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쌀롱] 저성장시대의 게임플레이
[타이거쌀롱] 저성장시대의 게임플레이
  • 고대신문
  • 승인 2021.10.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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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기초는 성장이다. 과거보다 오늘의 이윤이 더 나아질 때 그 차이를 기반으로 자본은 덩치를 키운다. 그냥 머물러서는 떨어지는 화폐가치와 올라가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기에 자본은 더 나은 효율, 노동력, 더 넓은 시장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녀 왔다. 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은 각각 외적, 내적인 성장 동인을 찾아 움직인 자본주의 역사의 결과들이다. 새로운 가치를 도입하고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생산 기술을 발전시켰다. 자동화로 넘쳐나기 시작한 생산물을 되팔기 위한 식민지 경영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역사는 자본주의 성장의 역사였다.

  다른 매체들과 달리 디지털게임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상품으로서의 성격에서 시작됐다. 게임은 일부 예술적 전용을 제외하면 그 대중화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소비용 상품의 바깥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게임과 자본의 관계는 매체 외연뿐 아니라 텍스트의 속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테면 게임의 보편적 전제로서의 성장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진행에 있어 성장을 전제로 한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고 플레이어를 점점 더 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상향 그래프를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된다.

  ‘심시티’ 같은 도시경영 시뮬레이션은 어제보다 나은 성장이 도시라는 외형으로 반영될 때 의미 있어진다. ‘리그 오브 레전드’ 는 상대 진영을 파괴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 캐릭터의 꾸준한 성장이 요구된다.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들 또한 레벨업 개념을 빼놓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게임매체의 근본에 성장이라는 속성이 강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자오락의 초창기이자 전성기였던 80~90년대 한국은 큰 폭의 경제성장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한 초창기 게이머들은 오락실과 달리 세이브(저장) 기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유형의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장하는 경제와 성장하는 게임은 1997년 말 IMF 금융위기 사태를 맞으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IMF 이후 쏟아진 실직자들과 방황하는 취업준비생들은 1998년 초부터 PC방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창업자이자 플레이어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는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낳았다.

  성장이 멈춘 시대에 디지털게임은 성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이 무렵 함께 등장한 온라인게임 ‘리니지’ 열풍은 성장을 멈춘 자본주의 속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누적하고 쌓아올리는 재미를 만들어내던 매체였다. 성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는 온라인게임이 만든 2000년대의 붐은 저성장을 넘어 마이너스를 향하던 당시의 경제적 분위기와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팬데믹으로 인해 다시금 성장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 꺾여버린 요즘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IMF 시절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제는 인구마저 꺾이기 시작하며 사실상 닥칠 미래가 과거처럼 높은 기울기의 우상향 그래프일 수 없다는 전망은 IMF 당시보다 오히려 더 부정적인 예측을 가능케 한다. 성장이 전제되는 체제 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장하지 않는 세계라는 배경은 게임 같은 매체를 통한 성장에의 욕구 충족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막막한 현실의 벽을 피해 게임으로 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게임만으로 비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만족감을 주는 매체의 역할은 각자의 가치판단에 따라 만족감일 수도, 현실도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 핵심은 성장이 멈춰가는 시대를 맞이한 현실의 변화이지, 성장의 감각을 재현하는 매체의 문제는 아니다. 현실의 저성장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찾을 것이겠지만, 아마도 그렇기에 게임에 빠진 이들을 향한 비난은 현실의 저성장을 거론하지 않으려는 이들로부터 더욱 거세어질 것 같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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