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탄생한 가상의 세계

관객에 충격준 횟집 수족관 스토리

캐릭터가 살아있는 극장판의 매력

​이대희 감독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살아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희 감독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살아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희 감독은 2012년 첫 장편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에서 횟집 수족관에 잡혀 들어간 고등어의 눈으로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장의 약세에도 그는 단편 애니메이션 <페이퍼보이>를 시작으로 <파닥파닥>, <스트레스 제로> 등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관객에 선보이고 있다. 그는 독보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에 우리의 현실을 녹여낸다. ‘이대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는 이대희 감독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극장판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 계기는

  “애니메이션과 전공 수업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웠는데, 캐릭터를 제 손으로 직접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살려낸 것만 같은 기쁨이 느껴졌어요. 그 수업 이후로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됐고, <페이퍼보이>와 같은 단편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죠.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애니메이션은 아주 유리한 예술 분야에요.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가장 효과적이죠. 상상한 것들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제약도 없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강력하게 빠져들었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감독을 꿈꾸게 됐습니다.”

 

​​2012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파닥파닥​
​​2012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파닥파닥​>

  수족관 속에 담아낸 처절한 현실세계

  <파닥파닥>은 2012년 개봉한 이대희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횟집 수족관에 갇힌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의 탈출기를 그렸다. 물고기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묘사와 ‘횟집 수족관’ 배경이 주는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로 큰 반응을 얻었다. 특히 물고기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횟감 손질 장면은 처참한 분위기를 조성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근무했던 시절, 출퇴근길에 작은 횟집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느껴질 때마다 그 횟집 수족관 속의 물고기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갇혀 있는 물고기들이 마치 내 신세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 안에 묶여 있는 존재죠. 이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동시에 항상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욕망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소재가 ‘횟집 수족관 속 물고기의 탈출기’였고, <파닥파닥>을 만들게 됐어요.”

  <파닥파닥>에는 주인공인 고등어 ‘파닥파닥’과 현실에 순응한 채 수족관 속에서 계급 사회를 이루고 사는 물고기들 간의 대립이 나타난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올드 넙치’를 중심으로 수족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목숨을 위협하는 물고기들의 행위가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기회주의자, 현실에 비관적인 냉소주의자 등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족관 속 물고기의 입장으로 풀어냈다.

 

 

202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트레스 제로>. 주인공이 불괴물을 무찌르는 무기인 스트레스 제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일상의 단면들로 탄생한 이야기

  “주로 일상에서 떠오르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 같아요. 주위를 늘 주시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적어놓는 습관을 들였어요.” 이대희 감독은 일상 속에서 얻은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주인공들이 스트레스를 제거해 주는 특별한 음료수인 ‘스트레스 제로’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먹으며 자라는 불괴물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담은 <스트레스 제로>도 일상 속에서 착안해 완성했다. “딸아이가 오빠한테 장난감을 뺏겨 막 우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불타오르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우는 모습이 마치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모습처럼 보였죠. 그 이후 작품 기획회의를 했는데, 당시 핫식스 같은 음료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불타는 괴물을, 음료수를 먹여서 처치한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떼쓰는 딸의 모습이 불 괴물로, 음료수가 히어로의 무기로 된 거죠.”

 

  - 극장판 제작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제가 주력하는 작품은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에요. 스토리나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목표인데, 그러려면 캐릭터의 움직임을 질 높게 묘사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래도 제작 기간이 길고, 규모가 큰 극장판에서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인물의 성격과 내용을 압축하고 정제해서 보여줄 수 있는 점도 극장판만의 매력이기에,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에 주력하게 됐어요.

  시장 자체가 작으니 한계도 많아요. 현재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기반으로 제작돼요. 하지만 TV애니메이션은 유아용이 대부분이니, 국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해졌죠. 따라서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투자나 제작이 이뤄지기 어려워요. 또 국내 애니메이션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점점 해외로 진출하고 상대적으로 전망이 밝은 게임이나 웹툰 업계로 많이 나아가는 게 현실이죠. 이런 부분들이 현직자로서 느끼는 고충이지만,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국내에 신화나 설화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판타지 신화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기존에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장르 특성상 표현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완성도가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이런 소재에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을 결합한다면 훨씬 매력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고조선의 전쟁의 신인 ‘치우’ 신화에 관심 가지고 있는데, 향후 작품으로 꼭 다뤄보고 싶어요. 

  또 관객분들이 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면서 작품 속 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재미있게 봐주시면 행복할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은 가상의 세계잖아요. 작품을 보는 그 시간만큼은 작품 속의 세계로 들어가서, 답답하거나 힘든 현실을 잊으셨으면 좋겠어요.”

 

글 | 이주은 기자 twoweeks@

사진 | 최혜정 기자 joyc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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