. 전시장에는 광장의 시계탑부터 미키마우스 아이스크림 카트까지 그대로 재현됐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카트를 사용해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청량리에서 남춘천으로 향하는 행선판과 승차권의 낡고 빛바랜 모습은 열차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교통 종합 월간지 교통에는 교외선을 이용한 소풍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60년대 경제성장 이후 여유로워진 도시민들은 근교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시된 종이 도시락, 피크닉 도시락, 캠핑용 3단 도시락은 도시락통 하나씩 손에 들고 소풍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1966710일 자 조선일보에서는 조용한 피서지 베스트 20을 투표로 결정했는데그중 강촌과 청평은 경춘선으로 갈 수 있는 대표적인 서울근교 여행지였다. 철도청 운수국 여행과에서 발행한 철도관광지도는 철도 노선별 요금과 주변 관광지를 안내한다. 퇴계원 근처의 불사, 퇴계원 유원지 가평에 있는 용추폭포, 북한강, 남이섬 등이 관광지로 소개됐다.

  전시장에는 경춘선 내부가 재현돼 있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달려있고 의자는 한 방향만 보지 않고 마주 보고 있다. 객실 한가운데는 스낵카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시시각각 변하는 차창 밖 풍경까지 묘사돼 있다.

 

민박집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노래부르는 80년대 엠티의 모습을 재현했다.
민박집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 80년대 엠티의 모습을 재현했다.

 

좁은 기차와 방에 부대끼며

  1983년 겨울에 발표된 학원자율화조치’(학원 상주 경찰이 철수하는 등 대학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계기로 대학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대자보가 학교 게시판을 도배했고, 비밀리에 활동하던 동아리들이 공개 동아리로 전환됐다. 여러 서클이 발행한 잡지 학원-혁신 창간호청년문학 제1등에서 자유로운 대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해진 학과와 서클에서는 엠티라는 이름의 여행을 떠났다. 1985410일 자 조선일보에서는 대성리 엠티 마을을 조명했다. 대성리, 강촌, 남이섬, 청평 등은 엠티 명소가 됐고 1970~90년 경춘선은 엠티 행 열차였다.

  전시장 곳곳에는 엠티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청량리역에서 11시경 경춘선에 탑승하여 1230분경 강촌역 도착했습니다. 당시 강촌역 근처에는 민박촌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역에 내린 뒤 걸어서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을 풀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조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같은 조원끼리 식사도 준비하고 장기자랑도 준비했습니다.

-87학번 박OO

앞마당이나 강변에 나와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사회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지새우던 강촌의 밤 풍경, 캠프파이어를 사이에 두고 막걸리 통이 이리저리 건네진다. 이미 열두 시가 넘어섰다. 당연히 전등이 꺼지고 카세트 볼륨이 높아지거나 기타소리가 커졌다.

-86학번 박OO

  강촌 민박이라고 쓰인 좁은 방에 둘러앉아 냄비와 술을 앞에 둔 모습. ‘캡틴큐경월소주는 지금은 보기 힘든 술들이다. 캄캄한 새벽, 모닥불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조용필의 노래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는 영상은 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한 관람객은 전시장 출구 쪽에 놓인 종이에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1988... 87년 격동의 시절이 지나고 낭만과 자기 검열 사이에서 어중간한 시기. 그래도 MT는 청년이 누릴 수 있는 공식적인 사치였다. 낯선 공간에서 잠 못 이루고 술 취한 선배, 동기들을 챙기고 나면 하늘의 무수한 별에 그냥 출렁였던 마음. 기차에 신문지 깔고 가도 좋았던 추억.”

 

유승하 기자 hahaha@

사진문도경 기자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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