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물건마다 사연이 가득

음악과 함께 쉬는 청음실 마련

“추억 되살리는 일에 보람 느껴”

 

 

  세운상가 수리 장인들이 수리수리협동조합을 세운 건 2017년 3월이다. 조합원들은 오랜 세월 갖가지 기계와 기구들을 다뤄왔다. 이들이 고치는 건 물건과 그 안에 담긴 세월이다. 추억이 더 선명하게 오래 보전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반세기 이상 수리업을 해온 수리수리협동조합의 이승근 이사장은 “추억을 되살려줘서 감사하다는 손님들을 보며 제 일에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음악감상실을 다녔던 추억을 소개하며 오로지 음악에 몰입하는 즐거움도 전했다. 옛 정취를 나누고픈 마음으로, 그는 소리와 음악으로 직조된 낭만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다.

 

장인들이 뭉쳐 ‘추억을 지켜주다’

  “이 일을 한 지 56년이 됐는데 몇십 년 동안 다들 간판 같은 건 내세우지 않고 일했어요.” 세운상가의 수리 장인들은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면서도 각자의 공방을 운영하느라 조합, 단체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이들을 뭉치게 했다. 세운상가가 활기를 찾으면서, ‘옛날 것을 주고 받는 공방’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그때부터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라는 타이틀을 내건 수리 워크숍 ‘수리수리얍’을 시작했고, 수리 장인들이 모여 ‘수리수리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이승근 씨는 그중에서도 오래된 음향기기를 다룬다.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최신기기는 제가 안 해요. 오로지 옛날의 것, 빈티지 물건만 고치고 있죠.” 수리하며 테스트 삼아 음악을 듣는 것은 그의 소소한 취미가 됐다. “뚜렷하게 좋아하는 음악은 없지만 그래도 주로 옛날 팝송을 들어요.”

 

오롯이 귀가 기울여지는 쉼터

  세운상가를 걷다 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노래가 흐르는 아날로그한 모습의 방 앞에 발걸음이 머문다. ‘청음실’이다. 오롯이 음악만을 듣기 위한 공간으로, 기대 못 한 반가움이 어리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엘피판, 턴테이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다 옛날 것들이어서 무척 아끼는 물건들이에요.” 이승근 이사장은 본인이 아끼는 음향기기들을 세운상가를 찾는 시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청음실에 들어오면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의 여유도 누릴 수 있다. 따로 돈을 받지도 않는다. 누구든지 들어와서 음악을 듣고 쉴 공간을 만들어 놓고 싶어서 마련한 청음실이다.

  “학창시절에는 ‘뉴월드 음악감상실’, ‘쎄시봉’, ‘디쉐네’, ‘카네기’ 등 종로와 충무로 사이에 음악감상실이 흔했죠. 지금은 ‘음악감상실’이라는 게 다 없어졌잖아요. 카페 같은 데서, 술 한 잔 먹으면서 듣고. 순수하게 음악에만 집중할 곳이 없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어떤 손님이었냐는 물음에 그는 ‘거의 다’라고 답했다. “고쳐진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만족해하고, 또 제가 정말 그분들의 추억을 고쳐준 거 같으면 기억에 남죠. 부모가 쓰던 제품을 자식이 와서 고쳐가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이라고 손자가 와서 고쳐가기도 하고. 다들 애지중지하는 옛것이 있더라고요. 추억을 되살려 줬다며 기뻐하고, 또 부모님께서 좋아한다고 감사하다는 손님들을 보면, 제 모든 일이 보람찰 따름이에요.”

 

글 | 문도경 기자 dodo@

사진 | 강동우 기자 el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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