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의 <HIP 合(힙합)>은 ‘힙’한 스타일의 춤을 한자리에 모아본다는 취지의 공연으로 김보람, 김설진, 이경은 세 명의 개성 있는 무용가를 주축으로 한 트리플 빌 형식의 현대무용이다. 세 작품 모두 우리 국악을 사용하며 디제잉하거나 라이브연주로 새롭게 해석하고, 힙합이라는 스트릿 댄스를 적극적으로 무대로 소환해 협업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지향한 기획으로 현대무용이 난해하고 심오한 춤이 아닌 무용(無用)하지 않은 무용(舞踊)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김보람의 작품 <춤이나 춤이나>에서 그는 전작과는 사뭇 다르게 절제되고 균형감 잡힌 구도와 형태의 안무를 보였다. 민요와 노동요로 구성된 음악은 오래전 일상적 삶인 노동의 고됨이 고스란히 담긴 소리이다. 이 담백하고 꾸밈없는 소리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인위적인 안무를 걷어낸 순수한 몸짓의 반응이 이 작품의 주요 테마이다. 안무가는 자신의 춤도 노동요와 같이 일상이자 삶을 지속시키는 동반자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듯하다. 현대무용 작품에서 과도한 의미를 걷어내고자 했다는 안무가의 의지가 담긴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비움의 미학을 지향하며 그만의 톡톡 튀는 개성 이면의 진지함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소리와 몸짓의 원초적 소통을 지향한 이 작품은 무심히 부르는 아낙네의 소리, 흥얼거리는 할머니의 소리에 몸을 맡기며 자신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춤을 왜 추고 있는지” 동료 댄서들과 몸으로 그 길을 찾고 있다.

  김설진의 <등장인물>은 삶에서 영향을 미치는 관계 속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안무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4명의 댄서는 도무지 맥락을 잡을 수 없는 이미지를 시종일관 이 공간에서 만들어 낸다. 특정한 서사는 없지만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익숙한 장면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파편적인 에피소드의 다양한 등장인물 자체를 무작위로 그려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오케스트라 박스 무대에서 이야기를 펼치다 전체 무대막이 열리면 4명의 댄서들은 텅 비어 있던 무대 중앙으로 서서히 들어가며 의미 있는 등장인물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앙 무대를 삶이라는 시공간으로 설정한 김설진의 과감한 연출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삶과 연극을 동일 선상에 놓고 은유한 등장인물을 통해 관계 설정의 주체는 ‘나’임을 관객에게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경은의 <브레이킹>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작품이다. 투명한 아크릴판은 코로나 상황에서 일상의 거리와 간격을 규정짓는 상징물로, 브레이킹시켜야 할 대상이다. 댄서들은 사각의 무대 바닥에서 맴돌고 뛰고 숨을 몰아쉬며 투명판 위를 올라간다. 투명한 벽과 바닥에 구획된 네모 공간은 댄서들이 오늘의 현실적 한계를 깨부수고자 한 의지이며 오로지 춤의 생명력으로 가능함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의 감염병 현실에서부터 개인이 넘어서야 할 무수한 벽을 브레이킹하고자 한 안무가의 의도가 잘 실천된 작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스트릿댄스나 국가별 전통 음악이 극장 무대에서 협업한 사례는 많다. 다양성이 미적 가치로 존중받고 있으며 각 국가와 지역의 독자적 문화를 장려하는 글로컬이 주목받는 최근의 환경에서 우리 주변부의 문화현상과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아무튼 개성이 넘치는 세 명의 유망한 안무가들이 시도한 공연은 국악을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스트릿 춤의 자유로운 정신을 수용하여 이질적인 장르의 수용과 융합이 ‘힙’한 것임을 보이고자 노력한 공연이었다.

 

김혜라 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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